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겨울 나그네
<특별 기고>
겨울 나그네
아내를 옆 눈으로 바라보며 내가 물었다.
“이번 여행 어땠소? 겨울 나그네 돼볼 만 했소?”
아내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손을 뻗쳐 오디오의 스위치를 눌렀다.
여행 내내 몇 번이고 듣던 ‘겨울 나그네’가 다시 흘러나왔다.
바리톤 피셔 디스카우가 보리수의 두 번째 연을 노래하고 있었다.
겨울밤은 때로는 너무 길다. 그렇게 긴 어느 겨울밤 아내와 같이 차를 마시며 슈베르트를 들었다. 오랜만에 듣는 겨울 나그네, 바리톤 헤르만 프라이의 나지막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가 부드럽게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첫 곡 ‘안녕히 주무세요(Gute Nacht)’부터 슈베르트 특유의 우수가 선율을 타고 스며 나와 거실을 촉촉이 적시는 느낌이었다.
내 스스로 가고 싶은 길은 아니지만
그래도 먼 길을 떠나가야지
이 깜깜한 어둠을 헤치고
정처 없이 떠나야겠네
두 번째 연의 노랫말이었다. 다시 노래가 이어지려고 할 때 나는 문득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내일 여행갈까?” 내 말에 아내의 눈이 회동그래졌다. “별안간 무슨 여행이요? 이 겨울에!”하며 놀라는 아내에게 “겨울이니까. 겨울 나그네가 돼보는 것도 괜찮을 거요”하고 나는 답했다. 갑작스러운 내 제의에 아내가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그때 퍼뜩 머릿속으로 얼마 전에 파머스톤노스로 이사한 새롬이네가 생각났다. 새롬이네는 얼마 전에 파머스톤노스로 이사간 교회 식구였는데 아내를 언니처럼 따르는 새롬이 엄마가 아내에게 몇 번 전화를 했었다고 들었다.
“당신, 새롬이 엄마가 꼭 한번 내려오라고 신신당부했다며. 갑시다. 여행은 갑자기 떠나는 여행이 더 재미있어요. 내일 아침 일찍 떠나서 새롬이네부터 만나보고 그런 뒤 여기저기 며칠 다녀봅시다”하고 내가 다시 아내를 부추겼다. “한번 간다고 하면 꼭 가셔야 하니…. 당신은 참, 못 말려요”하고 아내가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은 방랑을 좋아해
여기저기로 정처 없이 헤매도록
신이 그렇게 마련하셨지
사랑하는 아가씨여, 안녕히 주무셔요
바리톤의 굵은 목소리가 마치 우리 부부의 대화를 엿들은 듯 이렇게 노래했을 때 나는 아내를 보며 싱글거리며 말했다. “사랑하는 아내여, 우리도 안녕히 주무십시다. 내일의 여행을 위해!” 그런 나를 보고 아내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지만 결코 싫은 표정은 아니었다.
그다음 날 새벽 6시 아직 어둠이 짙게 깔린 거리로 우리는 차를 몰고 나왔다. 북섬 남단에 있는 파머스톤노스까지는 차로 8시간 걸리는 거리였다. 워낙 장거리라서 계속 달리기만 할 수는 없고 중간마다 쉬기도 하고 또 아직 어딘가에 남아있을 늦가을의 흔적도 찾아보면서 천천히 가자면 10시간 이상을 잡아야 하겠기에 지난 밤 준비를 마쳐놓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떠난 것이었다.
이 새벽에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차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는지 하버 브리지(Harbour Bridge)를 건널 때에는 양방향 차선들이 모두 차로 꽉 찼다. 차들이 뿜어내는 헤드라이트들이 새벽 어두움을 하늘로 몰아냈고 하버 브리지 맞은편 도심의 높고 낮은 건물들에는 하나둘씩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세상에, 이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은 이렇게도 바삐 움직이네요. 우린 매일 아침을 편안하게 집에서 느긋하게 지내는데요”하고 아내가 말했다. “그러게 말이요. 이렇게들 부지런히 움직여야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런 사람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 우린 그냥 맨날 놀고먹으니…”하고 내가 말끝을 흐리자 아내가 “우리도 젊었을 땐 열심히 일했잖아요. 이젠 쉴 때에요”하고 나를 위로했다.
도심을 빠져나가자 그 많던 차들도 모두 사라지고 모터웨이는 비교적 한산했다. 어디선가 해가 뜨고 있는지 어둠도 걷히고 있었고 이른 아침 반투명 차가운 대기를 뚫고 차를 달리는 기분은 참으로 상쾌했다.
“당신 겨울 나그네 된 기분이 어때?”하고 내가 아내에게 묻자 “아주 좋아요. 나오니까 정말 좋아요. 근데 커피 드릴까요? 추울 것 같아 보온병에 타왔어요”하고 아내도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차는 어느덧 파파쿠라도 지나고 푸케코헤도 지나 오클랜드 교외를 벗어나고 있었다. 날씨가 제법 추운지 차창 밖의 풍경은 때로는 을씨년스럽기도 했다. 계기판의 온도가 3도라고 쓰여 있었다. “여기가 우리 집 동네 보다 더 추운 것 같아요. 히터 온도 좀 더 올리세요”라고 아내도 추운 표정을 지었다. “맞아요. 당연히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조금씩 더 추워지지”라고 말하며 나는 히터의 온도를 25도로 올리고 계속 달렸다. 해가 더 떠올랐는지 날은 더 밝아졌다. 그리고 어디선가 안개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조금씩 몰려들던 안개가 어느덧 자욱이 사방을 뒤덮어 차창 밖의 풍경이 마치 흑백 영화 속의 어딘 가인 것처럼 아스라하게 보였다.
유령 같은 도시
겨울 새벽 갈색 안개 아래로
군중들이 흘러갔다, 런던 브리지 위로
나는 어느새 엘리옷(Eliot)의 시(詩) <황무지>의 한 구절을 생각하고 있었다. 창밖의 풍경에 취해 계속 밖을 내다보던 아내가 “멋있어요. 정말 신비하도록 멋있네요. 하지만 당신 운전하시기 힘들겠어요”하고 앞을 주시하면서 말했다.
그때였다. 별안간 종소리 비슷한 소리가 두세 번 나면서 계기판에 이상한 경고등이 떴다. “아니 이게 뭐지”하며 나는 차의 속력을 줄였다. 우리가 타고 있는 차는 새로 산지2년 밖에 안됐고 그동안 한 번도 말썽 없이 너무도 잘 달려주어 아주 고맙게 잘 타고 다니는 차였다. “어디에 이상이 있나? 그럴 리가 없는데…”하면서도 무언가 찜찜해서 마음껏 달릴 수가 없었다. 노란색 경고등은 눈의 결정체 모양 비슷한 것이었는데 이제껏 한 번도 그런 모양의 경고등이 뜬 적이 없었다.
“큰일 났네. 앞으로 며칠을 달려야 할 텐데. 차에 이상이 있으면 어떡하지.” 걱정스러운 맘이 들자 밖의 멋진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급한 대로 갓길에 잠깐 차를 세우고 비상등을 켠 채 매뉴얼을 꺼내 살펴보았지만 계기판에 뜬 모양의 경고등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짙은 안개 속에 갓길에 차를 오래 세우고 있는 것도 위험해서 아내랑 의논한 끝에 헌틀리(Huntly)가 그리 멀지 않으니 거기까지 가서 방도를 찾아보기로 했다. 불과 20킬로 떨어진 헌틀리까지 가는 길이 왜 그리 멀리 느껴졌는지 조심스럽게 차를 몰고 겨우 도착했다.
안전한 곳에 차를 세운 뒤 다시 매뉴얼을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그런 경고등에 관한 설명은 없었다. 대신 서비스 본부의 전화번호를 발견할 수 있어 나는 그리로 전화를 했다. 다행히 기술자와 통화를 할 수 있었고 내가 상황을 설명하자 기술자는 경고등의 모양을 상세히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서리 모양 아니면 눈의 결정체 모양 같다고 할 수 있는 한 자세히 묘사해주었다.
그 기술자는 그건 날씨가 추워 노면이 얼었을 수가 있으니 조심해서 운전하라는 경고이니 걱정할 것 없다며 해가 뜨고 온도가 올라가면 경고등이 사라질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마음이 놓이고 불안했던 생각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 기술자는 가까운 해밀턴(Hamilton)에 서비스 센터가 있으니 거기 가서 더 확실히 확인해보라면서 자기가 연락을 해놓겠다고 말했다.
서비스 센터를 찾아 들어갔더니 이미 연락을 받은 직원이 웃으면서 맞아주었다. 내 차의 경고등을 점검하면서 아까 전화를 받았던 기술자와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오늘 날씨가 추워서 그렇다면서 그런 경고가 나오면 운전자가 조심해서 운전을 하기에 사고를 미리 방지할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이라고 알려주었다. 거기 서비스 센터에 있는 내 차와 똑같은 다른 차에도 오늘 똑같이 경고등이 들어왔다며 온도가 6도만 넘어가면 경고등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 직원의 친절한 설명을 듣자 계기판에 떠 있는 선명한 경고등이 돌연 천사의 눈동자같이 보였다. 서비스 센터를 빠져나와 500m도 안 갔을 때 계기판에서 경고등이 사라졌다. 온도계는 6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와, 정말 없어졌네”하고 아내와 내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케임브리지를 거쳐 티라우로 내려가는 길은 호젓하고 아름다웠다. 티라우에 도착할 때까지 안개는 계속 따라왔다. 어떨 땐 앞의 차가 거의 안 보일 정도로 짙은 안개였지만 경고등이 사라진 뒤엔 차에 대한 믿음이 생겨 마음 놓고 운전할 수가 있었다. 마음이 놓인 뒤에 차창으로 보이는 겨울 안개 속의 풍경은 너무도 아름답고 더욱 신비하게만 다가왔다.
“경고등이 없어지니 심심하네요, 예쁜 경고등이었는데…”하고 아내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글쎄 말이오. 마음가짐에 따라서 경고등이 걱정거리로 보이기도 하고 천사의 눈으로도 보이기도 하니 오늘 참 좋은 교훈 하나 배웠소”하고 나도 맞장구를 쳤다.
겨울 안개 속으로 차를 몰고 나가면서 나는 생각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알게 모르게 켜지는 경고등은 얼마나 많을까. 오늘 차의 계기판에 떠오른 경고등같이 눈에 보이는 경고등은 쉽게 대처할 수 있는 경고등이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에 사람들과의 관계에 그리고 직장이나 가정생활에 보이지 않게 떠오르는 경고등은 참으로 깨닫기도 힘들고 대처하기도 어려운 경고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저녁 슈베르트를 듣다가 즉흥적으로 아내와 나선 겨울 여행이 계기판에 떠오른 작은 경고등 하나로 하마터면 망쳐질 뻔했는데 앞으로의 우리의 삶 속에 언제라도 떠오를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경고등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늘 겸손한 자세로 삶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내가 말없이 앞만 보고 운전을 하는 나를 보고 이상한 듯 물었다. 나는 아내에게 조금 전 혼자 생각했던 보이지 않는 경고등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참 좋은 생각하셨네요. 맞아요. 이번 겨울 여행은 경고등이 가르쳐주는 교훈을 제대로 배운 것만 해도 큰 성공이네요”하고 맞장구를 쳐주는 아내의 얼굴이 마침 안개를 뚫고 차창으로 비쳐드는 아침 햇살 속에 하얗게 빛났다.
우리 부부의 겨울 여행은 파머스톤노스에서 네이피어로 그리고 다시 올라오는 길에 케임브리지로 이어지며 4박 5일의 여정으로 끝났다. 초겨울 바람은 차가웠지만 곳곳에 아직 남아있는 가을 흔적은 우리들의 가슴을 아련하게 보듬어주었고 경고등이 가르쳐준 교훈은 우리가 다니는 길마다 추억을 줍도록 해주었고 만나는 사람마다 더불어 훈훈한 웃음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여행 내내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의 선율은 차 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가슴 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여행 마지막 날 들린 케임브리지의 작은 호수 테 코우투(Te Koutu)에는 뚜꺽뚜꺽 겨울비가 내렸지만 우린 개의치 않고 우산을 받쳐 들고 호반을 걸었다. 가을엔 단풍이 흐드러지도록 아름다운 이 호숫가지만 비 내리는 겨울 오후 그곳엔 우리 이외에 아무도 없었다. 때때로 아직 매달려 있던 겨울 나뭇잎이 바람에 날려 호수 위로 떨어질 때 놀랐다는 듯이 푸드덕거리는 오리 떼들의 움직임 외에는 고요하기만 한 호수는 온통 우리 차지였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호수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조락(凋落)한 겨울나무들의 내음을 맡으며 우리는 천천히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케임브리지에서 오클랜드까지는 길지 않은 길이었지만 돌아오는 내내 비가 내렸다. “비가 오니까 더 좋으네요. 여행 내내 날씨가 좋더니 집으로 가는 길을 축복해주는 비 같아요”하며 비를 워낙 좋아하는 아내가 행복한 모습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 아내를 옆 눈으로 바라보며 내가 물었다. “이번 여행 어땠소? 겨울 나그네 돼볼 만 했소?” 아내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손을 뻗쳐 오디오의 스위치를 눌렀다. 여행 내내 몇 번이고 듣던 ‘겨울 나그네’가 다시 흘러나왔다. 바리톤 피셔 디스카우가 보리수의 두 번째 연을 노래하고 있었다.
오늘 밤도 지났네 그 보리수 곁으로….
가지는 산들 흔들어 내게 말해 주는 것 같네
‘이리 내 곁으로 오라 여기서 안식을 찾으라’고…
아내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 허밍으로 노래를 따라 했다. ‘이리 내 곁으로 오라 여기서 안식을 찾으라’고…. 마치 슈베르트가 우리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이번 겨울 나그네 너무 좋았어요.” 아내가 운전대 위의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겨울 여행으로 시작된 겨울 나그네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행복하기만 했다.
글과 사진_석운<스콜라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