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들 홀린 미녀‘로비스트’ 린다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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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들 홀린 미녀‘로비스트’ 린다김

일요시사 0 10238 0 0

"손도 안 잡았는데 같이 잤다?"

미모의 여성 ‘로비스트’ 린다김(59)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6년 문민정부 시절 무기 로비스트로 활동하던 린다김은 ‘백두사업’ 응찰업체의 로비스트로 활동하면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당시 국방부장관 등 국내 고위급 인사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 촉망받던 여성 로비스트는 섹스스캔들 주인공으로 전락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정권 실세들의 '연서'까지 받을 만큼 국제적으로 그 능력(?)을 인정받았던 린다김의 '화려했지만 어두웠던' 그때를 돌아봤다.

국방장관 비롯한 정·관계 고위인사들과 스캔들
한때 방송출연 하기도 해 눈길…최근 근황은?

'린다김'하면 떠오르는 단어 '로비스트'. 바로 이 '로비'가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린다김을 치면 연관 검색어로 '린다김 로비사건'이 뜬다.

1996년 문민정보 시절 무기 로비스트 린다김이 '백두사업' 응찰업체의 로비스트로 활동하면서 입찰 과정에 의혹이 제기된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린다김의 한국 이름은 김귀옥으로 성장과정이나 경력 등에 관해서는 기본정보가 검색되지만 확실히 확인된 바가 없다. 1593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고, 1979년 미국으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졌다.

린다김 로비사건

우연한 기회에 참석한 미국 파티장에서 국제 로비스트의 눈에 띈 그녀는 본격적으로 로비스트의 길로 나섰고, 1995년 무기 중개업체인 'PTT사'를 설립했다가 이후 'IMCL사'로 회사명을 바꾸고, 미국의 'E-시스템사'와 이스라엘 'IAI사'의 로비스트로 활약했다.

또 당시 국내 고위급 인사들과도 친분관계를 유지하는 등 화려한 경력과 학력을 가진 미모의 여성 실업가로 알려져 있다.

린다김 로비사건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은 문민정부 시절에 국방부장관 등 고위 인사들이 백두사업 등의 무기도입 과정에서 린다김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다.

백두사업은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왔던 대북정보 수집능력을 독자적으로 갖추자는 목적에서 1991년부터 추진한 통신감청용 정찰기 도입사업이다. 첨단 전자정보장비를 갖춘 정찰기가 한반도 전역의 음성통신을 감청하고 신호정보를 분석하는 것으로 이는 정찰기에 영상레이더 장치를 실어 평양 이남의 축구공만한 물체까지 촬영, 식별하는 '금강사업'과 맞물려 있다.

문제는 약 2200억원이 소요되는 대형 국방프로젝트에 린다김을 고용한 미국의 E-시스템사가 응찰업체 가운데 가장 비싼 가격을 제시했음에도 2개윌 뒤 프랑스와 이스라엘의 경쟁업체를 물리치고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이 과정에서 탈락한 업체들이 의혹을 제기하며 반발했고, 실제 최종사업자를 선정하기 3개월 전 당시 이양호 국방부장관이 정종책 환경부장관의 소개로 린다김을 만난 사실이 확인됐다.

뿐만 아니라 이 전 장관은 사건이 불거진 뒤에도 린다김에게 업체 선정 경위를 의심하기에 충분한 내용의 편지를 보냄으로써 의혹을 증폭시켰다. 또 이들 뿐 아니라 당시 국회 국방위원장과 변호사, 산업자원부장관, 국회의원 등이 폭넓게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수사 결과 불법 로비 의혹은 더 이상 드러나지 않았다. 1998년 예비역 공군 장성과 현역 영관급 장교 등 6명만이 2급 군사기밀을 외부로 빼돌린 혐의로 구속됐을 뿐이다.

린다김은 1995년부터 1997년까지 공군 중령 등으로부터 2급 군사기밀을 빼내 '백두사업' 총괄팀장에게 1000만원을 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어 2000년 6월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 받았지만 같은 해 10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이 사건은 종결됐다.

하지만 린다김이 문민정부에서 장관 혹은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들과 애정행각을 벌였다는 부분은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또 당시 정·관계 인사들의 명확한 해명이 없었고, 수사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종결됐다는 의혹은 지금까지 여전하다.

사실 당시 세간의 관심은 뇌물 의혹 보다는 린다김의 '부적절한 관계'에 집중돼 있었다. 특히 린다김이 이 전 장관 등 고위인사와 주고받은 ‘연서’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궁금증을 배가시키기도 했다.

이 전 장관의 편지는 '사랑하는 린다'로 시작해 '당신을 사랑하는 L'로 끝났다. 이 전 장관과의 스캔들 의혹은 자신이 직접 "린다 김과 두 차례 관계를 맺었다"고 모 언론에 밝히면서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린다김은 "부적절한 관계는 없었다. 내 두 딸의 이름을 건다"고 일축했다.

스캔들은 어디까지 진실?

그런가 하면 2007년 드라마 <로비스트>가 제작되고, 신정아-변양균 스캔들이 터지면서 새삼 린다김이 다시 회자되기 시작했다. 신정아와 비교되며 검색어에 오르는 등 세간의 관심을 다시 받기 시작한 것.

이때부터 린다김은 언론을 피하지 않고 직접 방송에 출연하거나 인터뷰에 응하는 등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린다김은 1년 전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이 전 장관과의 스캔들에 대해 자세히 언급했다. "이 전 장관은 업무가 끝난 후 내가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오곤 했다"면서 "아마 수십 번은 드나들었을 것이다. 제가 그 분과 자려고 마음먹었다면 왜 두 번만 잤겠나. 정말 손 한 번 잡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린다김은 또 "한국은 로비스트가 불법이기 때문에 호텔방에서 몰래 만날 수밖에 없었다"면서 "침실이 있는 일반 객실에서 만나면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질까 스위트룸을 잡아서 거실에서 만나 이야기 했다"고 덧붙였다.

린다김은 당시 스캔들을 떠올리며 한국의 스캔들은 상식 밖이었다고 회상했다. 벌떼처럼 몰려드는 언론에 엄청난 충격과 함께 절망감을 느꼈다는 것. 때문에 2000년 이후 림다김에게 우울증이 찾아왔고, 아직도 항우울제를 세알씩 매일 복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국내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기도 했고, 미국에 본사를 둔 컨설팅사 '엠앤에스파트서스' 회장직을 맡기도 했던 그녀의 근황이 새삼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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