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뉴질랜드 꽁트 29 ; 영물이라고마
뉴질랜드 꽁트29 영물이라고 마 / 백동흠
영물이라고 마
“언능 밥 묵고, 요게 뭔 소린지 해석 좀 해 보이소.”
“이제 퇴근한 사람한테. 숨 좀 돌리고나 하그라. 웬 뜬금없이 영어 문장을 들이대노?”
남편이 저녁 식사를 끝내기도 전이다. 불쑥 아내가 밥상에 노트를 펴 들이댄다. 1B5 노트에 나열된 문장 중 빨간 줄이 그어진 부분을 아내가 가리킨다. 호기심 어린 눈길이다.
“오늘 좀 고단하데이. 후식이라도 주면서 얘기 하그라. 뭐 입에 당기는 단 과일 같은 게 없나? ”
“요걸 알아 맞히믄 준비해둔 Rubyred Kiwi 줄 거다. 오늘 사왔는데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다. Kiwi 즙이 완전 꿀물이데이. 세상에 공짜가 어딨노? 히히.”
남편이 밥상을 물리고 난 뒤, 못이긴 체 돋보기안경을 닦는다. 안경을 쓰며 안경너머로 아내를 바라본다. 싱긋 웃음이 나온다.
‘요즘 아내가 변했네. 무슨 어린애도 아닌 나이에 호기심이 저리도 많나? 아들 딸 분가시키고 한 때는 허한 느낌이 든다고도 했던 사람이?’
아내가 내민 영어 문장에, 남편이 궁금해 봤더니 요거다. 단출한 문자, 한 줄이다.
‘They do everything but watch TV.’
“They가 누구꼬?”
“그건 알 것 없고, 퍼뜩 말해 보그라.”
아내는 내심 어린아이 앞에 앉은 초등학교 선생이라도 된 얼굴이다. 문제를 받아든 남편은 졸지에 시험 문제를 푸는 어린 아이격이다.
‘요사이 이웃 집 키위 할머니 마아가렛 한테 영어로 얘길 꽤나 하는 아내가. 이걸 물어보는 데는 무슨 이유가 있겠지? 그들이 누구꼬?’
수수께끼를 푸는 마음으로 다시 들여다보는 남편이 스윽 다시 문장을 스캔해 본다. 흘러내리는 돋보기안경을 치켜 올린다. 수수께끼 함정을 생각해 본다.
“평범한 단어 나열에, but이 포인트 아이가?”
“뜸 들이지 말고 퍼뜩 해석해보라카이!‘
“알았다. 그대로 직역하믄... . 그러니까... .”
“되게 말이 많다. 어서 keep going 하그레이!”
‘keep going? 어라!’
아내가 불쑥 던진 말에 남편 얼굴에 재미가 살아난다. 갑자기 얄궂은 생각이 든다. 남편 반응에 조바심을 갖는 아내를 어떻게 골려줄까?
‘이 사람이 제법이네. 저런 말도 무심코 튀어나오고. 이웃 집 키위 할머니 마아가렛이 이 모습을 보면 웃겠다. 포커 페이스 조절을 해야지.’
“채근이 넘 심하데이! 언능 그 Kiwi나 내 놔라. 먹고 나야 생각이 탁 튀어나올 듯한데.”
아내가 입을 삐쭉거린다. 시험문제를 들고 쩔쩔매는 어린아이 모습을 생각해 봤는데, 쉽게 넘어오지 않는다.
‘되게 말이 많네. 알고 저러는 거야? 모르고 저러는 거야?’
비로소 남편이 한 발짝 진도를 나간다.
“그들은 뭐든지 한다고?”
‘... .’
“TV를 본다고?”
아내가 인내심을 갖고 더 기다린다. 일어나서 주방으로 간다. 준비해둔 과일 쟁반을 들고 나온다. 하얀 접시위에는 Rubyred Kiwi가 반으로 잘려있다. 단면이 만개한 빨간 꽃송이처럼 화사하다.
“but을 알려 주그라. 그러나는 아닌 것 같은데?”
“당근이지. 그라카믄 내 왜 물어 봤겠노?”
남편 얼굴이 Rubyred Kiwi처럼 밝아진다. 아무런 말없이 놓여있는 빨간 Kiwi를 슬쩍 본다. 채근하는 아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내 말은. 열쇠가 두 개라는 말이다. They와 but이지. 하나는 알려 주그라.”
“영어할 때도 그렇게 하나? 묻고 생각하고 이야기 하다간 꽝이지. 순간, 탁 하고 입에서 말이 튀어나와야지. 그렇게 생각하다 버스 떠나겠다.”
“어라? 아예 노골적으로 훈계하시네. 당신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 하다 온 근성이 멀리 못 갔네. 열쇠 중 하나는 알려줘야지? 먹는 것 앞에 두고 이러는 것 아니데이.”
남편의 대답에 성이 안 찬 아내가 고개를 갸웃 거린다. 이미 붉어진 Rubyred Kiwi가 무슨 죄냐? 막 붉어지려는 남편 얼굴은 또 뭘 잘못했다고?
아내가 한보 양보한다. 슬그머니 They 열쇠를 풀어준다.
“They는 Ants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