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91); 마라나타-오시옵소서!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91); 마라나타-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13~21>

일요시사 0 59 0 0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 기록한 편지 형식의 글입니다. 계시록의 기록목적은 한 마디로 미래적인 소망입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 교회를 향한 거센 핍박 가운데 믿는 자들은 곳곳으로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복음전파는 고사하고, 그저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말씀을 기록하게 하십니다. “지금은 환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회복의 내일이 있을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중심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지금 초대교회 성도들, 특별히 박해의 중심에 서있는 이들이 원한 것은 내일의 소망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당장 모든 압제와 핍박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됨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저들의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주의 말씀을 듣고 담대함으로 주님을 맞이하고자 하였지만, 아직 우리는, 이 세상은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라나타-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덮어놓고 할 수 있는 고백이 아닙니다. 이러한 신앙의 고백을 드리고자 한다면, 그에 합당한 준비된 모습이 있어져야 합니다. 함께 찬송한 것처럼 주님 맞을 등불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준비인가요?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나에게 ‘마라나타’ 오시옵소서.


사랑받는 제자였던 사도 요한은 자신과 함께 동역했던 제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요? 이러한 아픈 현실을 살아가던 요한, 그는 예수님께서 환상 중에 보여주신 모든 것들을 다 기록한 후에 고백합니다. 지금 고난 중에 있는 믿음의 백성들 모두, 자신이 바라 본 새하늘과 새땅의 기쁨을 함께 바라보며 누리길 원하는 간절한 소망입니다.

  

하지만 오늘 이 말씀을 마주하는 우리 자신은 어떤가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벅찬 감격으로 고백하다가도, 다시 고백이 바뀌어집니다. 오늘 말고, 내일, 내일 말고 모레, 모레 말고 내년에, 아니 좀 더 있다가 오시면 어떨런지요?  근래에는 교회에서 재림에 관한 설교가 많이 줄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지금 사는 게 행복한 겁니다. 만족스러운 거예요. 또 하나는 스스로 너무 부족한 거예요. 아직 준비가 덜 된거죠.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사실 다 표면적인 이유고, 정말 본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내가 신앙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한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예수님을 내 안에 제대로 모셔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 고백을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나에게 ‘마라나타’ 오시옵소서.” 내 안에 주를 영접함이 필요합니다. 

  

오늘날의 신앙을 보면 “신앙의 유목민화”를 떠올리게 됩니다. 쉬운 말로 “신앙의 떠돌이화”입니다. 정착도 쉽고, 떠나기도 쉽습니다.  실제 신앙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 교회에 정착해서 믿음을 잘 이어가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현장 속에서도, 유튜브 속에서도, 유목민처럼 이리 저리 떠돌아 다니는 거예요. 하지만 어딜 가도, 무얼 봐도, 늘 완전한 만족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간단합니다. 내 안에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 14절에 말씀합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자기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바로 서야함을 말씀합니다. 내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은혜를 받을만한 준비된 심령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귀 먹고 말이 어눌했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니까, ‘에바다’ 열려지잖아요. 이미 죽어 생명을 잃은 자도 예수님을 만나니까, ‘달리다굼’ 생명의 자리로 일어나잖아요. 나에게 ‘마라나타-오시옵소서.’ 나에게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어져야 비로소 참된 은혜가 시작됩니다. 그 때 비로소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마라나타-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담대하게 고백할 준비가 되는 것이요, 그 고백에 합당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내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 가정에 ‘마라나타’ 오시옵소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기도의 제목 중에 하나는 아마도 자녀손들의 믿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또 가장 힘든 일 중에 하나입니다. 요즘은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내 허락 받고 나를 태어나게 했냐?”라고 질문을 하는 세대이기에, 이런 이야기들은 충격적으로 들리지도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안낳는게 답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우리 교회에 아기들도 많고, 꼬맹이들도 많다는 겁니다. 얼마나 이쁜지 몰라요. 하지만 부모님들은 힘들죠. 손도 많이 가고, 뭐 마음대로 하기도 어렵고, 그러니까 애들 빨리 자라기만을 바랍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자랄수록 힘들어집니다. 아이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잘 물려주는 것은 고사하고, 그냥 학교 잘 다니고 평범하게 잘 키워가는 것 조차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제가 늘 권면드리지만, 내 자녀가 믿음생활 잘 하고 있으면 정말 감사하게 여기십시오. 그리고 혹 주변에 정말 자녀 때문에 속 썩는 가정이 보이면,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은 그저 위해서 기도해주는 거예요. 조용히 위로하고 기도해주는 것, 그게 정말 귀한 일입니다. 혹 지금도 가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해서 아파하는 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 회복과 치유의 역사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부부간에도 어려움이 있죠.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아픔이 있습니다. 결국은 본질로 돌아갑니다. 첫 번째에서 드렸던 말씀 ‘나에게 마라나타오시옵소서.’   일단 내가 먼저 흔들림 없이 서 있어야 합니다. 부모로서,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아빠로서, 엄마로서, 할아버지로서, 할머니로서, 든든한 기둥이 되어 서 있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 성도님들 가정에도 그 역할을 하고 있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신앙적으로나, 삶적으로나, 성품적으로나, 어쨌거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분들이 계실 거예요. 그 자리를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오늘 요한계시록 마지막 부분에 계속 권고하는 메시지가 이겁니다. “이런 저런 유혹하는 무리들이 있을지라도, 너는 흔들림없이 서 있으라.”는 거예요. 그래야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이 되시는 주의 은혜를 우리가 함께 누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에 ‘마라나타’ 예수님께서 임재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의 가정의 주인이 되시고, 믿음의 가문으로 세워주실 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 주님 안에서 평강과 행복을 누리는 복된 가정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우리 교회에 ‘마라나타’ 오시옵소서. 


저는 뉴질랜드광림교회의 담임목사로서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가 정말 하나님 보시기에 칭찬받을만한 교회, 모든 목회자와 성도님들이 함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교회, 더불어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주의 사랑을 전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함께 예배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봉사하고, 함께 헌신하고, 함께 사명 감당하고, 함께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님들이 함께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마라나타-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의 역사가 임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교회 공동체가 형성되는데, 믿는 사람들이 모든 물건을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서로의 필요에 따라 나눠줍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모이기에 힘씁니다.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하지만 정작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어떤가? 사람들은 대부분 다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을 향해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인 사고로 판단하곤 합니다. 쉽게 판단하고, 쉽게 정죄하고, 쉽게 오해하고, 쉽게 잊어버리고...  그러다보니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여도, 늘 똑같은 실수를 범하고, 똑같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곤 합니다. 하나님께 칭찬 받는 교회의 모습, 세상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믿는 자의 모습에서 점점 멀어져갑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믿는 자로서 목사의 잘못, 성도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 깨닫는 것, 거기서부터 회복이 시작됩니다.  신앙은 있는 것 같은데 인격적으로 부족했던 모습, 찬송과 기도에는 열심을 냈던 것 같은데 사람들에게는 막대하고 함부로 말했던 모습, 그걸 깨닫고 인정해야 나아질 수 있는 길이 열려집니다.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가, 또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이러한 모습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교회, 그래서 하나님께서 날마다 믿는 자를 더하게 하시는 복된 교회, 믿음의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우리 교회에 ‘마라나타-오시옵소서.’ 간구하며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 여러분! 믿음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늘 기도하는 겁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나에게 오시옵소서. 우리 가정에 오시옵소서. 우리 교회에 오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을 모시고 주님과 늘 함께 동행할 때에, ‘마라나타-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오늘 사도 요한처럼 담대히 고백할만한 삶을 살아가는, 또한 그 삶을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이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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