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14)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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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14)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자 <누가복음 3:15~20>

일요시사 0 108 0 0

광야에서 세례 요한은 세상을 향해 선포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 속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가요? “이제 곧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다. 그전에 회개하라.” 다시 말해 “너희들이 그렇게 바라고 기다리던 메시야가 곧 오실 것이다.” 이 말과 같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바라보며 마음에 생각합니다. 서슬퍼런 심판의 말을 내뱉는 세례 요한, 그가 메시야, 곧 우리가 기다리는 그리스도가 아닌가? 하지만 요한은 메시야가 아님을 스스로 밝힙니다. 주님 오심을 준비하는 자로서의 세례 요한의 모습을 밝힙니다.

 

세례 요한은 주님 오심을 준비하는 사명에 충실했습니다. 메시야를 비추는 가장 아름다운 조명이요, 메시야를가르키는 가장 아름다운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만인가요? 오늘 우리도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자로 살아갑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날을 준비하는 자로서 살아갑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은 무엇인가? 오늘 세례 요한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겸손함으로 내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겸손은 신앙인으로서 가장 귀한 덕목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겸손의 왕으로 이 땅 가운데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왕 중에서도 가장 능력이 많으신 왕이신 동시에, 가장 겸손하신 왕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겸손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권세가 주의 손에 있고, 모든 능력이 주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겸손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에 말씀하죠.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런데 이 말씀 바로 앞에 이런 말씀이 먼저 나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님을 따르는 너희들 역시 이러한 겸손한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주님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자로서의 합당한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향해 “저 사람이 그리스도인가?” 심중에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요한의 반응이 16절입니다.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겁니다. “나는 지금 너희들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메시야 되시는 그분은 나보다 훨씬 더 능력이 많으시기에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할 부족한 존재다.”  세례 요한은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함으로 자신의 자리를 잘 지켜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만함은 사람을 꼿꼿하게 서게 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넘어지게 만듭니다. 반대로 겸손함은 사람을 낮은 자리에 있게 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가장 높은 자리에 서게 만듭니다.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자로서, 예수님의 겸손함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세례 요한이 겸손함으로 자신의 자리, 자기가 지켜야 할 선을 딱 지킨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겸손함으로 내 자리를 잘 지켜, 지극히 높여주시는 하나님의 참된 영광을 누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두렵고 떨림으로 주를 섬겨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막연한 낙관주의가 있었습니다. 이는 저들이 가지고 있는 선민의식에 근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시고, 하나님의 백성 삼아주십니다. 이전까지 애굽의 종 되었던 신세였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엄청난 권세를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녀됨의 권세 왜 그렇게 막강한가요? 잘못해도 내 자녀요, 말썽을 부려도 내 자녀요, 일을 저질러도 내 자녀입니다. 그렇기에 언제나 부모님이 그걸 수습합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딱 이 모습이었습니다. 사사 시대에 죄를 짓고,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였는데, 그때만 “하나님!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사사를 보내셔서 위기를 넘어서게 해주십니다.  그러다가 왕정시대, 하나님께서 안되겠다 싶으셔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너희들 그렇게 말 안들으면 혼난다.” 혼나도 정신을 안차립니다. 백성들이 생각하는 거예요. “에이! 망하게까지야 하시겠어?”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순종할 생각은 하지 않고, “내가 하나님의 백성인데...” 그 생각만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나라가 망하는 지경까지 가죠. 그럼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가요? 똑같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야.” 지금 로마의 압제를 당하면서도 여전히 “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우리에게 다윗과 같은 메시야를 보내주실 것이다.” 이에 세례 요한이 저들을 향해 마태복음 3장 9절에 이런 책망의 말을 전합니다.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그러면서 본문 17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구원 받은 자와 구원 받지 못한 자를 놓고, 손에 키를 들고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는 것처럼, 최후의 심판이 있을 것임을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알곡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를 위해서 두렵고 떨림으로 주를 잘 섬겨야 합니다. 그저 막연하게 “나도 교회는 다니니까” “나도 믿음이 있으니까.” “나도 하나님의 자녀니까.” 그 정도로, 막연한 낙관주의로 살아가면 안됩니다. 예수 십자가 보혈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은혜를 값싼 은혜로 전락시키면 안됩니다. 주를 향한 굳건한 믿음, 또한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주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고자 애쓰고 힘을 다해야 합니다.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자로서, 두렵고 떨림으로 주를 섬겨 알곡과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복음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 외치는 소리가 되어서 세상의 기득권에 주눅들지 않고 선포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지만 그렇다고 요한이 무조건 이런 심판의 메시지만 전한 것은 아닙니다. 동시에 언제나 피할 길을 알려줍니다. 그게 무엇인가요? 좋은 소식, 곧 복음입니다.  본문 18절입니다. “또 그밖에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보세요. 백성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합니다. 복음입니다. 구원의 소식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그 좋은 소식을 접하여 지금 구원의 자리에 서 있는 줄 믿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생명의 양식에 관한 말씀을 주십니다. 그 자리에는 전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부르게 먹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니까, 어렵다고, 설교 듣는 거 싫다고 사람들이 다 떠나갑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이 때 베드로가 고백하죠. “주여! 영생의 말씀이 여기 계시매 우리가 누구에게로가오리까.” 복음, 구원의 소식, 영생의 말씀은 꼭 붙잡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세례 요한은 백성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마음에 새겼습니다. 이를 통해 회개하고 구원의 길에 서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다 그런 건 아니죠. 19절과 20절에 보면, 분봉 왕 헤롯은 자신이 행한 악한 일로 인해, 도리어 세례 요한을 싫어합니다. 그 결과 그는 구원의 길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더 큰 죄악을 쌓아갑니다.  사도행전에도 보면 비슷한 내용이 나오죠. 베드로가 복음의 메시지를 전할 때에,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말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베드로가 말하죠. “주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 저들은 복음, 좋은 소식을 듣고 생명의 길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이후에 스데반이 전한 복음의 메시지를 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요? 저들이 마음에 찔려서, 도리어 이를 갈고 스데반을 향해 돌을 던집니다. 복음, 좋은 소식을 듣고 살 길을 찾을 수 있었는데, 오히혀 더 큰 죄악을 쌓는 길로 나아갑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복음 앞에 바로 서시기 바랍니다. 좋은 소식, 하나님의 말씀 앞에 믿음으로 반응할 때에, 순종함으로 반응할 때에, 아멘으로 화답하고 그렇게 살아가고자 할 때에, 구원과 영생의 기쁨을 누리게 되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자로서 복음 앞에 바로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복음, 좋은 소식을 듣고, 내 안에 새기고, 나아가 세상 가운데 전파하는 복음의 증인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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