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85); 이렇게기도하라!(1)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85); 이렇게기도하라!(1) <마태복음 6:9~13>

오늘 우리가 주기도문의 말씀을 통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데, 주기도문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암송하고 있는 주기도문은 마태복음에 기록된 말씀이고, 누가복음은 이보다 더 압축되어있는 기도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보면 이렇게 시작하죠.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면서 기도를 가르쳐주십니다. 

  

그럼 예수님은 왜 기도문을 가르쳐주셨는가? 이스라엘은 신정국가입니다. 기도 잘 하는 게 자랑거리인 거예요. 그래서 자랑삼아 큰 길가에 서서 기도합니다. 되는 말 안되는 말 다 섞어서 한 시간씩, 두 시간씩 중언부언하면서 기도합니다. 그걸 자랑처럼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시대적인 모습을 지적하시면서, “그렇게 하지 마라. 그게 하나님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니다. 길게만 한다고, 말만 많이 한다고 좋은 기도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기도는 사람에게 칭찬받고 끝나는 거다.”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모범이 바로 오늘의 주기도문입니다. 

   

주기도문은 가장 완벽한 기도입니다. 기도의 순서, 기도의 형식, 기도의 내용, 모든 면에서 가장 완벽한 기도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기도문에 담겨진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냥 외우기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기도문은 여섯 개의 간구와 한 개의 찬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섯 개의 간구 중에 앞선 세 개는 하나님을 향한, 나머지 세 개는 우리 인간 삶에 관한 간구입니다. 그중에서 오늘은 하나님을 향한 간구 세 개를 다루고, 다음 주일에는 인간 삶에 관한 간구를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 간구,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첫 번째 문장부터 혁명적입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기도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신성모독에 해당될 정도입니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또는 “야훼”라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까지 사람들은 성경을 읽다가 “여호와, 야훼”라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이름은 물론이거니와 “엘로힘, 엘샤다이 – 전능의 주, 능력의 주” 등의 하나님에 대한 호칭만 나와도 아예 읽지를 않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이름은 너무나도 거룩하기에, 부정한 인간의 입술에 담는 것 자체가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거룩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 자체로 신성모독이요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나올 때에, 형식에 있어서는 거룩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그 삶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이름의 거룩성을 도리어 훼손하면서 살아갑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정말 그 안에 실제하는 경건함을 담아야 한다.” 로마서 8장 15절에 보면 바울이 이렇게 전합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아빠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는 것은 나의 삶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내가 하나님을 향해 마음껏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 삶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성이 증거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에서 본이 될만한 삶을 살아가면, “그래. 예수 믿는 자가 저런 모습이 있어야지.” 칭찬받고,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겨집니다. 반대로 세상에서 엉뚱한 모습으로 살아가면 “저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왜 저래?”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무시를 당합니다.  십계명의 세 번째 계명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이 말씀이 내가 그저 하나님의 이름을 아무렇게나 부르면 안된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면, 내 삶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이 불려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공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크신 은혜를 받은 자로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높여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 간구,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 기도는 죽어서 천국 가는 것 이전에, 먼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어짐을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동시에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삶을 살고자 결단하는 마음이 담긴 기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로마가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간의 평화가 이루어지는데, 이를 가르켜서 “팍스 로마나 – 로마의 평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로마가 이룬 평화는 힘의 논리로 이룬 평화입니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장소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곧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 하나님의 질서가 실현되는 곳입니다. 이를 통해 참된 평화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누가복음 17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일차적으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저기”라는 공간의 개념이 아니라, “너희 안에” 이루어지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이제 내일이면 올림픽이 끝납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이 은메달의 아쉬움이 가장 컸던 경기가 여자 펜싱 단체전이었습니다. 초반에 꽤 많이 앞서가고 있었는데, 중간에 한 선수가 계속 실점을 많이 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결국에는 역전을 당해서 은메달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가 중요합니다. 천국과 지옥이 여기서 결정됩니다. “너 때문에 졌잖아.” 그러면 올림픽 은메달을 따고도 그 자리가 지옥이 되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함께 노력한 결과로 값진 은메달을 받게 되었다.” 그러면 그 자리가 천국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신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다시 말해 너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너희 안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질서가 실현되면, 그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질서가 무엇인가요? 우리 주님 모시고, 주님의 다스림, 주님의 통치 아래에서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해가는 삶이요, 그 삶을 주님 앞에까지 이어가는 것이 저 천국에 이르는 삶인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날마다 주님과 동행함으로,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걸음이 닿는 곳에, 기도가 닿는 곳에, 마음이 닿는 곳에, 그 가정과 일터와 사업장과 모든 공동체 가운데, “너희 안에”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세 번째 간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는 앞선 하나님의 나라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됩니다. 이스라엘 왕정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설명함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인물이 다윗입니다. 다윗에 대한 평가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의 아들이자 지혜의 왕으로 불리우는 솔로몬은 어떤가요? 그가 일천번제를 드릴 때에, 하나님은 지혜 뿐만 아니라, 구하지 않는 모든 부귀 영화까지 허락하십니다. 솔로몬이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한 것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남유다의 가장 선한 왕인 요시야, 모든 삶 이후에 이런 평가를 받습니다. “요시야처럼 하나님을 섬긴 왕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더라.”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알았고,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하였고, 하나님의 뜻에 합한 생각을 하였고, 하나님의 뜻에 합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쯤에서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 천국에 가면 뭐가 없을까요? 천국에 어울리지 않는 것? 여러분 모두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십니다. “미움, 다툼, 죄, 시기, 질투”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뜻과는 맞지 않는 것이기에 하나님 나라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걸 다 알면서도 내가 누군가를 차별한단 말이죠. 그럼 과연 하나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질 수 있겠습니까?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방관자적인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이제 내가 이 땅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겠습니다.” 믿음으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이러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루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하늘에서 명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내가 나의 삶 가운데 이루길 원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결단함으로 이루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에는, 주를 향한 간구와 더불어 우리 자신의 믿음의 결단이 함께 담겨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살아가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나라가 임하시오며 /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주님 가르쳐주신 기도가 나의 고백이 되고, 나의 결단이 되고, 나의 삶이 되어져,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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