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조’ 든 집터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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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조’ 든 집터의 비밀

일요시사 0 2512 0 0
A사의 부동산 매입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A사가 산 집이 억세게 운 나쁜 터로 소문났기 때문이다. 이 집은 한때 대기업 회장으로 잘나가던 전 주인이 하루아침에 망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재계에 ‘터가 안 좋다’는 흉흉한 얘기들이 나돌았다. 그런데 A사는 왜 이런 ‘재수 없는’ 집을 사들인 것일까.

A사, 대기업 전 회장 소유 주택 법원경매로 매입
부도에 자살…‘재수 없는 집’ 흉흉한 소문 돌아

재계에서 소문난 ‘재수 없는 집’이 팔렸다. 매입자는 금융사인 A사. A사는 흉흉한 소문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법원 경매에 나온 이 집을 냉큼 채갔다. 그것도 예상가보다 비싸게 사들였다.

구설에 오른 집은 국내 대표적인 부촌인 서울 성북구 성북동 ×-××번지에 소재한 대지 면적 959㎡(약 290평), 연면적 512㎡(약 155평)의 2층 단독주택이다. 이 건물은 모 그룹 B 전 회장의 소유였다. B 전 회장은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 총수를 지낸 한때 잘 나가던 재벌이었다.

“나쁜 기운 가득”

그러나 재산과 경영권을 두고 형제들과 갈등을 빚다 집안에서 퇴출을 당하다시피 쫓겨났다. 홀로 분가한 B 전 회장은 형제들 사이에서 ‘왕따’로 외롭게 지내면서 따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곧 경영난에 시달렸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문제의 집을 두고 재계에 이런저런 뒷말이 나돈 게 이때부터다. ‘터가 안 좋기 때문에 B 전 회장이 망했고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명실상부 최고의 부자 동네인 성북동 지역은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 중 명당으로 꼽힌다. 이는 ‘상위 1%’국내 재벌들이 앞다퉈 둥지를 트는 이유다.

한남동은 ‘배산임수’와 ‘영구음수’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진 입지로, 한강물이 감싸고도는 데다 남산에서 서빙고동으로 연결되는 산줄기가 품어 안고 있는 형국이란 게 풍수가들의 전언. 때문에 집집마다 대대손손 재물이 가득 쌓이는 터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 전 회장은 물론 그의 자손들까지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는 등 불운한 삶을 살자 ‘집터 괴담’은 더욱 확산됐다.

이 집은 B 전 회장이 자살한 후 두 아들에게 상속됐다. 하지만 이미 그동안 쌓이고 쌓인 부채를 갚지 못해 채권자들이 줄을 선 뒤였다. B 전 회장은 회사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다 썼으나 결국 기업회생절차(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고스란히 빚으로 남아 집에 압류를 당했다. 세금도 제때 내지 못해 관할 구청과 세무서의 ‘빨간 딱지’도 붙었다.

채권자인 ○○은행, ○○캐피탈, ○○저축은행 등은 이 집을 공동 담보로 잡고 있다가 B 전 회장의 자녀들이 수십억원의 이자와 원금을 상환하지 못하자 경매에 넘겼다. 최근 39억7000만원의 법원 감정가가 나온 경매에서 이 집을 낙찰 받은 곳이 바로 A사다. A사는 감정가보다 높은 41억3800만원에 사들였다.

재계에선 A사가 사택용으로 B 전 회장의 집을 매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영진의 거주지로 활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집 주인이 불미스런 일을 당한 집은 꺼리는 게 보통. 그런데도 A사는 덥석 물었다.

경매업계는 악소문이 안 났다면 모를까 유명한 주인이 망해 죽어나간 집이 한 차례도 유찰되지 않은 점과 감정가보다 비싸게 팔렸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란 평가를 내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사례가 거의 없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박건배 전 해태그룹 회장, 안병균 전 나산그룹 회장, 장치혁 전 고합그룹 회장, 김영진 전 진도그룹 회장, 엄상호 전 건영그룹 회장 등 1980∼90년대 ‘재계 황제’로 군림했다 순식간에 몰락한 총수들이 살던 집들은 대부분 1∼2차례 유찰되거나 감정가보다 낮은 금액에 새 주인을 찾았다.

게다가 개인이 아닌 기업에서 샀다는 점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재계에 널리 퍼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B 전 회장의 집을 둘러싼 소문을 모를 리 없어서다. A사의 규모가 작지 않아 더욱 의구심이 든다.

‘장사’를 하는 기업들은 풍수나 미신에 민감하다. 대기업일수록 더 그렇다. 사실 기업과 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기업에서 매입하는 부동산은 사운과 맞닿아 있다고 풍수가들은 입을 모은다.

터에 민감한 총수들이 적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 기업의 경우 부동산을 살 때 아예 지관을 대동해 옥석을 고르기도 한다. 하다못해 건물 ‘뒷간’까지 샅샅이 두루 훑는다. 일종의 ‘경영 나침반’으로 활용되는 터가 회사의 길흉화복 원천지라고 판단해서다.

모르고 샀나?

특히 불황 땐 ‘안 되면 조상 탓’이란 말대로 터와 같은 운에 기대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미신 따위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돌다리도 두드리는 심정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혹시나’하는 기대 때문에 기업으로선 모른 척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부동산을 매입할 경우 투자 관련 부서에서 먼저 과거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본다”며 “대외적으로 시치미를 뚝 떼지만 사실 여간 신경 쓰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모 그룹 한 직원은 “몇년 전 한 건물 매입을 검토할 당시 ‘지세가 안 좋아 기업이 입주하면 망한다’는 터에 대한 좋지 않은 속설이 나돌아 전문가를 통해 꼼꼼히 따져봤다”며 “터가 세서 나쁜 기운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인수를 포기한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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