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의 뉴스포커스 (22) 공명정치,공정사회,교육환경
‘노블레스 오블리주’정신의 역사적 교훈 / News Focus
지난주 칼럼 역사청산/적폐청산 사례 및 해법의 핵심 정신이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 [nɔblɛs ɔbliʒ]’라는 일반인들에게는 좀 생소하면서도 지난 한 주 사이 독자들의 반응을 볼 때,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여 이번주 뉴스포커스에서는 이 단어(불어: Noblesse Oblige)의 생성배경 및 그 역사적 교훈에 대해 짚어 보고자 한다.
시대는 영국의 플랜타저넷 왕가와 프랑스 왕국의 발루아가 사이에 벌어진 영지분쟁과 왕위계승 문제로 촉발돼 두 왕조에는 5대에 걸쳐 무려 116년 동안에 일어난 일명 백년전쟁(1337-145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전쟁 초기부터 프랑스의 최북단에 위치하며 오늘날 프랑스 북단의 항구도시인 칼레(Calais)영지가 집중 공략 대상이자 영국으로부터 집중 공격의 목표지점이었던 것은 지정학적으로도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과 가장 근접한 프랑스의 이 요충지를 거쳐 장차 유럽 진출의 최전방 지역이었던 탓이기도 했다. 칼레 사람들이 시민군을 조직해 끝까지 분연히 싸우고 있는 중에 영국군은 칼레를 우회해 프랑스 본토 전역을 공략했고, 전쟁 막바지에 칼레로 들어가는 식량 보급로를 차단하는 등 요충지 칼레를 봉쇄해버렸다. 당시 프랑스의 최정예부대 칼레 시민군은 굶주림 속에서도 조국을 지켜내고자 1년 동안을 저항했지만 병마에 더해 아사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끝내 무장해제 후 항복 표시의 백기를 들고 말았다.
선대부터 5대에 걸친 지루한 전쟁을 마침내 승리로 이끈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백년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그 순간, 칼레 시민군의 완강한 저항에 심히 분노한 나머지 막강한 군대로 칼레시를 쑥대밭으로 만든 후 항복을 받아내려고도 생각했으나 조건부 항복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것은 “칼레 시민 전체를 살려주는 대신에 처형할 대표 6명을 뽑아오라!” 그 엄명이 떨어지자, 칼레의 최고갑부 외스타슈 드 생피에르를 비롯 고위층 7명이 자진해 나섰다. 한명이 남아 이번에는 누구를 뺄 것인가를 두고 혼란이 빚어졌다. 제비뽑기로 하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최초 자원자인 생피에르가 그것을 반대한다. 그는 다음날 아침 가장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자고 제안했다. 다음날 날이 밝자 영국왕의 명령대로 각자는 목에 밧줄을 메고 맨발에 홑옷만 걸친 채 한명 한명 걸어나와 6명이 교수대에 올랐다. 한명이 나타나지 않아 군중들이 의아해 해 웅성거릴 때 그 한 명이 바로 생피에르라는 급전이 전해진다. 생피에르는 바로 그날 아침 교수형에 처해지기 전, 밤사이에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때마침 그때 영국왕비가 임신 중이었던 터라 아내 왕비가 왕에게 이들을 죽이면 태아에 안좋은 영향을 미쳐 장차 낳을 아이에게 불행한 일이 생길지 모른다며 왕을 설득해 처형이 집행되지 않고 자원자 7명중 자살자 1명을 제외한 6명이 극적으로 살아남아 남은 생을 (약자) 일반 시민들에게 더욱 귀감되게 살았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독일의 극작가 게오르크 카이저의 불후의 명작 <칼레의 시민> 내용이다.
이 역사적 사건이 후대에 내린 영향은 실로 커 미국의 역대 부호 록펠로나 철강왕 카네기경이 재단을 형성해 거의 세상의 전분야에 걸쳐 사회환원 기부정신을 실천에 옮긴 예나 오늘의 빌게이츠의 지구 환경 살리기와 인류사회의 보편적 가치 드높이기 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한때 적국이었던 영국과 독일에서도 프랑스 본국에도 대중이 발길을 멈추어 그 거룩하고도 깊은 의미를 음미하며 사람 삶의 지표로 삼도록 시청앞 광장이나 유명 공원, 박물관 등등 곳곳에 로뎅작 ‘칼레의 6인시민’ 조각상을 살아있는 교육환경 조성 일환으로 건립해 놓고 대를 잇고 거듭해 그 숭고한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뉴질랜드 또한 어떠한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깔려있는 명실상부한 사회환원의 복지환경을 만끽하고 있는 우리 후대들이 선대들의 위대하고 의미깊은 사회환원 유산에 감사함을 피부로 느끼고 또한 배워나가고 있는 산 교육의 실습장이 곳곳의 주변환경 사회전반에 걸쳐 산재해 있다.
도심 속 공원 대비 및 산행 산책로 녹지공간 세계 최고의 도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우리가 몸담아 살아가고 있는 오클랜드(서울넓이의 4배) 시내에 넓다랗게 펼쳐져 도심 속 삶에 생기를 넣어주고 있는 콘월파크, 알버트공원, 빅토리아파크, 스미스공원, 엠버리파크, 이든파크, 핸더슨파크, 쉐익스피어공원, 윈저파크, 벨파크, 아와로아파크, 엘리슨파크 등등등 크고 작은 수백 수천개의 공원들도 알고보면 그러한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은 선대들이 그들 각자의 이름을 붙여 그들의 가족이 아닌 사회에 남긴 영원한 유산이다.
오늘날 선진사회를 더욱 건강하고 선진복지 부강국으로 이끌고 있는 “귀족(고위층)은 (하늘 우러러 부끄럼 없는)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 = “부와 권력은 그에 상응한 책임과 의무를 수반한다”라는 의미로 함축된 숭고한 가치의 실제 역사에서 비롯된 산 교육용어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것은 하늘이 지상(인간세상)에 내린 성서적 가치에 버금가는 인류사회의 산 교육용어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오늘의 발췌 문안: < Excerpts from [The Burghers of Calais] of Norton Simon Art Foundation & Royal Park ‘Victoria Tower Gardens’ of Westminster Palace in London)
*전문주해 및 원문번역: 박성훈
The Burghers of Calais
The Burghers of Calais depicts an episode from the history of the Hundred Years' War. In 1347, after the city of Calais had been under siege for eleven months, six prominent citizens offered their lives to the English king, Edward III, in return for his promise to spare the city. Upon hearing of their bravery, Queen Philippa interceded and obtained their release. In 1884, Rodin was commissioned by the city of Calais to produce a monument honoring the six burghers. (Omission)
칼레의 공민(시민)
칼레의 공민(시민) 동상은 백년전쟁의 역사 속에서 나온 일화를 묘사하고 있다. 칼레시가 영국군으로부터 11개월 동안 점령당한 후인 1347년, 승전한 영국왕 에드워드3세가 칼레시와 전체 시민을 살려주는 대가의 대신으로 처형할 6명의 귀족신분 공민들을 기리는 사적물이다. 용감한 그들의 소식을 들은 필리파 여왕(왕비)이 깊은 관심 속에 감명을 받아 그들을 석방해준 역사적 사건의 기념물이다.
1884년, 프랑스의 조각가 로뎅이 칼레시의 의뢰를 받아 이 6인의 거룩하고 숭고한 공민(시민)들을 기리는 이 기념물(동상) 제작을 맡아 완성하게 됐다.
(- 이하생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