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보다 진하다던 핏줄 ‘그렇다면 돈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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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보다 진하다던 핏줄 ‘그렇다면 돈보다는?’

일요시사 0 3847 0 0

2010년 연말인사에서 재벌가는 일제히 가족경영을 강화하고 나섰다. SK그룹은 2011년도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최태원 회장의 동생 최재원 SK 부회장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시키는 인사를 단행했다. 이에 앞서 LG그룹은 그룹 핵심 계열사인 LG전자 최고경영자에 구본무 그룹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을 앉히며 형제경영에 나섰다.

삼성, LG, SK, 대한전선 가족 경영 강화 나서
경영권, 재산 두고 벌어진 가족 분쟁 ‘다반사'

 3세경영도 본격화되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 이재용 부사장과 장녀 이부진 전무가 나란히 사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대한전선 고 설원량 회장의 아들인 윤석씨가 29세의 나이로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믿을 건 핏줄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내로라하는 재벌가 가운데 부모·형제 간에 ‘쩐의 전쟁’을 벌이지 않은 기업을 찾아보기 어려운 때문이다.

현대가의 경영권 다툼은 대표적인 재벌가 ‘쩐의 전쟁’으로 꼽힌다. 재벌가에서 가족분쟁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나쁜 예’로 회자될 정도다. 고 정주영 창업주는 슬하에 몽필(작고)-몽구(현대차그룹 회장)-몽근(현대백화점그룹 회장)-경의(딸)-몽우(작고)-몽헌(작고)-몽준(국회의원)-몽윤(현대해상화재보험고문)-몽인(현대기업금융 회장) 등 8남1녀를 두고 있다.

이 중 딸 경의씨를 제외한 아들들 사이에서 벌어진 경영권 다툼은 그야말로 ‘진흙탕’이었다. 이른바 ‘왕자의 난’을 시작으로 ‘시숙의 난’과 ‘시동생의 난’에 이르기까지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왕자의 난’은 정주영 창업주 타계 전인 지난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형제간 더 좋은 계열사를 차지하려는 욕심이 도화선이 됐다.

결국 현대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차그룹으로 ‘파이’를 나누면서 분쟁은 종결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들 마음속엔 앙금이 남았다. 현재까지도 이들은 서로 왕래가 뜸하다는 후문이다. 이어 지난 2003년에는 5남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부인인 현정은 회장이 현대그룹의 지휘봉을 넘겨받게 되자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동생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들었다.

현대그룹 지주회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매입하면서 현정은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인 것. 외국인 지분 급등에 맞서 현대그룹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속내는 뻔했다. 돈이었다. 소위 ‘시숙의 난’으로 일컬어지는 분쟁이다. 정상영 명예회장이 주변의 시선을 의식, 황급히 분쟁에 마침표를 찍었지만 불화의 씨앗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게 재계의 전반적인 견해다.

현대가 왕자의 난⇒
시숙의 난⇒시동생의 난

현대그룹을 탐한 건 비단 시숙만이 아니었다. 지난 2006년에는 정몽준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이 외국인투자자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으로부터 현대상선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현대상선 최대주주가 됐다. 당시 현대그룹은 충격에 휩싸였다.

현대상선이 현대그룹 소유지배구조의 중심에 놓인 사실상의 지주회사인 때문이다. 현대상선만 소유하면 현대그룹 전체가 자동적으로 따라온다는 얘기다. 결국 ‘시동생의 난’은 형님 회사를 빼앗으려 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한걸음 물러나면서 일단락 됐다.

그리고 최근 현정은 회장은 현대건설을 놓고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경합을 벌이고 있다. 현정은 회장에게 현대건설은 절실하다. 현대건설이 현대상선의 지분 8.3%를 보유하고 있어 인수전 결과에 따라 경영권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정은 회장은 회심의 풀베팅을 했고, 현대건설을 거머쥐는 듯했다. 하지만 자금 출처 논란이 불거져나오면서 판도변화가 생겼다. 그 틈을 노리고 현대차그룹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 끝에 지금 현대건설의 새 주인으로 현대차그룹이 지목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아직 확정된 게 없다는 점에서 현대건설을 두고 벌어진 시숙과 제수의 전쟁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국내 최고령 기업인 두산그룹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전조가 일기 시작한 건 지난 2005년 7월, 검찰에 한 장의 투서가 날아들어오면서다. 여기엔 박용성(3남) 회장과 박용만(4남) 부회장이 1700억원대의 비자금을 불법으로 조성해 사용해왔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일로 두산가는 발칵 뒤집어졌다.

더 놀라운 점은 제보자가 이들의 친형인 고 박용오(차남) 전 회장이었다는 점이다. 박용오 전 회장이 친동생들을 검찰에 밀고한 것은 맏형인 박용곤 명예회장으로부터 동생인 박용성 회장에게 회장직을 넘길 것을 요구받은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수사 끝에 결국 박용오 전 회장이 제보한 내용대로 비자금조성과 횡령, 분식회계 등 각종불법행위가 사실로 드러났다. 사태의 확산을 막기 위해 박용성 전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은 결국 자진사퇴를 해야만 했다. 이 일로 박용오 전 회장은 ‘배신자’라는 낙인을 받게 됐다. 그룹은 물론 가문에서도 제명됐다.

박용오 전 회장의 두 아들 경원-중원씨도 미운털이 박힌 건 마찬가지다. 두산 오너가 3세 형제들(용성·용현·용만)이 나란히 주력계열사인 중공업·건설·인프라코어를 맡아 경영전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반면, 경원-중원씨는 그룹 경영에서 빠져 있다. 이후 ‘형제의 난’은 지난 2008년 인수한 성지건설의 경영난에 시달려온 박용오 전 회장이 자살로 세상을 떠나면서 비극적 결말을 맺게 됐다.

이복형제 사이에서 집안의 분란을 가져온 사례도 있다. 파라다이스그룹, 대한전선그룹, 대림그룹 등이 대표적이다. 파라다이스그룹 일가는 생모가 서로 다른 자녀간 법정 싸움을 벌였다. 고 전락원 파라다이스그룹 창업주는 부인 고 최경애씨와 사이에 필립(파라다이스그룹 회장)-원미 등 1남1녀를 뒀다. 여기에 재혼한 서모씨와 사이에서 얻은 막내딸 지혜씨까지 있다.

이복형제 간 분쟁
파라다이스·대한전선·대림

지혜씨는 전락원 창업주가 2004년 11월 세상을 뜨자 “오빠가 수조원대의 아버지의 재산을 독차지했다”며 필립-원미 남매를 상대로 상속재산 분할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남매의 손을 들어줬다.

슬하에 4남2녀를 둔 고 설경동 대한전선 창업주의 두 아내 사이에서 낳은 이복형제 사이에서도 분쟁이 벌어졌다. 첫 번째 부인 고 이태하씨와 사이에 원식(전 대한방직·대한산업 회장)-원철(전 대한방직·대한산업 고문) 등 2남을, 두 번째 부인 고 유인순씨와 사이에 원량(전 대한전선 회장)-명옥-원봉(대한제당 회장)-영자 등 2남2녀를 뒀다.

고 설경동 창업주와 아들 원식씨는 5·16 군사쿠데타 직후 부정축재환수금 분담액수를 두고 법정 다툼을 벌였다. 이 싸움은 후처의 자녀 원량씨가 그룹의 적통을 이어받자 이복형제들의 이해관계까지 얽히면서 가족간 갈등으로 확대되는 등 다소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형제 기업’인 대한산업과 대한전선은 한때 남대문로 사옥을 같이 사용했는데 분쟁 이후 칸막이를 칠 정도로 이복형제간 왕래를 끊은 상태다. 혼인 외 관계인 ‘애첩’ 사이에서 낳은 자녀와의 분쟁도 있었다.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은 4남3녀를 뒀는데, 장남 의석씨와 차남 문석(수석무역 부회장)씨 등 2남3녀만 본처인 박정재씨의 친자다. 나머지 3남 우석씨와 4남 정석(동아제약 부사장)씨는 둘째 부인 최영숙씨의 소생이다.

현대, 금호, 두산, 동아제약 등 빠지는 기업 없어
대명·녹십자 부모자식간 상속 다툼 벌어지기도

강신호 회장은 박정재씨와 오랜 별거 끝에 지난 2006년 7월 합의 이혼했다. 강 회장은 당시 79세였다. 이 사건은 재벌가 ‘황혼 이혼’으로 시선을 모았다. 앞서 박씨는 2005년 8월 강 회장을 상대로 위자료 53억원 등을 요구하는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서울가정법원에 냈다.

이 사건은 특히 부자간 갈등이 증폭되는 계기가 됐다. 강 회장이 박씨 소생인 장·차남을 배제하고 배다른 3·4남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후계구도 정비에 나서자 양측은 동아제약 경영권을 두고 수년간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대림그룹 일가의 경우 엉뚱한 데서 사고가 터졌다. 삼촌과 배다른 조카가 ‘숙질의 난’을 벌인 것.

고 이재준 대림그룹 창업주는 고 이경숙씨와 결혼해 장남 준용(대림그룹 명예회장)씨를 낳았으나 이 여사는 출산 4년 만에 타계했다. 이후 이재준 창업주는 박영복씨와 재혼, 부용(전 대림산업 부회장)씨를 얻었다. 준용-부용이 이복형제인 셈이다. 이 창업주는 가족 간 불협화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생전 그룹의 모기업인 대림산업을 장남 준용씨에게 물려주면서 계열분리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정작 이 창업주의 동생 재우(대림통상 회장)씨가 대림통상 경영권을 놓고 부용씨와 대립하기 시작했다. 1999년부터 시작된 이 분쟁은 8년만인 2007년에서야 끝이 났다. 당시 이재우 회장이 대림통상의 알짜 계열사 대림요업(현 대림비앤코)을 내어주고 줄곧 경영권을 위협하던 2대주주 이 전 부회장 일가로부터 주식을 전량 사들이는 선에서 마무리됐지만 ‘휴전상태’일 뿐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처럼 골육상쟁이 난무하던 재계에도 모범사례가 있었다. 금호가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 금호가는 집안의 대소사부터 그룹의 경영현안까지 중요한 의사결정은 철저한 가족회의를 통해 결정할 정도였다. 물론 ‘형제의 난’이 터지기 전까지의 얘기다. 사태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건설업계 1위인 대우건설을 인수했고, 이 여세를 몰아 지난 2008년 물류업계 1위인 대한통운을 집어삼키면서 재계서열 11위에서 8위(민영화 공기업 제외)로 급부상했다. 그룹 측은 2건의 대형 인수·합병(M&A)에 자그마치 10조원에 이르는 돈을 쏟아 부었다.

국내 M&A 사상 최대의 자금이 투입된 것이다. 당시 박찬구 회장이 적극 반대의사를 표명했지만 박삼구 회장은 이를 무시하고 M&A를 밀어붙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형제의 우애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였다.

박찬구 회장의 예상은 적중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두 대어를 낚기 위해 늘린 회사채가 부채 증가로 이어지면서 그룹 전체의 유동성 위기를 불러왔다. 자연스레 박삼구 회장의 책임론이 불거졌다. 무리한 덩치 키우기가 그룹의 재무건전성을 망쳤다는 추궁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유산 상속 두고
부모 상대 소송

박찬구 회장도 이에 가세했다. 박삼구 회장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부은 것. 이 때문에 재계 호사가들 사이에선 금호가 형제 불화설이 나돌았고 이는 이내 현실로 나타났다. 형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박찬구 회장이 돌연 그룹 경영권을 노린 ‘쿠데타’를 일으킨 것. 곪을 대로 곪은 환부가 터져 나온 것이다. 박찬구 회장은 아들과 함께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당초 10.01%에서 18.47%로 늘렸다.

‘10.01%’는 경영에 참여하지 않은 5남 박종구 씨를 제외한 금호가 4형제(성용-정구-삼구-찬구) 일가가 동일하게 보유해온 이른바 ‘황금 지분율’이다. 뒤늦게 박삼구 회장도 금호석유화학 지분(11.77%)을 사들였지만 역부족이었다.동생에게 뒤통수를 맞은 박삼구 회장이 꺼내 든 것은 ‘동반퇴진’ 카드였다. 박삼구 회장은 당시 회장에서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면서 다른 친인척들의 지분을 동원, 박 전 회장의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직을 박탈했다.

‘형제경영의 모범’이라 불릴 만큼 형제애를 과시했던 금호가의 25년 아름다운 전통이 막을 내린 순간이었다. 재벌가 ‘혈전’이 꼭 형제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란 법은 없다. 심지어 부모자식 간 법정 다툼으로까지 이어진 일도 있었다.

지난해 5월, 대명그룹의 창업주 고 서홍송 회장의 막내딸 지영씨가 “미성년이던 2001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대명콘도의 지분을 어머니와 오빠가 나눠 가졌다”며 친어머니 박춘희씨와 오빠인 준혁씨를 상대로 자신의 상속지분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2007년 대명홀딩스에 입사한 지영씨는 이듬해인 2008년 자신의 지분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소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은 사실이 일파만파 퍼져나가자 주변을 의식한 지영씨가 소를 취하하면서 이른바 ‘막내딸의 난’은 일단락됐다. 덕분에 사태가 법정 싸움으로 비화되진 않았지만 불씨마저 사그라진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녹십자도 마찬가지다. 고 허영섭 녹십자 창업주 유산을 놓고 장남인 성수씨가 어머니 정인애씨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유언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법정분쟁이 점화됐다. 허영섭 창업주는 보유중이던 녹십자 홀딩스 주식 56만여주 가운데 30만여주와 녹십자 주식 26만여주 중 20만여주를 사회복지재단 등에 기부하고, 나머지는 부인과 차남과 삼남에게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장남인 성수씨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병중에 임의대로 유언을 작성케 해 자신은 유산을 전혀 상속받지 못하게 됐다”며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처럼 재벌가에선 경영권·재산 관련 가족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내로라하는 재벌가 가운데 부모·형제 간 분쟁을 벌이지 않은 기업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물보다 진하다던 핏줄이 돈보다 진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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