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89) 에바다-열리라!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89) 에바다-열리라! <마가복음 7:31~37>

지난 7월 휴가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옷이 젖어서 잠바를 벗고 가려고 차 트렁크를 열어서 우산을 넣고, 잠바를 넣고, 트렁크 문을 닫는데, 그 순간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갑니다. 그 시간에 필름이 돌아가는 것처럼 수많은 생각이 지나갑니다. 트렁크에 던져넣은 그 잠바 주머니에 자동차 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험사에 전화를 해서는 긴급출동서비스를 불렀습니다. 첫번째 기사가 30분만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자신은 전문가가 아니라면서 자리를 떠납니다. 이후에 다른 전문가가 와서 1시간을 넘게 씨름을 합니다.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 덜컥 하면서 트렁크가 열리고, 자동차 경보음이 울립니다. 잠겨있던 자동차 문 하나 열리는 것도 이렇게 감격스럽고 감사한데,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귀 먹고 말 더듬는 것이 고쳐졌습니다. 막힌 귀가 열려지고, 막힌 입이 열려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에바다-열리라!” 말씀하실 때에, 귀가 열리고 입이 열려졌습니다. 


오늘 귀 먹고 말 더듬는 자에게는 귀가 열려지고, 입이 열려지는 것이 가장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러한 기적의 역사를 행하신 것은 단순히 저들의 막힌 입과, 막힌 귀와, 막힌 눈을 열어주시는 것, 그것만으로 끝이 아닙니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 우리의 눈이, 우리의 귀가, 우리의 입이, 나아가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생각이 “에바다” 열려지길 원하십니다. 무엇을 어떻게 열어가야 하는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을 향해 “에바다” 열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세 가지 사역으로 압축됩니다. 하나는 주의 복음을 전한 것이요, 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신 것이요, 마지막 하나는 귀신을 내어쫓고 병든 자를 고치시는 치유의 역사입니다. 이중에서 치유의 역사는 가장 직관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치유의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예수님은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가셔서 손가락을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에바다-열리라!” 

  

예수님께서 왜 무리를 떠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왜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탄식함으로 말씀하셨을까요? 이 병자와 하나님과의 일대일의 관계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의 막힌 귀, 그의 막힌 입, 그것이 열려지는 것 이전에 하나님과 이 병자와의 관계가 열려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요? 요한복음 3장 16절에 말씀하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요한복음 3장 17절에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기에 예수님은 스스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모든 말씀에서 예수님 스스로, 또한 다른 제자들이 증언하는 예수님의 역할이 무엇인가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 회복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을 향한 열려짐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가장 먼저 열려져야 할 것은 하나님을 향한 열림입니다. 

  

신앙생활은 하고 있는데, 아직 믿음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 신앙, 내 믿음이 막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기도를 하잖아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게 하옵소서.” 이걸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향해 “에바다” 열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내 마음이, 내 생각이, 내 헌신이, 내 기도가, 내 삶이 열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하나님을 향해 활짝 열려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열려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만한 귀가 열려지고, 이를 통해 주의 복음을 선포할만한 입이 열려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을 향한 내 신앙이 “에바다” 열려져서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친밀감을 누릴 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나 자신을 향해 “에바다” 열려야 합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에 비유합니다. 그럼 여러분! 거울에 누구를 비춰보아야 할까요? 거울은 일단 나 자신을 비추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에 비춰보는 것도 나 자신을 먼저 비춰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날때부터 맹인이었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눈을 뜨게 됩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은 예수님께서 눈을 뜨게 하셨다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은 믿지를 않습니다. 아니, 믿으려 하지를 않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죠. “사람들이 그렇게 보지를 못한다.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지금 본다고 하는 자들, 오히려 저들이 맹인이다.” 그러자 이 말을 듣고 있던 바리새인이 말하죠. “우리도 맹인인가?”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차라리 너희가 맹인이었으면 죄가 없을 터인데, 본다고 하니까 너희가 죄인인 것이다.”

 

우리가 정말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앙이 좋다고 할수록그럴수록 더 세심하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뭘까요? 나 자신을 잘 바라보는 것입니다. 남을 바라보기 전에 나 자신을 잘 바라봐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 판단하기 전에, 나 자신의 신앙을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전하는 중에 언제 큰 사고가 나는가? 초보운전 때는 사고가 나도 보통 작은 사고입니다. 속도를 막 내기 어렵거든요. 그런데 이제 조금 익숙해지고, 여유가 생기면 큰 사고가 나는 거에요.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처음에 초신자 때는 실수를 해도 다 그러려니 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연수도 올라가고, 직분도 가지고, 그러다보면 나도 모르게 판단하고 정죄하기 시작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큰 사고가 나는 겁니다. 그때 다른 사람 크게 실족시키는 거예요.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먼저 나 자신을 향해 열려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지금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내 행동을 볼 줄 아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내가 지금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내 말을 들을 줄 아는 귀가 열려야 합니다. 그래야 내 입을 열어 선하고 긍정적인 말, 덕을 세우는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혹시 어려우면 그냥 입을 닫고 있으면 됩니다. 옳은 말이 다 좋은 말도 아닙니다. 나 자신을 향해 “에바다” 열려져, 바르게 분별하고, 바른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다른 사람을 향해 “에바다” 열려야 합니다. 


나 자신을 향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바르게 분별하는 동시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향해서도 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열려야 하나요? 그 사람의 성품과 신앙과 강함과 연약함을 바라볼 줄 아는 시선, 상대방의 것을 들을 줄 아는 귀, 이를 통해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함으로 말할 줄 아는 입이 열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제목의 글을 쓴 것이 있습니다. “다툼이 끊이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무엇에 비유할까? 그것은 저마다 잔을 들고 파티를 벌이는 파티장과 같다. 어떤 사람은 주석잔이고, 어떤 사람은 도자기, 어떤 사람은 유리잔입니다.” “문제는 서로 다른 잔을 가진 사람이 만날 때입니다. 주석잔을 가진 사람이 유리잔을 가진 사람을 만나 평소처럼 힘있게 잔을 부딪히면 유리잔은 박살나고 맙니다. 서로가 들고 있는 잔의 차이를 깨닫지못하고 편한대로 행동하다보면 다툼이 끊이지 않습니다.”세상에는 유리잔과 같은 성품의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자기와 같은 성품의 사람도 있습니다. 또 주석잔과 같은 성품의 사람도 있습니다. 이 모든 차이를 알고 인정하는 것이 상대방을 향해 열려있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매월 그달의 인사를 나누잖아요. 그런데 가장 많은 부분은 우리 성도들간의, 또한 세상 사람들간의 관계에 관한 것이더라구요. “사랑, 화목, 희생, 함께, 격려, 존중, 이해...” 등등 말이죠.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스스로 본을 보이신 것이요, 동시에 우리에게 명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이를 잘 따라 행하기 위해서, 정말 예수님처럼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상대방을 향해, 그 상대방이 가족이든, 이웃이든, 함께 동역하는 성도들이든, 그냥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든, 그 사람을 향해 “에바다” 열려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귀가 어둡고 말이 어눌한 자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그 귀가 열려지고, 그 입이 열려졌습니다. 이는 단순히 육적인 회복의 역사만이 아닙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만났다고 한다면, 우리의 닫혔던 귀가 열려지고, 닫혔던 눈이 열려지고, 이를 통해 선한 말을 할 수 있는 입도,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 있는 행동도 열려져야 합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에 있어서 “에바다” 열리고, 나 자신을 먼저 말씀의 거울에 비춰 잘 바로 바라보고 분별할 수 있는 마음도 “에바다” 열려질 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을 대하는 나의 모습도 “에바다” 열려짐을 통해, 진정한 열림의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기쁨 되는 삶,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본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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