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이 남긴 파장 & 서울시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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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4주민투표 후폭풍>오세훈이 남긴 파장 & 서울시 과제

일요시사 0 1955 0 0
여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투표율 미달(25.7%)로 투표함 개봉조차 하지 못하고 끝났다. 이는 오 전 시장의 사퇴시기를 둘러싼 당 지도부와 청와대의 입장차, 차기 시장 재보선 문제, ‘오세훈 표’ 정책의 제동 등 정치권에 메가톤급 후폭풍을 몰고 왔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청와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존심 강한 오 전 시장은 끝끝내 자진사퇴를 강행했다. 이로써 여·야 할 것 없이 차기 서울시장 후보 물색에 분주한 모습이고, 10월 국정조사 이후 사퇴를 주장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오세훈의 덫’에 빠졌다는 평가와 함께 깊은 한숨을 내쉬는 모양새다.

청와대·한나라당의 반대에도 끝끝내 사퇴 강행해
홍준표, 오 전 시장 문전박대 “더 이상 볼일 없다” 

오세훈은 역시 ‘강남시장’이었다. 전체 투표율 25.7%를 기록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30%이상을 기록한 곳은 서초구(36.2%), 강남구(35.4%), 송파구(30.6%) 3곳에 불과했다. 더구나 주민투표 개표 가능 마지노선을 넘은 곳은 두 곳에 그쳤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투표율 25.7%를 보인 이번 주민투표가, 작년 6·2지방선거 때 오세훈 후보를 찍은 유권자의 수를 웃돈 점을 들면서 내년 총선에도 ‘청신호’가 켜졌다고 기대 섞인 평가를 내놓았다.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에는 기대감을 나타냈지만 10월 재보선에 대해서는 불안감을 나타내며 4월 재보선을 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 전 시장의 전격 사퇴로 10·26 재보선이 확정되고 당내 갈등과 혼선이 이어지며 여권 전체는 혼란에 빠졌다.

약속 깬 ‘오세이돈’
격분한 ‘홍반장’

오 전 시장은 주민투표 무산이 공식 확정된 후 굳은 표정으로 서울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시민들의 뜻이 오롯이 담겨있는 그 투표함을 개봉조차 할 수 없게 돼서 참으로 안타깝다”며 유감의 뜻을 밝혔다.
 
이어 “투표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여러 가지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불구하고 투표에 참여해주신 서울시민 여러분, 그리고 유권자 여러분께 고개 숙여서 감사드린다”며 자신을 지지해준 유권자들에게만 고마움을 표시했다.
 
투표 직후 거취를 밝히겠다고 밝힌 오 전 시장이었지만 그는 이 같은 말만 남기고 일문일답도 없이 서둘러 기자회견장을 빠져 나갔다.

서둘러 자리를 옮긴 오 시장은 서울의 모처에서 홍준표 대표, 임태희 대통령실장,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과 심야 회동에 참석해 거취문제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홍 대표·임 실장·김 수석 모두 “당장 사퇴는 안된다. 사퇴시점을 10월로 넘겨야 한다”며 시장직 사퇴 시점 연기를 강력히 촉구했다.

특히 홍 대표는 투표 무산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오 시장이 승리 했다고 본다”고 궤변(?)을 늘어놓으면서까지 오 전 시장을 감싸며 사태를 추스리려 애썼다.

하지만 자존심 강한 오 전 시장의 고집은 꺾지 못했다.

오 전 시장은 주민투표 무산 이틀뒤인 지난 8월 26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주민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시장직에서 물러나고자 한다”며 “이것이 국민의 뜻”이라고 밝히며 사퇴를 강행했다.

이는 홍 대표를 격노하게 만들었다. 오 전 시장이 사퇴한 26일 조찬 간담회를 가진 홍 대표는 “어젯밤(25일) 10시쯤 오세훈 시장이 집으로 찾아왔기에 쫓아내면서 ‘앞으로 다시는 볼 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오 전 시장에 대해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홍 대표는 이어 “국익이나 당보다도 개인의 명예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당인의 자세가 아니고 조직인의 자세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홍 대표는 특히 비공개회의에서 오 전 시장에 대한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어떻게 개인의 명예만 중요하냐. 오 시장이 당이나 국가를 도외시하고 자기 모양만 중요시한다”며 “당이 어떻게 되든, 10월 재보선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것 아니냐. 그런 식으로 하려면 혼자 정치하지, 왜 조직으로 하느냐”고 쏘아붙였다.

홍 대표는 앞서 오 전 시장의 즉각 사퇴 방침을 전해 듣고 “오 시장한테 세 번 농락당했다”며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대표가 언급한 ‘세번 농락’은 당과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주민투표를 강행한 것, 주민투표율과 시장직을 연계한 것, 10월초 사퇴약속을 번복하고 즉각 사퇴를 결행한 것 등으로 당 지도부는 이들 사안에 대해 모두 강력 반대했었다.

김기현 대변인은 “홍 대표의 설명을 듣고 간담회의 참석자들 모두 ‘이제서야 수긍이 간다’는 분위기였다”며 “지도부 책임론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홍 대표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10월 보궐선거가 치러지면 홍 대표로선 좋을 게 하나도 없다. 만약 한나라당이 패배해 야권에 시장직을 빼앗길 경우 가장 먼저 지도력 문제가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사태를 잘 수습해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더라도 오 시장의 결단으로 인해 보수세력이 결집한 만큼 오 시장만 ‘보수의 아이콘’으로 주목 받을 뿐 승리의 공이 홍 대표 몫으로 돌아갈 공산은 거의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내년 총선에서의 ‘홍준표식 공천’을 통해 ‘홍당’ 체제를 굳히고 내심 차차기를 도모하고 있는 홍 대표로선 중대한 변수이자 차질이 불가피하다.

홍 대표로서는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관계없이 오 전 시장이 기획하고 주도한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인해 시련의 시간을 맞고 있는 셈이라 화가 날 만도 하다.

오세훈 파장
당·청 대혼란 야기

오 전 시장의 사퇴 불똥은 청와대에도 튀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8월 18일 선거를 독려하며 부재자투표를 했고, 라디오 연설에서 “선심성 복지로 국가부도 위기에 이른 남유럽 국가들의 사례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고 지원사격을 했음에도 주민투표에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또한 투표 후 최측근인 임 실장과 김 수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퇴를 감행한 것은 이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증거라는 분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주민투표는 무상급식 확대에 대한 의사를 묻는 정책투표”라며 “투표 결과를 향후 정국운영과 연결지어 확대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선을 그었다.

친박계에서 제기한 의혹도 청와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한나라당 핵심 당직자는 “올해 초 박형준 사회특보가 ‘무상급식 문제를 복지포퓰리즘과의 대결구도로 몰고 가면 보수층을 결집시켜 우리가 이길 수 있다’며 도와달라고 요청했다”며 “오 전 시장에게 주민투표를 하자고 권유한 사람은 박 특보인 걸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박 특보는 지난해 말 서울시의회와 극한적으로 대립하던 오 전 시장에게 ‘주민투표에 부쳐 승부수를 띄워라. 이기면 보수의 영웅이 된다. 박근혜 전 대표의 대항마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는 게 여권에 퍼져 있는 정설”이라고 주장했다.

친박계의 한 중진의원도 “일부 친박계 의원들이 주민투표에 거부반응을 보인 것도 박 특보의 의도를 의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 차원에서 주민투표에 개입한 적은 없다”고 말했고 박 특보도 “어이없는 마녀사냥”이라고 일축했다.

박근혜 ‘조기 등판론’ 무르익어, 10·26재보선 활약?
급제동 걸릴 오세훈표 정책과 복지, 어떻게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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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내분란도 불가피해 보인다. 무엇보다 “주민투표는 서울시민의 일”이라며 오 전 시장의 지원 호소 러브콜을 끝끝내 거절한 박 전 대표의 책임론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친이계를 중심으로 당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너무 수수방관했다”며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친박계 의원들이 반발하고 나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화해무드 속에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계파갈등이 재현될 우려도 점쳐지고 있다.

10월 재보선에 박 전 대표의 ‘조기 등판’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는 본격적인 대선행보의 시점을 내년 초로 설정하고 있는 박 전 대표에게 여간 부담스러운 대목이 아니다.

반면 민주당은 선거 승리로 정국의 주도권을 가져오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복지에서 승리했다는 의미도 있다. 투표 불참 운동을 주도해 성공하면서 제1야당의 명분을 지켰다. 지난 6·2지방선거에서 시작된 상승세를 이어간 점도 수확이다.

주민투표 결과는 여야의 내년 총선·대선 전략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무상급식’을 ‘복지 포퓰리즘’으로 선을 그은 여권도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민심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앞으로 ‘복지경쟁’이 가열될 공산이 커 보이는 이유다.

전면 중단, 축소 위기
‘오세훈표 정책, 복지’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오 전 시장의 전격 사퇴로 그동안 추진되던 한강르네상스, 뉴타운, 서울형 그물망 복지 등 이른바 ‘오세훈표 정책’에 급제동이 걸릴 전망이라는 것이다.

권영규 행정1부시장 권한대행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서울시는 시의회가 강력 반발하고 있는 일부 사업의 경우 전면 중단 또는 축소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먼저 오 시장이 애착을 갖고 추진해온 한강 르네상스(한강 공공성 회복 선언) 사업은 궤도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한강 르네상스는 한강을 시민 품으로 돌려준다는 취지로 한강 주변 경관과 문화시설, 생태계 복원 등의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서울항, 한강예술섬, 세빛둥둥섬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 사업내용에 대해 시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 등 야권은 비용 대비 효과가 크지 않고 환경 파괴가 예상된다며 줄기차게 반대해 왔다.

압구정·여의도·합정·성수·이촌 등 한강변 5곳에 대한 재개발사업도 차질이 예상된다. 당초 시는 땅 일부를 기부채납 받아 공공용도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기부채납 비율을 두고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오 전 시장의 사퇴로 사업 추진동력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뉴타운사업도 재검토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부동산경기 침체 등으로 인해 사업성이 나빠지면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뉴타운 내 존치구역을 해제하고 휴먼타운 조성 등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대안을 내놨지만 한계에 달했다는 것이 야권의 주장이다.

디자인서울도 일부 수정될 공산이 커졌다. 막대한 사업비와 야권의 반발 등에 부딪쳐 있기 때문이다. 주요 사업은 서울신청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광화문광장, 디자인서울거리 등이다. 다만 이미 상당부분 진행 중인 신청사나 DDP 등은 그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한강 북측인 북한산과 남산, 용산을 거쳐 남측인 관악산에 이르기까지 녹지축을 조성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남산 르네상스사업도 고비를 맞았다. 주민 반발, 경제적 효과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김창수(건설위원회) 시의원은 “오 시장이 자신의 치적을 위해 무리하게 추진하던 한강 르네상스, 디자인서울 등의 사업은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당론”이라며 “현실적으로 전면 중단이 쉽지 않은 뉴타운사업이나 정책효과가 드러난 장기전세주택 등의 사업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복지정책은 크게 흔들리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서울형 그물망 복지’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정책은 저소득층 저축액의 2배를 돌려주는 ‘희망플러스·꿈나래 통장’과 ‘일자리플러스센터’ 등의 정책이 있다.

이처럼 오 전 시장은 야권에 대한 신랄한 비난과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들에게만 사과의 말을 남기고 홀연히 물러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것은 말이 아니라 커다란 후폭풍과 크나큰 파장이다. 과연 10·26재보선에서 서울의 민심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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