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정치인 ‘신인 배제 음모론’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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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정치인 ‘신인 배제 음모론’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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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싸움에 새우등 남아나지 않는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출전 선수는 정해졌는데 경기장이 문을 열지 않는다. 오는 15일부터 제20대 총선에 출마할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되지만, 정치권은 선거구 획정에 대해 아직 이렇다 할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출마를 고려 중인 정치신인들 사이에서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현역들의 의도된 전략 아니냐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서 선거구획정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한 '여야4+4회동'에 앞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사진 오른쪽)이 웃으며 획정을 반대하며 피켓을 들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주승용(사진 가운데)·유성엽 의원 등 농어촌 소속 의원들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선거구 획정 문제가 공회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3일 정의화 국회의장의 주재로 여야 지도부가 회동해 ‘정기국회 내 선거구 획정 문제를 마무리 짓자’고 합의했던 것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정치권은 앞서 지난 9월1일 해당 문제를 논의할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하 정개특위) 활동 시한을 지난달 15일로 연기지만, 이도 어렵게 되자 오는 15일까지로 두 차례에 걸쳐 연장한 바 있다.

선거구 공회전

오는 15일부터 제20대 총선에 출마할 예비후보자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앙선관위)에 등록하는 절차가 시작된다. 문제는 등록을 해도 선거구 획정이 내년을 넘어가면 무효가 된다는 사실이다. 앞서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현행 선거구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려 올 연말(12월31일)을 넘길 시 선거구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중앙선관위 한 관계자는 “사실이다”라며 “헌재에서 헌법불합치가 났기 때문에 올해 안으로 구역이 확정 안 되면 내년 1월1일부터는 ‘선거구 구역표(이하 구역표)’ 전체가 무효가 된다”고 말했다.

관계자 설명에 따르면 원리는 다음과 같다.

구역표가 없어지면 선거구라는 개념이 일시적으로 사라지게 되는데 관련 법률을 보면 ‘현재 구역표는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하고 12월31일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적용 된다’고 나와 있다. 즉 구역표가 폐지되면 예비후보자 등록을 할 선거구가 없어지는 것이고, 선거구가 없어지면 후보자 지위도 상실된다는 원리다.

게임의 시작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필드가 정해지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함에 따라 당사자들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그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다.

강북을 출마를 고려 중인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박용진 전 대변인은 “분구·통합이 예상되는 지역의 예비후보자들은 어디 가서 명함을 뿌려야 하는지조차 불분명해지는 것”이라며 “누가 내 유권자인지 모르는 채 깜깜이 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고 지적했다.

양천갑 출마를 준비 중인 새정치연합 소속 황 희 전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은 “현역들은 정책포럼이라는 미명아래 자신의 이름을 걸고 플랜카드를 동네마다 20개 이상씩 붙인다”라며 “반면 우리는 사무실에 이름도 못 붙이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또한 황 전 행정관은 ‘인지도’가 ‘지지도’로 연결된다는 점을 봤을 때 이는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내다봤다.

 



 ▲ 지난달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서 김무성(사진 가운데)·문재인(왼쪽) 여야 대표, 원유철·이종걸 여야 원내대표 등이 참석해 '4+4여야 선거구획정 회동'에 앞서 참석자들이 반가운 듯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서울지역 예비후보자는 “답답한 상황”이라며 운을 뗀 뒤 “예비후보자에게는 이중의 비용부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그는 “현역 의원들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기형적인 형태가 발생할 수 있다”라며 “(예비후보자 입장에서는) 출마한다는 사실을 유권자에게 알리는 기회가 박탈되는 것이니 그 자체가 헌법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의견을 종합해 보면 예비후보자들은 명함·현수막 제작과 직원채용에 드는 비용, 후보자 지위를 상실함에 따른 후원금 반납이라는 현실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의정보고’라는 명목으로 활동하는 혁역들을 바라만 봐야 하는 실질적인 불리함을 우려하고 있다. 만약 선거구 획정이 내년으로 넘어갈 시 이들은 획정이 되는 시점부터 재등록 절차를 거쳐야만 선거활동을 재개할 수 있다.

제기되는 음모론 “급할 거 없으니까”
요원한 선거구 획정, 정치권은 네 탓만

이들은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는 이유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앞서 입장을 밝힌 박 전 대변인은 “(현역들이) 손해 보는 것 없으니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는 것이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으며, 익명의 후보자는 “국민들의 욕을 먹더라도 현역입장에서는 굳이 서두를 필요성이 없다는 암묵적 심리가 발동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황 전 행정관은 “다른 일 같았으면 (정치권이) 시간을 지체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더 나아가 “특정 스타급 예비후보자 이외에는 (국회) 진입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진단한 뒤 “그러니 (예비후보자들이) 꾸준히 준비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방송에 출연해 소위 한방에 뜨려는 기형적 구조를 생성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앙선관위 산하 선거구 획정위원회(이하 선거구 획정위) 또한 조속한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전했다. 선거구 획정위 한 관계자는 전화 통화에서 “(공식적으로) 나온 입장은 없다”면서도 “(선거구 획정위에게) 주어진 권한은 (국회에서) 기준이 왔을 때 그에 맞춰서 획정작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기다리는 입장이다”라며 “빨리 기준이 정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획정 기준을 제시해야 하는 정개특위의 상황은 어떨까. 여야가 첨예한 입장차만 확인하고 있어 연내 기준 마련이 불투명한 상태다.

정개특위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이학재 의원실 관계자는 “야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는데 이는 선거구 획정 논의와 무관한 제도 문제를 연결시키는 행위”라며 “여당의 발목을 잡기 위한 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입장을 전했다.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새정치연합 김태년 의원실 관계자는 “정치에서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은 있을 수 없는 것인데 여당은 이것저것 다 떠나서 비례무용론만 고집하고 있다”라며 “(입장이 갈린다면) 양쪽이 중간 어딘가에서 만나야 하는데 여당은 입장의 변화가 일체 없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현역의 시간 끌기 아니냐’는 음모론에 대해선 두 의원실 관계자 모두 “예비후보자 입장에선 당연히 불만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도했다거나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병석 정개특위 위원장은 중재안을 제시했다. 일명 ‘이병석안’의 골자는 비례대표를 7석 줄여 지역구 7곳을 존속시키는 대신 전국 단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는 절충안이다. 이 위원장 측 관계자는 이병석안에 대해 “3당(새누리당·새정치연합·정의당)의 요구안을 합친 것”이라며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변수가 많은 상황에서 제시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안”이라고 설명했다.

첨예한 대립

그러나 이 또한 여야의 입장이 갈리고 있어 도입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새정치연합은 해당 안에 대해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인 반면, 새누리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포함된 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장기전을 넘어 연장전으로 치닫고 있는 선거구 획정.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기까지는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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