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속터미널 지하상가 토사구팽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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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속터미널 지하상가 토사구팽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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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센트럴시티

140억 날릴 판…“매일 피눈물 흘린다”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1990년대 중반부터 서울고속터미널 경부선 지하상가에 인생을 받쳐온 한 여성이 있다. 흉물스럽던 지하상가에 80억원을 쏟아 부어 현대화시켰고 다시 60억원을 투자하며 지금까지 역사를 함께했다. 지하상가 어디에도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 이런 그녀가 빈털터리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로부터 명도소송을 당해서다.

성정애 ㈜매스펄 대표가 고속터미널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0년 3월 터미널 주변 광고 계약을 체결하면서다. 90년대 고속터미널 주변 옥외광고 및 내부 간판광고는 대부분 성 대표의 손을 거쳤다. 성 대표가 그간 모아놓은 자료 사진만 대형 파일케이스로 10여개에 이른다. 그의 자료만 봐도 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국내 기업들의 변천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굴곡진 인생사
하루 아침에…

성 대표에게 고속버스터미널 측이 임대사업을 제안해 온 것은 98년 초다. 당시 고속버스터미널 지하 하차장은 화훼상가로 운영돼 오다가 95년 6월29일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안전불감증이 불거지자 서초구청이 상가 허가를 취소한 상태였다.

화재예방설비는 물론, 환기시설, 전기시설이 낙후돼 흉물스럽기 그지없었다. 성 대표는 ㈜화룡엔터프라이즈를 설립하고 98년 8월 고속버스터미널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뒤 하차장 상가 1000여평에 대한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돌입했다.

공사 규모는 컸다. 워낙 제반시설이 부족해 50억원 정도의 비용이 시설비로 지출됐다. 1년 뒤 하차장 상가는 전국 각지 특산물을 판매하는 팔도 특산품 상가로 문을 열었다. 팔도 특산품 상가는 고속터미널을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주판매품인 전통가공식품협회 제품에서 중국산 소금과 염료 사용이 검출됐고, IMF까지 터지면서 오픈 1년도 채 되지 않아 문을 닫아야 했다.

성 대표는 30억원 이상의 시설을 보충해 '수입명품 및 귀금속 상가'로 전환, 오늘에 이르렀다.

성 대표의 ㈜매스펄과 고속터미널 사이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8일 최병용 이마트 비식품매입본부 생활가전담당이 대표이사 겸 사내이사로 선임되면서 부터다.

신세계그룹은 고속터미널 호남선과 경부선 최대주주에 올라있다. 신세계는 2012년 10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메리어트호텔, 호남선 터미널 등을 소유한 센트럴시티 지분(60.02%)를 사들였고 이듬해 센트럴시티는 고속터미널 지분 38.7%를 인수했다.

2012년 5월1일 성 대표는 고속터미널과 점포 임대차 계약을 다시 체결했다. ㈜화룡엔터프라이즈의 계약조건을 ㈜매스펄이 승계하는 내용으로 임대보증금 10억원에 월 임대료 700만원, 계약기간은 5년이었다. 

제집처럼 가꿔온 사업장서 쫓겨날 위기
터미널 "임대료 체납해 봐줄 수 없다"

계약 후 성 대표는 2012년 8월부터 10월까지 15억원의 비용을 들여 매장을 소형점포 300개로 리모델링공사를 했고, 분양이 미진해 올해 3월부터 4월, 다시 20억원을 들여 소형점포를 합쳐 개방형점포로 하고 출입문을 6개로 하는 공사를 진행했다.

공사를 반복하는 동안 임대료는커녕 관리비까지 제대로 낼 수 없었다. 그리고 지난 4월30일 최 대표 명의로 내용증명 한통이 날아들었다. 임대료와 관리비, 지연이자가 체납되는 등 계약조건을 준수하지 않아 당사(고속터미널) 영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음을 재차 통보하고 5월20일까지 미수금 전액을 납부해 계약상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기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함께 고속터미널은 건물 및 일간지 등 매체를 통해 진행하고 있는 소유권 분양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의 매체광고를 일체 금하고, 만일 지속할 경우 계약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

'㈜매스펄이 진행하고 있는 분양광고가 제3자의 피해를 불러올 수 있으니 이를 양지하기 바라며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즉시 계약 해지를 바란다'는 내용의 공고문이 하차장 상가 출입문 6곳에 일제히 붙기 시작한 때는 내용증명 발송 불과 하루 뒤인 지난 5월1일이다.

고속터미널은 공고문을 통해 "당사 소유 하차장 지하 대형1호는 당사에서 ㈜매스펄에 '12년 5월1일부터 '17년 4월30일까지 임대한 임대점포로 소유권을 분양할 수 없는 점포"라며 "최근 ㈜매스펄이 일간지 등 매체를 통한 경영주 모집광고에 소유권 분양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한 바, 이에 제3자의 피해가 없도록 공고하오니 소유권 분양 형태의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즉시 계약 해제하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 서울고속터미널 호남선 상가들

성 대표와 하차장에서 상가를 운영하고 있던 상인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분양이 돼야 임대료가 발생하고 그 임대료를 고속터미널에 납입해야 계속 상가를 운영할 수 있던 터라 분양을 막는 공고문은 나가라는 말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성 대표가 고속터미널로부터 하차장 상가를 임대하고 이를 상인들에게 재임대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이른바 '전대차 계약'이다. 하루 유동인구가 수백~수천만명을 넘는 강남, 잠실 등의 지하상가는 서울 대표적 노른자위 중 하나다. 한정된 점포라는 점을 악용해 가게 주인이 뒷돈을 챙겨 재임대를 해주는 전대차 계약이 기승을 부렸고, 피해를 입은 소·영세상인이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한 적도 있다. 

전대차 명백한 불법
㈜매스펄은 '다르다'

㈜매스펄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98년 고속터미널과 임대차 계약을 맺고 운영을 시작하면서 ㈜매스펄은 '임대분양'이라는 사전에 없는 단어를 써왔다. 남대문·동대문 상인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사용되는 용어로서 시설비와 개발비를 낸 상인들을 등기분양자와 달리 임대분양자로 표현한다. 상인들은 임대분양자에게 전전대자로 임대분양자의 투자비를 이자 지급형식으로 월세로 전대하는 경우다. 이러한 방식으로 ㈜매스펄은 지난 1 8년 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운영을 해왔지만 이제 와서 고속터미널이 문제를 삼고 있다는 게 성 대표의 주장이다.

성 대표는 고속터미널로부터 내용증명을 받은 지 2주 만에 답변을 보내 분할 납부를 요청했다. 성 대표는 내용증명을 통해 "당사가 쓰고 있는 임대분양계약서는 귀사의 고문변호사의 조정을 받은 계약서이고 임대분양계약서로 인해 17년 동안 한 번도 귀사에 피해를 준적 이 없다"며 "공고문 부착 등은 당사의 영속성 문제 등 사업적으로 많은 장애가 되니 상의를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성 대표는 또 "2014년 7∼8월을 목표로 상가를 오픈해 밀린 임대·관리비를 지불할 예정이었지만 세월호침몰사고로 경기 및 소액투자가 위축돼 개점지연 문제가 발생하면서 최악의 자금사정을 겪고 있다"며 "최선을 다해 밀린 임·관리비를 납부하려 하니 영세소상인과 소액투자자와 당사의 사정을 감안해 한 번 더 분할해 납부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이를 비웃듯 고속터미널은 한 달 뒤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명도소송을 냈다. 내용증명을 보낸 지 정확히 44일만이다. 성 대표는 "고속터미널이 대기업에 힘을 빌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무작정 임차인을 내쫓으려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고속터미널 측에 따르면 명도소송의 이유는 밀린 임대료와 관리비, 지연이자다. 고속터미널이 성 대표에게 보낸 내용증명에 따르면 ㈜매스펄이 올해 4월30일까지 밀린 임대료는 2억5900여만원(32개월치), 관리비 1억9500여만원(26개월치)에, 지연이자 2억1300여만원 등 총 6억6700여만원이다.

4월8일 신임 사장 취임 
4월30일 내용증명 발송
5월1일 공고문 부착 시작
6월13일 명도소송 제기

㈜매스펄과 고속터미널간 점포 임대차 계약서 '임대차계약 특수조항' 제6조(임대료외의 제비용)를 보면 고속터미널은 ㈜매스펄의 시설공사 및 임대분양기간 등 영업정상화 기간을 고려, 계약체결일로부터 5개월간 ㈜매스펄의 관리비 부과를 면제하고 6개월부터 12개월간은 전용면적 기준으로 부과하며 이후 정상부과하기로 했다.

제10조(임대료 및 제경비의 체납) 항목에는 '임대료, 제경비, 기타 금전채무를 체납한 경우 체납액의 10%에 해당하는 연체료를 가산 납부하고 체납액 및 연체료를 납부하지 아니하고 해당월을 초과한 경우에는 매월 체납금액의 연 24%에 해당하는 연체료를 추가납부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또한 '임대료 및 제경비를 2개월 이상 체납한 경우 고속터미널은 동 금액을 보증금에서 공제 대체하고, ㈜매스펄이 15일 내에 현금으로 보증금을 충당하여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고속터미널은 언제든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내용증명과 계약서간 오류가 발생하는 부분이 바로 이 규정이다. ㈜매스펄과 고속터미널이 계약을 체결한 지점은 2012년 5월1일. 내용증명이 보내진 시점은 이로부터 정확히 2년(24개월) 뒤다. 이에 따르면 ㈜매스펄이 계약 체결 후 임대료를 밀렸다면 24개월 분만 책정되어야 하며, 관리비 면제 규정에 따라 관리비는 19개월분만 계산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고속터미널 관계자는 "내용증명 상 체납된 금액은 ㈜매스펄이 ㈜화룡엔터프라이즈의 계약 조건을 그대로 승계하면서 계약시점 이전 금액까지 합산된 금액"이라며 "명도소송 소장에는 계약기간 이후 체납금액만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성 대표는 "고속터미널이 상가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해 밀린 임대료를 내지 못하게 원천 차단했다"며 "직원을 동원해 출입문을 막고, 터미널 이용객들의 출입을 방해하는 등 영업방해를 일삼았다"고 전했다. 성 대표는 또 "고속터미널은 ㈜매스펄이 서면으로 공사요청을 하면 문서로 승인하지 않고 항상 구두로 승인했다"며 "이 점이 재판 내내 약점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고속터미널 관계자는 "(주)매스펄은 임대료와 관리비를 체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증금도 입금이 안 돼 있는 상태"라며 "고속터미널 입장에서는 임대료를 계속해서 내지 않고 있는 임차인과 계약을 지속하는 게 부담으로 작용해 명도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결정적 증거자료
재판 영향 있을까?

이 관계자는 또 "영업방해와 관련한 부분은 ㈜매스펄에서 형사고소를 진행했지만 무혐의 결정이 난 상태이고 미승인 공사 진행과 관련해서는 재판에서 모두 해명을 한 상태"라며 "재판 결과를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선고를 약 20여일 앞둔 현재 성 대표는 반전을 노릴 수 있게 됐다. ㈜매스펄 직원과 고속터미널 직원이 주고 받은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찾아냈기 때문. 성 대표가 공개한 대화에는 ㈜매스펄 직원이 공사 진행상황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냈고, 고속터미널 직원은 '수고했다'고 답변하고 있다. 고속터미널이 ㈜매스펄이 진행한 하차장 상가 공사를 몰랐을 리가 없다는 얘기. 이 증거자료는 추후 재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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