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필수 아닌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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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필수 아닌 선택

일요시사 0 2258 0 0

최근 ‘비혼(非婚)’ 여성이 늘고 있다. ‘비혼’은 결혼을 아직 하지 않았다는 ‘미혼(未婚)’이라는 말을 바꾸자는 의도로 등장했다. 언젠가는 해야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쓰이는 미혼 여성과는 달리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선택했다’는 것.

예전이면 ‘노처녀’로 불렸을 30대 초반 여성 10명 중 3명은 속칭 ‘골드미스’라는 통계도 ‘비혼 여성’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비혼 운동이 처음 시작된 2007년 이후 ‘비혼’은 조용히, 하지만 강하게 확산되고 있다.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해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선택한 비혼 여성에 대해 알아봤다.

자발적으로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비혼 여성’ 증가세
사회적 인정 넘어 ‘비혼’들의 다양한 모습 보여주고파

지난해 8월9일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이런 말도 있어요’ 코너에 ‘비혼녀’라는 단어가 올라왔다. 해당 코너는 국립국어원이 조사한 새로운 말 중 아직 사전에 오르지 않은 말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을 묻는 장이다. 국립국어원은 ‘비혼녀’를 ‘결혼하지 않은 여성.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의 ‘미혼’과 달리 자발적으로 혼인을 선택하지 않은 상태임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로 정의했다.

‘비혼’ 바로 알기

그렇다면 일반 국민들은 “현재 일상생활에서 비혼녀라는 말을 쓰십니까”라는 질문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지난 6일까지의 설문조사 반응을 살펴보니 응답자 229명 가운데 72%인 165명은 ‘비혼녀’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고 답했다. 26%인 60명은 ‘제시된 뜻으로 쓰고 있다’고 답했고, 나머지 1%(4명)는 ‘다른 뜻으로 쓰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비혼녀’의 국어사전 게재 여부에 대해 묻자 50%인 116명이 ‘해야 한다’고 답했고, 49%(113명)는 ‘안 해도 된다’고 응답했다.

‘비혼’은 누구나 결혼해야 하고 결혼하고 싶어 한다는 고정관념에 물음표를 던지면서 생겨난 말이다. 용어의 정의는 충분히 설명이 됐으리라 생각된다. 그래도 아직은 조금 낯선 말이다. 하지만 잘 몰라서 그렇지 비혼 운동의 역사는 꽤 깊다. 여성단체 ‘언니네’는 2005년, 우리가 ‘정상가족’이라고 여기는 제도 밖에서 살아가는 비혼 여성들의 삶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고, 이어 2007년 제1회 비혼 여성 축제를 개최하며 비혼 선언을 내놓았다.

‘언니네’가 내놓은 비혼 선언은 “결혼제도가 잘못됐다”는 내용을 포함하지 않는다. 다만 결혼을 통한 가정만을 정상으로 여기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반대하고 홀로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와 공동체를 모색하겠다는 시도다.

‘언니네’는 ‘비혼’을 이렇게 설명했다. “‘비혼’이란 꼭 혼자서만 살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과거에 결혼을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어야 한다는 증명서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꼭 멋진 집, 멋진 옷, 멋진 차로 폼을 낼만큼 돈을 잘 벌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 붙는 설명은 단 하나, 결혼이라는 법적, 제도적, 정신적 울타리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 혹은 그렇게 살겠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의 20대 후반부터 30대 여성들이 가장 듣는 말 중 하나는 “결혼 안 해?”다. 여성들은 언젠가는 꼭 결혼을 해야 하는 ‘대기자’ 명단에 이름이라도 올라가 있는 것처럼 들린다. 아이러니한 것은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 질문을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다. 또 서른이 넘도록 결혼하지 못한 자신을 보며 부끄러워 하기도 한다.

‘나는 결혼을 해야 하는 건가?’ ‘나는 과연 결혼을 원하는가?’라는 자문 한 번 해본 적 없이 결혼에 대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 그런 의미에서 ‘비혼 운동’은 사실 많은 여성들에게 경종을 울릴 만한 시도로 평가된다. 결혼에 대한 고민과 생각 끝에 확고한 무언가가 머리속에 정립됐다면 ‘결혼’을 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다.

요즘 결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박모(34·여)씨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가 있는데 몇 년째 구체적인 결혼얘기를 꺼내지 않고 있다. 게다가 남자친구가 유학생활을 오래 하는 바람에 얼굴도 못보다 보니 혼자 지내는데 익숙해졌다”면서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는 결혼하지 않고 이렇게 혼자 사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서른… “결혼 안 해?”

또 하나,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돈 잘 벌고, 잘 나가는 여성, 흔히 말하는 ‘골드 미스’ 정도는 돼야 ‘비혼’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은 있다. 능력 있는 여성, 인정받는 여성이라면 결혼이라는 절차 없이도 혼자서 잘 살아갈 수 있고, 또 실제 결혼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여성들도 많다. 하지만 그런 여성들에게만 ‘비혼’의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혼’은 능력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신념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자신의 인생 나침반의 한 부분이다. 송모(28·여)씨는 자신은 비혼 여성으로 살아갈 것임을 밝혔다. 송씨는 “중·고등학교때부터 은연중에 독신으로 살고 싶다는 표현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연애를 하게 됐고, 결혼을 위해 양가 상견례까지 마쳤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하지만 뭔가 계속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삶이 과연 한 사람의 아내로, 어머니로, 며느리로 남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면서 “결국 남자친구와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통해 결혼을 취소하고, 비혼 여성으로 살아가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 비혼 운동은 간혹 어떤 특정 여성(주로 레즈비언으로 대표되는)만의 투쟁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비혼 운동가 중 레즈비언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비혼이 결혼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할 때 이것은 기혼 여성이 아닌 모든 여성을 대변한다. 이는 곧, 그 중에는 결혼이 목표였던 여성이 있을 수도 있고, 독신을 결심한 사람도 있고, 결혼을 경험해 본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아직 미혼’이든, ‘영원히 독신’이든, ‘다시 싱글’이든 결혼하지 않은 상태의 모든 여성들이 ‘비혼 운동가’로 나설 수도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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