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13) 함께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13) 함께 <골로새서 4:7~14>

일요시사 0 97 0 0

오늘은 3.1절 106주년 기념예배로 드립니다. 우리 대한민국에는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바로 35년의 일제강점기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이때로부터 1945년 8월 15일에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일제 치하 35년의 세월을 지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그 시간을 그냥 보내지 않았습니다. 윤봉길의 도시락 폭탄 투척 사건 등 나라의 독립을 위한 투쟁이 있었습니다.  더불어 오늘 우리가 기념하고 있는 1919년 3월 1일의 만세운동도 있습니다. 만세운동을 비롯한 모든 독립 운동에 있어서 우리 개신교회의 역할은 빠질 수가 없습니다.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개신교인이고, 그 중에서도 9명이 우리 감리교회의 목회자이거나 교인입니다. 


그런데 이제 100년이 넘는 세월의 흐름 속에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감리교 목회자들 사이에서는 동시에 이런 자조섞인 고백도 나옵니다. “우리 감리교회가 3.1운동 이후에 내세울게 과연 뭐가 있느냐?” 자랑스러워할만한 우리 믿음의 선조들의 행적, 그와 더불어 정말 중요한 것, 나는 지금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나 자신을 희생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선한 영향력을 가진 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믿음의 백성으로서 세상 가운데 맛을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함께 이루어가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 시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 것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더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골로새서의 마지막 부분으로, 바울의 인사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문안한다.”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오죠. 바울은 함께 동역하는 이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보면 다 똑같지가 않습니다. 어떤 일을 해도 언제나 더 많이 헌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7절에 두기고를, 이어서 9절에 오네시모를 따로 소개합니다. 바울 곁에 수많은 동역자들이 있지만, 저마다의 신앙의 분량이 다릅니다. 감당할 수 있는 사명이 다릅니다. 오늘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소개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더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앞서 서론에서 말씀드린, 3.1운동, 더불어 여러 독립 운동 중에, 수많은 사람들의 나라 사랑의 마음이 담긴 희생과 헌신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더 크게 쓰임 받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희생의 자리를 마다하지 않은 이들의 헌신도 귀한 것이지만, 저들을 이끌어가는, 저들을 하나로 모아가는 큰 역할을 감당했던 인물들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도 더 크게 쓰임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디서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더 크게, 더 앞서, 더 많이 쓰임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라기는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더 크게 쓰임 받기를 사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위해, 나라와 민족과 세계 열방을 위해, 또한 주의 몸 된 우리 뉴질랜드광림의 제단을 위해 더 크게 쓰임 받을 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다를지라도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10절에는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인 마가가 등장합니다. 아리스다고는 본문에 기록된대로 바울과 함께 지금 옥에 갇힌 자입니다. 함께 언급되는 마가는 마가복음의 저자인데, 바울의 1차 전도여행에 함께 동행했다가 중간에 포기합니다. 그럼에도 지금 바울은 그를 동역자로 인정합니다. 

  

11절에는 유스도가 등장하는데, 그는 할례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하였고, 바울 자신에게 위로가 된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12절에는 에바브라가 나옵니다. 에바브라는 골로새교회를 세운 사람입니다. 14절에는 누가와 데마가 나옵니다. 누가는 의사인데, 바울의 친구이자 동역자요, 바울이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함께 했던 유일한 인물입니다. 

  

이렇게 보면,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유대인도 있고 이방인도 있습니다. 목회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이들도 있고, 평신도 지도자와 같은 이들도 있습니다.  다 다릅니다. 저들의 나이도, 출신도, 성품도, 직업도, 신앙의 성숙도도 다 다릅니다. 하지만 다를지라도 하나입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입니다. 복음의 능력 안에서 하나입니다. 주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하나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명 감당에 있어서 하나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도 이와 같습니다. 신앙이 오래된 분도 있고 얼마 안된 분도 있습니다. 일평생 많이 헌신한 분도 있고, 아직 그런 기회가 많지 않았던 분도 있습니다.  다 다르죠. 하지만 다를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뉴질랜드광림에 속한 믿음의 지체로서 하나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함께 사명 감당함으로 하나임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되, 그 속에서 하나됨을 이루어갈 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함께 이루어가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이 참 어렵습니다. 보수와 진보, 좌편과 우편으로 갈라져 끊임없는 갈등과 다툼을 벌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이와 관련해 어떤 이야기를 했더니,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공격을 받습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듣고, “그런 말을 하는 것 보니 목사님은 극우다. 그런 말을 하는 것 보니 목사님은 좌파다.” 한쪽에서 공격을 받으면, 반대쪽에서는 환영을 받아야 할텐데, 양쪽에서 공격합니다. 그래서 아무 말도 안하니까, “목사님은 왜 진리에 대해서 침묵하냐?”고 합니다. 일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자신의 신념과 신앙을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진리는 보수나 진보에 있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만 있음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정치 지도자들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국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풀어가야 합니다. 자신들의 당리당약 사리사욕을 내려놓고, 정말 스스로의 양심의 거울에 비추어 잘 한 것은 칭찬하고, 못한 것은 사과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게 진리의 편에 서는 거죠. 나라의 독립을 위해 생명 바쳐 희생한 선조들, 우리와 같은 혈통을 지닌 분들이잖아요. 우리에게 진정 나라 사랑의 마음이 있다면, 보수와 진보, 야와 여를 넘어서서, 모든 위정자들이, 모든 국민들이 함께 아름다운 우리 대한민국을 이루어가야 할 줄 믿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더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에 주어진 사명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의 몸 된 제단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함께 기도함으로,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백성을 주님께서 붙잡아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금년에 30주년을 맞이합니다. 30년의 모든 역사, 30년 전의 성도들이나 지금 이 자리에 함께 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나, 또한 그 속에 지나쳤던 모든 이들과 함께 이루어온 것입니다. 앞으로도 함께 이루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필사를 했는데, 그것도 함께 이루었습니다. 오늘 전교인 소풍이 있는데, 역시 함께 이루어가는 겁니다. 8월에 있을 피지 단기선교도 함께 이루어가야 합니다. 모든 행사에 앞서 있는 자나 뒤에서 기도하며 돕는 이들이나, 어쨌든 모두 함께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 험난한 여정 속에서도 주의 사명 감당할 수 있었던 힘이 어디에 있었나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가장 첫 번째는 하나님의 도우심이죠.   더불어 정말 중요한 것은 바울과 함께 전도하고, 함께 옥에 갇히기도 하고, 함께 고통을 당하기도 했던, 바울과 함께 했던 수많은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기에, 오늘 바울도 편지 말미에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거론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이름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기억될만한 이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함께 동역함으로,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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