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비망록 실체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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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게이트> ②비망록 실체 추적

일요시사 0 1329 0 0
▲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준 사람 있는데 받은 사람 없는 ‘뇌물 수첩’ 진짜 있나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주요 유류품은 총 3개다. 하나는 유서, 또 하나는 소위 ‘성완종 리스트’라 불리는 메모 한 장, 다른 하나는 성 회장이 생전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전화 두 대다. 한 대는 오른쪽 상의 주머니에서, 나머지 한 대는 시신에서 15m 떨어진 바닥에서 발견됐다.

비망록은 ‘잊지 않으려고 중요한 골자를 적어 둔 것, 또는 그런 책자’를 의미한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다른 자수성가 타입의 인사들에게도 보이는 특징처럼 메모를 생활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격 또한 꼼꼼했었다는 정황을 종합해 봤을 때 또 다른 비망록이 있을 것이란 추측이 성 회장의 자살 이후 다수의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리스트 이름들
판도라의 상자

성 회장의 시신에서 발견된 것들은 정계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그 중 하나인 ‘성완종 리스트’에는 8인의 이름과 수억원에 해당되는 금액이 적혀있는데 진위여부를 떠나 지금과 같은 사태로 이어진 결정적 증거로 작용했다. 실명이 거론됐다는 측면에서 검찰 수사의 큰 줄기는 메모를 기초로 진행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두 번째는 유서다. 유서는 한때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많은 추측을 불러온 바 있다. 그러나 유서를 본 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세간에는 유서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유서에는 정치인의 이름은 없으며 가족에 대한 당부의 말이 있을 뿐”이라며 “부인과 아들, 동생들에 전할 당부의 말뿐이었으며 로비라는 단어나 정치인의 ‘정’자도 없다”고 밝혔다.

세 번째는 성 회장이 한 언론사와 나눈 통화에 대한 녹취록이다. 북한산 형제봉에서 발견된 성 회장은 지난 9일 <경향신문>과 오전 6시부터 50분간 통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 회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후 만 하루가 지나 발표된 녹취록에는 박근혜정부의 1기 비서실장이라고 할 수 있는 허태열 전 실장, 2기인 김기춘 전 실장에게 금품을 제공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일단 친박 7인·비박 1인 거론
집무 다이어리 기록된 사람은?

녹취록은 정계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더욱이 약 50분간의 통화 중 공개된 것은 8분여에 불과해 나머지 42분의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최초 공개된 지 하루가 지난 11일, 2차 녹취록이 공개됐다. 당시 공개된 내용에는 성 회장이 홍준표 경남도지사에게 2011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사용하라며 1억원을 건넸다는 주장이 담겨있었다. 성 회장은 “2011년 홍준표가 대표 경선에 나왔을 때 한나라당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캠프에 있는 측근을 통해 1억원을 전달했다. 6월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녹취록의 내용이 이완구 국무총리를 향하면서 의혹은 절정에 치달았다. 지난 13일부터 시작된 대정부질문이 ‘성완종 사태’에 대한 청문회 양상으로 진행된 바 있다. 이때 나온 이 총리의 답변이 성 회장이 녹취록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대치되자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이완구 총리의 거짓말 시리즈’라는 패널을 들고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누구 누구 나오나 
녹취록 공개 파장

이어지는 녹취록 공개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전문 공개를 요청했다. 다른 정계 인사들도 사건의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는 녹취록 공개를 요청하고 나섰다. 이에 지난 15일 자정쯤 <경향신문> 홈페이지를 통해 전문이 공개됐다. 내용은 기존에 공개된 내용을 포함해 200자 원고지 84장 분량을 자랑할 정도로 방대했다.
주목할 만한 사항은 기자와의 대화 내내 성 회장은 ‘신뢰’를 강조했다는 점과 이 총리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했다는 점이다. 성 회장은 이 총리를 9개 대목에서 언급하며 섭섭함을 표현한 것으로 나온다.

 



▲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쪽지 메모

 전문이 공개되자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리스트에 있는 유정복 인천시장이 녹취록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 ‘MB 측 인사들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 ‘새로운 인물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거론됐다는 점’ 등이다.

유 시장은 리스트에 이름이 적힌 사람이다. 리스트를 보면 3억이라는 금액과 함께 유 시장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새정치연합 인천시당은 지난 16일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유 시장은 2014년 성 회장을 4차례에 걸쳐 만났고 지방선거에서는 유세지원을 받았으며 특히 지난 3월에는 성 회장의 구명전화를 받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경황없는 전화통화 중 이름이 누락됐을 수 있다며 단순 실수라는 설에 무게를 뒀지만 행적 하나하나에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이다 보니 의혹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MBN 보도 내용에 따르면 유 시장 측은 당연한 결과라며 평소대로 직무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유 시장은 이미 “성 회장과는 19대 국회에서 만난 동료의원 관계일 뿐”이라고 의혹을 부인한 바 있다. 

MB 측 인사들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 또한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오히려 녹취 전문을 보면 MB 측을 감싸는 듯한 발언을 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당시 기자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을 꼬집어 물어봤음에도 “자신보다 돈이 수백배 많은 사람이 자신의 돈을 받으려 했겠냐”며 극구 부인했다. 이를 두고 친박계에서는 ‘성완종 리스트’가 모두 친박 인사들로 작성된 것과 연결시켜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인물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거론됐다는 점은 논쟁을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했다. 성 회장은 반 총장을 언급하며 이 총리가 견제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에 대한 수사도 그러한 견제의 일환으로 시작됐다는 견해다.

이와 관련한 내용을 보면 성 회장은 “내가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배가 아파서 그런 게 아닌가”라며 “반 총장을 의식해서 그렇게 나왔다”고 적혀있다. 이어서 그는 “내가 반 총장과 가까운 것은 사실이고 동생이 우리 회사에 있는 것도 사실이고 (충청)포럼 창립멤버인 것도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이 총리는 ‘반 총장 견제설’을 일축하고 나섰다. 이 총리는 지난 16일 대정부질문장에서 “마치 반 사무총장의 대권과 저의 문제가 결부돼 제가 고인을 사정했다는 심한 오해가 저간에 깔리지 않았나 생각한다”면서 “어떻게 이렇게 비약할 수 있는가 생각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사실 반 총장의 이름이 언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4일 JTBC에서 단독으로 입수해 보도한 ‘성완종 다이어리’에 따르면 반 총장을 비롯해 새로운 인물들의 이름을 많이 확인할 수 있다. 그 중에는 새정치연합 김한길 전 대표,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 야권 인사들의 이름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비망록 다이어리
과거 약속 빼곡

일각에서는 다이어리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주의를 요하는 목소리도 있다. 성 회장의 다이어리는 단순히 약속을 기록해 놓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성 회장의 최 측근으로 알려진 박모 전 경남기업 상무는 자신의 자택 앞에서 기자들에게 “일부 언론이 보도한 성 전 회장의 다이어리와 관련한 내용은 ‘오보’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날짜와 장소, 만나는 사람이 적혀 있지만 약속에 나가지 않아도 다이어리에 그런 표기를 하지 않으니 실제로 만났는지 안 만났는지 모르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이에 따른 해명도 이어졌다. <중앙일보>가 지난 14일 ‘다이어리’를 참고해 보도한 “김한길 당시 민주통합당 최고위원과는… 2013년 4월27일 롯데호텔 일식당에서 조찬을 함께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에 대해 김 전 대표 측은 보도자료를 내 반박했다.

주장에 따르면 김 전 대표는 의혹을 제기한 2013년 4월27일 같은 당 소속 인천시당 당직자-구청장 등과 인천 계양구의 설렁탕집에서 조찬 간담회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음을 알렸다. 즉 당시 성 회장을 만난 적 없으며 다른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성완종 리스트’ 혐의를 입증할 새로운 물증 확보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다른 말로 하면 이는 비망록이라 불렸던 기존의 자료들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판단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메모와 녹취 진술을 뒷받침할 정황 증거와 보강자료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에 수사의 성패가 달린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 검찰은 이미 지난 16일 경남기업에 대한 2차 압수수색을 진행했으며 회계자료와 내부보고서,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확보한 증거물을 토대로 ‘금고지기’로 알려진 한모 부사장 등 성 전 회장의 핵심 측근들과 회사 임직원들을 조만간 차례로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만나기만 해도 구설
“모른다” 피하기 급급

공개되지 않은 비망록이 있다면 그건 아마 USB가 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한 부사장이 검찰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USB 안에는 현장 전도금 32억원의 인출 내역이 담긴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USB 안에 정치인에게 후원금으로 전달한 정황이 포착된다면 ‘리스트’와 ‘녹취록’ 만큼의 파급력을 보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2차 녹취록에 대한 궁금증도 커져만 간다. 지난 16일 <한국일보>에 따르면 한 부사장은 성 회장과 함께 금품수수 폭로 대상자를 선별하는 회의에서 나온 대화를 녹음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 회장의 일방적인 주장이기는 하나, 회의 내용에서 구체적인 자금 전달방식 또는 전달책이 등장한다면 수사는 급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검찰은 내다보고 있다. 음성이 녹음된 파일은 검찰에 이미 전달된 상황으로 경남기업의 비자금 내역을 담고 있는 USB와는 별개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확보한 또 다른 자료도 존재한다. 지난 17일 성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이모씨로부터 여·야 유력 정치인 14명에게 불법 자금을 제공한 내역이 담겨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장부를 확보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장부의 분량은 A4용지 30장 정도이며 그 속에는 새정치연합 중진 의원 등 야당 정치인 7∼8명의 이름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씨가 오랜 기간 성 회장을 보좌해온 점을 고려할 때 장부의 신빙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하고 수사 범위의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광범위 수사
물타기 작전?

일각에서는 이러한 수사 범위 확대를 경고한다. 일찍이 이 총리가 ‘광범위한 수사’를 언급하자 야당 의원들이 반발한 바 있다. 해석에 따라서 야당으로 수사가 확대될 수 있으며 이는 전형적인 ‘물타기 작전’이라는 게 야당 의원들의 주장이었다. 의원 중 몇몇은 이 총리의 이러한 발언을 두고 “검찰에게 은밀히 지시를 내리는 것과 진배없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온 국민의 관심은 과연 ‘성완종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가에 집중된다. 연일 언론을 통해서는 속보와 단독 기사가 빠른 시간 안에 보도되고 있다. 몇몇 정치평론가들은 사설을 통해 이러한 ‘속보 전쟁’을 우려했다. 정치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다보면 이번 사건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진실게임’이 아닌 ‘부정부패 발본색원’이라고 지적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성완종 리스트’ 수사팀 보니…

검찰이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김진태 검찰 총장의 지시 아래 새로운 수사팀이 꾸려졌다.

특별수사팀장에는 문무일 대전지검장이 임명됐다. 김 총장은 “머뭇거림 없이 원칙대로 가라. 의심받지 않게 철저하게 수사하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팀장은 “국민적 의혹이 집중된 이번 사건에 대해 결연한 의지를 갖고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도록 진력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이러한 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직 구조상 현 정권을 상대로 수사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주장이다. 특별수사팀장은 반부패부장이 임명한다. 반부패부장은 검찰총장이 임명한다. 그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이, 그 위에는 국무총리가 있다. 결국 문 팀장은 이완구 국무총리의 결정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자리라는 해석이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문 팀장의 역량을 기대하는 눈치다. 문 팀장은 과거 2004년 노무현정부 시절 대통령 측근 비리 특별 파견 검사로 있으면서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구속기소한 바 있다. 당시 보도된 기사를 보면 강단 있는 수사였다는 평가가 많았다.

최근 국민들의 뇌리에 ‘땅콩회항’으로 강하게 박혀있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한 수사도 지휘한 이력이 있다.

그가 호남인사라는 점에 주목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광주 출신으로 광주일고와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뒤 검찰에 입문했다. 이에 대한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여·야 구분 없이 의혹을 파헤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 있는가 하면 수사를 둘러싼 의혹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호남 출신 검사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시각도 있다.

결국 이 총리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수 있느냐 여부가 이번 특별수사팀의 향방을 가를 갈림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총리는 현재 피의자가 아닌 ‘피내사자’ 신분이다. 이는 정식으로 입건해서 조사를 하는 게 아니라 범죄혐의에 대한 의심이 가는 사람을 은밀히 조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사기관을 통해 피내사자는 내사를 받다가 범죄혐의가 인정되면 그때부터 입건되고 ‘피의자’ 신분으로 변하게 된다. 혐의가 없다면 내사는 그대로 종결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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