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83) 모든 시간 속에서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83) 모든 시간 속에서 <열왕기하 25:1~7>

우리가 근래 주일마다 열왕기의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남유다의 패망에 관한 말씀입니다. 남유다의 마지막 왕은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시드기야입니다. 시드기야는 왕이 될 수 없는 인물입니다. 이미 시드기야 다음 세대까지 왕위가 넘어갔거든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바벨론에 의해서 왕이 되었습니다. 그럼 시드기야는 바벨론에 충성해야 합니다. 

  

시드기야는 처음에 바벨론에 굴복하는 듯 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바벨론을 배반합니다. 당시에 애굽과 바벨론의 힘겨루기가 있었는데, 그 때 시드기야는 애굽을 택합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1년 6개월정도 버티다가 결국 예루살렘이 함락됩니다. 


오늘은 지난 몇 주 동안 살펴보았던 이스라엘의 왕정 역사, 그 모든 것을 정리하는 시간입니다. 본문 자체는 시드기야 시대의 예루살렘 패망을 다루고 있지만, 이러한 내용뿐만이 아니라, 여기까지 이르게 된 과정과 상황들까지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간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데, 그 시간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은 선을 행하기도 하고, 악을 행하기도 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기도 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여전히 그 모든 시간 속에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우리를 인도해주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나 동일하게 우리를 붙드시고 선한 길로 이끄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모습이 어떻게 우리에게 보여지고 있는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지난 주중에 우리 교회 주방 뒤편에 데크 공사가 있었습니다.  먼저 기존에 있던 데크를 다 걷어내고 속이 다 드러났는데, 보니까 뼈대가 너무 부실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둥을 아주 든든하게 절 박아서 견고하게 잘 만들었습니다.

  

교회 앞에 나무 잘라낸 자리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상담을 하는데, 이 빌더분이 계속해서 여러번 강조하는 것이 Post를 잘 세워야한다는 그런 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못이 박히듯이, 우리 심령에 기둥을 세워가듯이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신앙의 기본이요, 내 영적인 Post, 기둥과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가요? 하나님의 말씀이잖아요. 교회에서 하는 많은 일들 중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뭔가요? 예배입니다. 그럼 예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가요? 다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설교시간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이렇게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모든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끊임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족장 시대 때에, 하나님은 직접 찾아가셔서 말씀하십니다. 출애굽 시대에는 모세를 찾아가셔서 말씀하십니다. 가나안 정복 시대에는 여호수아를 찾아가셔서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의 말씀을 신명기에 담아 들려주셨습니다. 언제나 그 펼쳐보면서 그대로 행하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남유다는, 요시야의 통치로부터 불과 23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왜 망하는 길로 가고 있나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분열왕국시대, 남유다 전체에 20명의 왕이 등장합니다. 북이스라엘에 19명의 왕들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시간 속에 끊임없이 선지자를 보내시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수많은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시는데, 왕이 듣지를 않습니다. 백성이 듣지를 않습니다. 그게 저들의 악이 되어 망하는데까지 이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말씀에 대한 나의 반응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죽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 죽는다는 겁니다.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말씀하시는데, 내가 듣지를 않는 겁니다. 들었음에도 내 삶의 변화가 없는 겁니다. 오늘 시드기야처럼, 유다의 백성들처럼 말이죠. 그 결과 말씀의 기갈로 인한 심판적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시간 속에서 늘 말씀하십니다.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사모함으로 잘 듣고, 아멘으로 순종할 때에, 구원의 길, 영생의 길,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예언의 성취를 이루어가십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갑니다. 물이 막 흐르는 개울에 모여서 크고 작은 돌멩이들을 가져다가 한쪽에 댐을 만드는 겁니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수위가 점점 높아집니다. 물길이 막혀 갈데가 없어지면 다른 길로 돌아서라도 갑니다.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와 우리의 삶이 이와 같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은 여로보암이었습니다. 여로보암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에게 말씀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어떻게 행동하나요? 북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이 악한 길로 가는 죄악의 물줄기를 만들어냅니다. 오늘 시드기야도 남유다의 마지막왕이 되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시드기야에게 하나님의 뜻을 여러번 전했습니다. “지금 저 바벨론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심판의 막대기와 같은 존재이니, 왕은 바벨론에게 굴복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지금 바벨론에 굴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레미야서에 보면,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우유부단함으로 이 말 저 말에 휘둘리다가, 오늘과 같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으면, 오늘과는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 

 

열왕기하 23장 25절에 보면 요시야를 향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섬긴 왕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다.” 그래서 제가 신앙의 획을 그었다고 말씀드렸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루어가는 하나의 물줄기가 되었다고 한다면, “므낫세의 죄 때문이라.” 므낫세는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이어가는 물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드기야는 그 물줄기를 계속 이어가면서 결국 망하는 길로 가는 겁니다.  


하나님의 예언은 오늘도 성취를 향해 나아갑니다. 다만 어느 때에,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성취되어질지는 나 자신의 삶에 따라 달라집니다. 따라서 지금 나의 삶은 큰 물줄기 앞에 작은 돌멩이를 쌓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내 삶을 통해 흔적이 새겨지는 동시에, 내 삶을 통해 신앙의 획이 그어져가고 있는 동시에, 또한 내 삶을 통해 새로운 물줄기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모든 시간 속에서, 주의 말씀을 붙잡고, 순종함으로, 기도함으로, 헌신된 모습으로 돌멩이를 잘 쌓아가시기 바랍니다. 이를 통해 내 삶에, 우리 자녀손들의 삶에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를 이루어가시되, 선한 길로, 복된 길로 이루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언제나 주의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모든 시간 속에서 언제나 변함없는 것은 주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걸음은 주의 은혜의 시간 속이라는 사실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삼대지의 첫 번째,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혼내고 싶지 않으니까, 때리고 싶지 않으니까, 더 강하게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이거예요.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전해들었습니다. 하지만 시드기야는 듣기만 할 뿐, 여러 핑계를 대면서 그대로 행하지를 않습니다. 

 

오늘 삼대지의 두 번째, “예언의 성취를 이루신다.” 이 안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시드기야와 모든 남유다의 백성들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바벨론에 의해 심판받을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계속해서 회복의 날에 대한 예언의 말씀도 분명히 함께 주십니다. 그런데 시드기야나 다른 백성들은 회복의 말씀은 새기지 못하고, 패망의 예언만 붙잡고 두려워합니다. 선지자들에게 화를 냅니다.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패망이 있어야 회복이 있을 수 있는 것이거든요. 십자가 죽음이 있어야 부활의 새아침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남유다는 이미 죄악이 가득 찼습니다. 회생불가입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을 통해 오히려 구별해 주신 자들을 통해서 다시금 새로운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나라를 세워가시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패망도 하나님의 죄 사함의 은혜요, 회복은 하나님의 새롭게하심의 은혜입니다. 예언의 성취 속에 담겨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언제나 주의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시간 속에 언제나 주의 은혜가 있습니다. 때로는 어려움의 때가 있어도, 때로는 낙심되는 마음이 있어도, 때로는 힘겹고 두려운 중에 있을지라도, 그 속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깨달아 알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회복의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새롭게 하심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나 자신의 영적인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게 되고, 내 사업장과 직장과 자녀손들의 삶에도 새로운 회복의 역사,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모든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감사하며 또한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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