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 ⑯ 향기 없던 사쿠라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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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 ⑯ 향기 없던 사쿠라 꽃

일요시사 0 1152 0 0
▲ 남북조시대 지방관 모습

전국시대는 하극상과 모반의 시대

<장성훈 작가 > 올해는 광복 69주년이 되는 해다. 내년이면 벌써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지만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요원하기만 하다. 게다가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등 일본의 역사인식은 과거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어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일본의 자랑인 ‘사무라이 정신’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일요시사가 화제의 책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를 연재한다.

무려 3백만에 달하는 일본 젊은이들을 전선으로 내몰아 죽게 하고, 전체적으로 2천만 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 갔으며, 그보다 10배, 100배 많은 사람들에게 형언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준 A급 전범들이, 왜 그렇게 자신들은 죽기가 싫었고, 왜 그렇게 구차하게 삶을 구걸해야 했는지 거듭 묻고 싶다. 왜 그들이 주장하던 사무라이 정신에 따라 패전이 결정났을 때 할복을 못했느냐고도 묻고 싶고, 왜 부하들에게는 명예롭게 죽으라고 해 놓고 자신들은 죽지 못해 머뭇거리다가 포로로 잡혀 삶을 구걸하는 신세가 되었냐고도 묻고 싶다.

전국시대

그들이 내린 명령 ‘전진훈’은 무엇이며, 그들이 권유한 ‘와전옥쇄’는 또 무슨 뜻이냐고 묻고 싶다. 왜 재판장에게 ‘모든 명령은 내가 내렸고, 모든 잘못은 내게 있으니 나에게 모든 벌을 내리고, 나머지 부하들에게는 무죄를 내려달라’고 사무라이답게 읍소하지 못했냐고 묻고 싶다.

이렇게 추태를 부린 인간들을, 이토록 이율배반적으로 행동한 인간들을,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 놓고, 주변국의 강한 반대까지 무릅쓰면서 참배를 강행하는 일본 지도층의 진정한 의도는 또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이런 인간들을 영웅시하는 것이 자국민에 대한 또 다른 기만이 아닌지 모르겠다. A급 전범들의 추태를 보면서, 그들이 조작한 사무라이 정신의 실체를 보는 듯 하다. 

한편 1336년부터 1392년까지, 일본 열도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왕을 세우고 대립하는 정치 혼란기를 맞는다. 이 시기를 일본 역사에 있어 ‘남북조시대’라고 한다. 이 혼란기 쇼군이었던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해결책 중 하나로, 슈고(守護 : 군사적 성격의 지방 행정관-한국의 군수급)들에게 광범위한 지배권과 토지에 대한 많은 권리를 이양하게 된다.

그때 물려준 많은 권한 가운데 하나가 세금의 절반을 걷을 수 있는 권리였다. 지방에서 많은 권한을 행사하던 슈고들이 세금의 반을 걷게 되자, 이미 있던 권한에 더하여 경제력까지 생기게 된 것이다. 경제력까지 생긴 슈고들은, 군사에 있어서나 경제에 있어서나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직책은 슈고이면서 실제 권한은 독립된 영주(다이묘 : 大名)와 같은 힘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때 슈고를 ‘슈고 다이묘’라고까지 부르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각 지방 슈고들은 독자 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 발판을 갖게 된다.

1467년, 무로마치 막부의 8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마사’대에 이르러 아시카가 집안의 상속 문제를 둘러싸고 내분이 발생한다. 아들이 없던 쇼군이 동생을 후계자로 정한 뒤에 아들이 태어나자 후계 문제를 둘러싸고 내분이 발생한 것이다. 여기에 공교롭게 유력 가신들 집안의 후계 문제까지 겹쳐지면서 전 일본이 동군과 서군으로 갈라져 1477년까지 11년 동안 치열한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이 난을 바로 ‘오닌의 난’이라고 한다.

이 난은 교토를 중심으로 발생함으로써 일왕과 막부가 있던 교토는 전쟁터가 되고 만다. 무려 11년 동안이나 교토가 전쟁터가 되면서, 교토는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지고, 중앙 정부로서 권력을 유지했던 막부와 쇼군의 힘은 떨어지고 말았다.

친어머니와 친동생까지 죽인 영주
살해위협 시달려 잠도 제대로 못자

유명무실해진 막부는 자연스레 사라졌고, 아울러 막부의 강한 군사력으로 지탱했던 장원제도 또한 무너지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각 지역의 슈고들은 중앙 정부 통제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무사 세력으로 출현하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독립된 영주들이 되는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던 막부가 힘을 잃어버리자, 그때까지 막부의 통치를 받던 지방 관리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나라 전체가 무법천지로 되어버린 것이다. 중앙 정부는 지방 관리가 지시를 듣지 않아도 징벌할 힘이 없어지고, 불법을 저질러도 응징할 힘이 없어지고, 거두어들인 세금을 막부로 보내지 않고 독식을 하여도 처벌할 힘이 없어진 것이다. 한 마디로 막부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게 되자, 지방 관리들이 막부 통제에서 벗어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지방을 다스리던 슈고들이 거두어들인 세금을 막부로 보내지 않고 각자의 군사력을 키우는 데 사용하면서 독자 세력을 갖춘 작은 국가의 형태로 분리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바로 130여 년 동안 일본 열도를 혼란과 암흑시대로 뒤흔든 전국시대의 개막이었다.

지방을 다스리던 중앙정부가 힘이 없어지고, 각 지방에는 그 지방을 차지하려는 독자 무사 세력들이 나타나면서 그야말로 무법천지로 변하고, 극심한 불신과 하극상, 그리고 모반까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하극상을 일으켜도 처벌할 세력이 없고, 모반을 일으켜도 징벌할 중앙 세력이 없으니, 누구든 힘 있는 사람이 기존 영주와 그 세력을 굴복시키고, 몰아내고, 죽이면서 그 지방의 새로운 영주가 되었다. 

만일 한 영지 내에서 2~3개 세력이 나타나면, 기존 영지는 2개 또는 3개로 나누어지고, 2~3명의 새로운 영주가 나타나게 되었다. 당시 막부의 실력자였던 ‘호소카와’는, 가신인 ‘미요시 나가요시’의 모반으로 영주 자리를 빼앗겼고, ‘미요시 나가요시’는 다시 그 가신이었던 ‘마쓰나가’에게 살해당하였다. 

‘마쓰나가’ 역시 가신에게 모반을 당해, 살해되지는 않았으나 결국 영지는 둘로 나누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둘은 평생을 원수처럼 싸움을 하면서 지냈다. 또 다른 실력자 ‘시바’도 ‘에치젠’, ‘오와리’, ‘도오토미’의 영지를 가신인 ‘아사쿠라’, ‘오다’, ‘가이’에게 뺏겨 몰락했다. 

이렇듯 하극상과 모반이 일본 전국에서 난무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누구를 얼마나 믿어야 할지 모르는 무법천지 속에서 일본 열도는 약육강식의 정글이 된 것이다. 모반과 하극상이 어찌나 심했던지, 영주와 사무라이들은 동료나 부하는 물론 부모나 형제, 심지어 자식까지도 믿을 수 없는 극단적인 상황이 되었다. 식사를 할 때나, 잠을 잘 때는 늘 칼을 지니고 있었고, 그것도 단순히 옆에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칼을 뽑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다.

약육강식

잠을 자는 곳조차 비밀에 부치고, 음식 또한 독살이 두려워 함부로 먹을 수 없는 그런 시대였다. 침실에서는 시종이 아랫목에서 비단이불을 덮고 영주처럼 잠을 자고, 영주는 윗목에서 시종처럼 잤으며, 음식은 시종이 먼저 먹어 독극물이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먹을 수 있었다. 

오늘은 살아있어도 내일을 기약할 수 없었고, 아침에 일어나 숨을 쉬어야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피를 나눈 형제가 언제, 어디서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지 알 수 없고, 충성을 맹세한 가신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적으로 돌아설지 알 수 없는 그런 시기였다. 

동부 일본의 대영주였던 ‘다테 마사무네’는 자신을 독살하려고 음식에 독약을 넣었다며 그의 친어머니와 친동생을 죽였고, 아들에게 살해당한 영주도 있었으며, 형제나 충성을 맹세한 가신들로부터 살해당한 영주는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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