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형제 수=골육상쟁’ 연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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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형제 수=골육상쟁’ 연관론

일요시사 0 3004 0 0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더니만…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고 했던가. 툭하면 터지는 재벌가 골육상쟁에 딱 맞는 옛말이다. 그룹 경영권을 놓고 형제끼리 서로 물고 뜯는 볼썽사나운 싸움을 들여다보면 죄다 집안에 형제가 많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피붙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예외 없이 잡음이 들렸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대기업 오너일가의 분쟁 사례와 그들의 가족관계를 붙여봤다.
 
오너 2·3세 많을수록 십중팔구 서로 ‘멱살잡이’
형제 3명 이상 집안서 거의 예외없이 ‘물고뜯어’

재벌가 갈등은 창업 세대가 물러나고 경영권이 2·3세로 넘어가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다. 지금까지 골육상쟁으로 홍역을 치른 ‘로열패밀리’들이 그랬다. 여기에 형제가 많으면 십중팔구 서로 멱살을 잡았다.

금호일가가 대표적이다. 고 박인천 창업주는 슬하에 5남(성용-정구-삼구-찬구-종구)을 뒀는데, 아들들에게 각 계열사 경영을 맡겼다. 재계에서 보기 드물게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경영을 맡는 전통이 생긴 시초다. 박 창업주가 1984년 타계하자 장남 고 박성용 명예회장, 고 박정구 명예회장, 박삼구 회장 순으로 ‘지휘봉’을 물려받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금호가의 모범적인 형제경영은 재산 싸움이 툭하면 터지는 재계에 교훈이 됐었다.

금호, 또 혈투

그러나 4남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차례에서 탈이 났다. 2006년 대우건설을 삼킨 대가로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몰리자 책임을 놓고 형제간 불신의 싹이 자라기 시작하더니 결국 2009년 지분 다툼이 벌어졌다. 물고 물린 혈투를 벌인 삼구-찬구 형제는 동반퇴진한 이후 계열사를 쪼개 각자의 길을 가는 것으로 분쟁이 마무리되는 듯 했다.

이도 잠시. 형제는 다시 대치하고 있다. 검찰의 비자금 수사를 받고 있는 박찬구 회장이 형에게도 책임을 묻겠다며 박삼구 회장을 사기·위증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금호가 ‘형제의 난’이 2라운드에 들어간 형국이다. 양측의 사이는 전혀 좁혀질 기미가 없는데다 아예 이번에 끝장을 볼 태세여서 둘 중 하나 또는 둘 다 몰락해야 끝날 판이다.

이처럼 그룹 경영권을 놓고 형제끼리 서로 물어뜯는 볼썽사나운 싸움을 들여다보면 죄다 집안에 형제가 많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보통 피붙이가 3명 이상일 경우 거의 예외 없이 잡음이 들렸다. 삼성이 그랬고, 현대가 그랬다. 또 두산, 한진, 대한전선, 대성, 한화 등 국내 내로라하는 재벌가도 쑥대밭이 됐었다.

삼성그룹은 고 이병철 창업주의 후계자를 두고 맹희-창희-건희 삼형제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다 결국 3남 이건희 회장에게 대권이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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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가 많았던 현대그룹은 옛말대로 바람 잘날 없었다. 고 정주영 창업주는 8남(몽필-몽구-몽근-몽우-몽헌-몽준-몽윤-몽일)을 뒀다. 범현대가는 2001년 정 창업주가 타계하자마자 ‘왕자의 난’과 ‘숙부의 난’, ‘시동생의 난’등의 분란을 잇달아 겪은 뒤 뿔뿔이 흩어졌다.

두산가도 형제들이 많았다. 고 박두병 초대회장은 6남(용곤-용오-용성-용현-용만-용욱)에게 ‘공동소유와 공동경영’원칙을 강조했고, 장-차-3남이 차례대로 그룹 회장을 맡는 형제경영의 전통을 이어갔다. 하지만 4남 때 브레이크가 걸렸다. 고 박용오 전 회장은 2005년 자신을 내몰려는 형제들의 비자금 문제를 폭로한 사건으로 두산가에서 퇴출당했고, 형제들 사이에서 ‘왕따’로 외롭게 지내다 2009년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진가 2세 형제는 4명이다. 이들 4형제는 재계에서 유난히 지지고 볶았다. 고 조중훈 창업주가 2002년 세상을 뜨자 유산배분 절차를 밟던 양호-남호-수호-정호 형제들은 장·3남과 차·4남으로 각각 편을 나눠 갈등을 겪었고, 급기야 법정다툼으로 번졌다. 한진가 형제들은 유언장 진위, 정석기업 주식 양도, 면세점 납품권, 선친 기념관 건립, 김포공항 주유소 등을 두고 소송과 항소를 반복하다 모두 일단락됐지만 단 한 건도 자의적으로 손을 잡은 적이 없다. 모두 법에 의존해야 했다.

대한전선 일가도 4형제다. 고 설경동 창업주는 4남(원식-원철-원량-원봉) 중 후처의 자녀인 3남 고 설원량 전 회장에게 그룹의 적통을 물려주자 이복형제들이 반발하면서 갈라섰다. 오래 전 법적 분쟁이 이미 종결됐지만 앙금이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대성가 3형제는 10년째 등을 돌리고 있다. 고 김수근 창업주의 세 아들(영대-영민-영훈)은 2001년 김 창업주의 작고 당시 지분 다툼을 벌인 이후 발길을 끊고 있다. 이들은 2006년 김 창업주의 부인 고 여귀옥씨가 타계하자 어머니의 유산상속을 놓고 또다시 갈등을 빚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형제들은 유산정리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혀 왕래가 없다. 최근엔 ‘대성’사명을 놓고 서로 삿대질을 하고 있다.

달랑 형제가 둘만 있는데도 혈투를 벌인 집안도 있다. 한화가는 1981년 고 김종희 창업주의 타계후 승연-호연 형제의 경영구도에 별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1992년 분가 과정에서 경영권 다툼이 돌출됐다. 김호연 전 빙그레 회장이 형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상대로 재산권 분할 소송을 제기한 것. 무려 30여 차례나 공판이 열리는 등 지루하게 흘러간 이 송사는 결국 1995년 모친의 칠순 잔치를 계기로 두 형제가 손을 잡으면서 종결됐다.

LG·효성만 예외

롯데가의 경우 창업세대 형제간 맞붙었다. 신격호 회장과 그의 동생 신준호 푸르밀 회장은 1996년 서울 양평동 소재 롯데제과 부지 소유권을 놓고 한바탕 싸움을 벌였다. 형제는 조금씩 양보하는 선에서 4개월 만에 분쟁을 끝냈다. 대림가는 대림통상 경영권을 놓고 ‘배다른’삼촌과 조카 사이인 이재우 대림통상 회장과 이부용 전 대림산업 부회장이 맞붙은 ‘숙질간 전쟁’을 벌여 그 뒤로 서로 모른 척하고 있다.

재계 서열 30위권(공기업 및 민영화 공기업 제외) 내에서 창업주가 건재하거나 계열분리가 된지 얼마 되지 않은 그룹들을 제외하면 SK, LG, 동국제강, 효성, OCI, 코오롱, 영풍 등 7개 그룹만 골육상쟁을 겪지 않았다. 이 가운데 창업주의 자녀가 3명 이상인 그룹은 LG(4남), 효성(3남), OCI(3남)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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