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필드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 걷다...

교민뉴스


 

글렌필드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 걷다...

일요시사 0 216 0 0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한때 잘나가던 우리 등산 클럽이 선배들의 노화와 주도세력의 호주 및 한국 이주로 인해서 클로즈 되다시피 했는데 이제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물론 예전처럼 8시간씩 산행을 하고 오클랜드의 와이타케레를 뛰어 넘어 해밀턴으로, 남섬으로 가진 못하겠지만 일단 다시 뭉쳤다는데 의의를 두고자 한다. 오늘은 와이탕이 데이로 누구나 쉬는 날이 아닌가! 그리하여 다들 집에서 가까운 Eskdale Reserve Walk 와 Beach Haven 쪽의 Hellyers Creek Path 를 연결해서 약 4시간정도의 워킹을 하기로 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한바퀴 돌아오는 트랙은 아니지만 최소 4시간은 걸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구성을 하였다. 그리하여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지나갔던 곳을 다시 돌아오는 것이지만 도심에서 4시간짜리를 만들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코로네이션 로드와 글렌필드 로드가 만나는 곳의 라운드 어바웃 근처의 Eskdale Reserve Network 라고 쓰여진 큰 간판에서 시작을 하였다. 컴퓨터처럼 Network 이라고 나와있는 것이 조금은 생소하다. 이 숲 속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되어있다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고 컴퓨터와 관련된 용어가 여기 숲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뉴질랜드 어디나 그렇지만 이렇게 자동차의 왕래가 잦은 메인 도로에서 조금만 숲으로 들어가서 나타나는 모습은 여느 깊는 산속과 진배없는 모습이 특이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매일의 동네 공원산책이 심심해진 분은 이곳으로 오시라. 파킹 할 곳도 넉넉하고 여기 숲 속은 다양한 루트가 있어 전혀 심심하지가 않다.


여기를 자주 방문해서 오늘의 행사를 주관하는 분의 의견으로 비치헤번 쪽으로 가기전에 이쪽 숲에서 여기저기를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시간을 좀 더 만들어야 4시간이 가능하다고 한다. 말처럼 어떻게 그런 방법이 가능할까? 궁금했는데 여기 숲에는 정말로 다양한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처음 오는 사람은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농담으로 예전의 마오리 사람들처럼 실버펀을 뿌려야겠다는 말도 나왔다. 오늘이 국경일이어서 그런지 가족 단위의 Walker 들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개를 허용한 곳인지라 다양한 개들이 식구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우리의 복장도 이제는 현지인의 모습에 근접한지라 요란한 등산복이 아니라 그저 헐렁한 평상복에 가깝다.


트랙은 정비가 잘되어 있다. 비가 와도 질퍽거리지 않게끔 작은 자갈이라고 해야 하나? 굵은 모래라고 해야 하나? 이런 것이 뿌려져 있고 메인 트랙은 두세사람이 걸어도 될 만큼널찍한 편이다. 그리고 갈림길마다 팻말이 부착되어 있는데 주로 무슨 무슨 Road 로 나가는 길이라고 나와있다. 즉 이 동네의 다양한 많은 골목에서 이곳으로 접근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자니 이 리저브를 끼고 있는 집들은 복을 받은 형국이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아무 때나 쉽게 산책을 즐길 수 있고 트랙 자체가 나무숲 사이로 만들어져 있으니 햇볕도 없고 시원하여 여름철엔 정말로 좋은 곳이라고 하겠다.  


그러다가 개울을 만났다. 비가 오지 않아 그런지 흐르지도 않고 물색깔은 거의 녹색이다. 장어는 많이 살겠지만 저 물 한잔 먹으면 고통스럽게 배를 움켜쥐고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설악의 울산바위에서 저런 물색깔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1박2일로 울산바위 릿지 등반에 나섰는데 그 당시 우리가 가진 정보에 의하면 울산바위에서의 식수해결은 피크마다 바위에 고인 물이 있어 그걸 먹으면 된다고 했었다. 그래서 룰루랄라 그 무거운 물을 빼고 등반에 나섰는데 웬걸! 물은 정말로 고여 있는데 녹조가 잔뜩 끼어 있었다. 거기에 여름철인지라 모기가 되기 위한 수많은 장구벌레가 바글거리고 있었다. 경악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먹을 수 밖에 없었고 등산 스카프를 사용해서 물을 2번씩 걸렀다. 그리고 그 물을 끓여먹으면서 울산바위 등반을 마쳤었다. 물론 아무도 탈이 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여기 물은 안된다. 먹으면 정말 고생한다. 뭐 이런 생각…


날씨가 좋다. 이번 여름은 처음엔 추웠다가 지금은 마치 한국 같은, 호주 같은 더운 여름을 보이고 있다. 이러다가 뉴질랜드도 산불발생이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또 예전 이야기이다. 남섬 퀸스타운 쪽에서 차를 타고 가다가 산에서 불이 난 것을 발견했다. 북섬보다는 남섬이 건조하기 때문에 산불의 빈도는 훨씬 높다고 할 수 있다. 누가 신고하겠지, 그러다가 나의 오지랖은 내가 111로 신고를 하게 만들었다. 산불이니 우리식으로 Mountain Fire 라고 이야길 했는데 못 알아먹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전화기 속에서 자기도 답답한지 나무 몇 그루가 타고있느냐고 황당한 질문을 하더라. 산불인데…나무들이 엄청 타고 있는데…아이고. 그리고 나중에 배웠는데 ‘산불’은 Forest fire 혹은 Wildfire 라 그러고 ‘산불 발생’은 Brake out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Eskdale Reserve 를 벗어날 때쯤 밑바닥에 나무를 깔아 놓은 트랙에는 카우리 나무도 주변에 많이 보인다. 사진 찍으면 이쁘게 나오는 곳이니 방문하게 되면 놓치지 마시라.  그러다가 오른쪽으로 Stephanie Close 로 빠지는 팻말이 나오고 이곳을 지나면 개울이 이제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넓은 하류지역을 만나게 된다. 여기도 바닷물에서 살아갈 수 있는 맹그로브 나무가 무수히 깔려 있다. 그렇게 해서 만나는 도로가 Kaipatiki Road 이다. 여기서 끝내고 다시 돌아갈 수도 있지만 우리는 좌측으로 턴해서 Coptic Orthodox Church 를 지나 Beach Haven Road 로 들어섰다. 이렇게 오늘의 유일한 아스팔트 길을 10분 안되게 걸어서 주택가 234번지 가기전의 나무 기둥 2개 세워진 트랙으로 들어가는데 이곳이 Hellyers Creek Path 이다. 경치는 이쪽이 더 좋다. 왜냐면 사람도 없는 데다가 바다까지 끼고 있으니 말이다.


좌측으로는 비치헤번의 주택이 들어 서있고 우측으로는 물이 조금 남아있는 갯벌의 바다가 보인다. 그러다가 바다가 보이는 벤치 쪽에서 먼저 왔던 사람들이 막 일어서서 떠나고 있길래 여기다 싶어서 우리는 점심 보따리를 펼쳤다. 별것 없는 점심이지만 마지막으로 과일에다가 믹스커피까지 한잔 때리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한국에서 막 복귀한 후배의 인생이야기에 서로의 조언에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아마도 우리가 하도 떠들어서 가까운 주택에서 우리 이야기를 들었으면 저놈들 왜 저리 시끄러워 그랬을 법하다. 

다시 길을 떠났는데 펜스 담벼락에 아이스크림 컨테이너가 있고 그 옆에는 물을 담은 우유통이 2개나 있었다. 지나가는 개들을 위한 집주인의 배려인 듯한데 거기 적혀 있는 문구가 재미있다. ‘Please don’t take my milk bottles.’ 누가 저걸 가져갔나 보다 그러다가 그럼 저걸 왜 가져갔을까? 라고 생각해 봤다. 자기 개한테 물을 더 주기 위해서 그리고 돌아올 때 다시 반납을 해야지 그러다가 못한 것이 아닐까? 그랬다. 하기야 개와 함께 산책하면서 물까지 들고 다니는 사람은 흔하지 않으니 들고 갈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실제 우리 보고 개를 위해서 물을 달라는 아주머니도 그날 있었는데 우리는 우리 물을 주기보다 여기로 가시라고 이야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팔각정 같은 곳을 지나면서 왼쪽으로 커다란 잔디 필드가 나타났다. 이곳이 BeachHaven 의 Shepherds Park 인데 왜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살기가 넉넉하지 않은 동네에는운동시설을 정부가 많이 지어 놓는다는…그만큼이곳 파크의 규모가 남다르다. 보울링에 스쿼시에럭비와 축구 등등 다양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렇게 많은 운동장이 있는 파크를 나는 본적이 없다. 스트레스를 운동을 통해서 풀어라…뭐 이런 얘기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Hellyers Creek Path 는 파크를 지나서 Beach Haven Rd. 를 가는 것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우리는 아스팔트 길을 걷기가 싫어서 왔던 길을 돌아가기로 했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바다를 끼고 있고 또 아까와는 다르게 여유 있게 걸으면서 이집 저집 생긴 것을 구경하는 것이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어떤 집은 자기 집 바로 밑의 바닷가에 카약 2개를 매어놓고 있었다. 바닷물이 들어오면 언제든지 달려나가서 신나게 카약을 탈 수 있는 것이다. 부러워라…


누가보면 여기가 서해바다가 아닐까 하겠지만 여기는 엄연히 동해바다이다. 여기 물은 하버 브릿지 쪽에서 들어오는 물이다. 동해와 서해가 만나는 곳은 뉴질랜드에 없다. 오클랜드에서 동해와 서해가 가장 근접된 곳은 Otahuhu 쪽인데 정말로 조금만 물길을 만들면 손쉽게 동해와 서해가 만날 수 가 있다. 대한민국이라면 벌써 예전에 그리 만들었으리라. 그리하면 마누카우 항에 있던 배가 멀리 케이프 레잉아를 돌아 돌아서 오클랜드 와아테마타 항으로 올 필요가 없는 것이다. 돈도 돈이겠지만 개발을 그 무엇보다도 싫어하는 뉴질랜드 국민들의 심성을 그렇게 엿볼 수 가 있다. 걸프히버 지역의 골프장이 문을 닫았고 거기에 주택단지가 들어올까 싶어서 그 동네에 가면 개발 반대하는 표지판이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돈도 싫다는 것…


이렇게 우리는 다시 Eskdale Reserve 로 돌아왔다. 그리고 걷기 4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녔다. 어떤 곳은 소나무 갈비가 떨어져 있는 곳인데 얼마나 땅이 푹신한지 모른다. 그리고 뉴질랜드에서는 맡기 힘든 소나무 향이 났다. 아마도 비가 온 뒤나 혹은 이슬비가 뿌리는 날 이곳에 오면 소나무 향이 배나 더하리라. 그리고 그 갈비도 얼마나 길고 굵은지 두께가 2-3밀리에 길이는 20센티가 훨씬 넘었다. 소나무 낙엽을 왜 갈비라고 하는지는 두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소나무의 낙엽인 갈비는 불을 땔 때 연기가 나지 않아 설날 음식 때나 사용하는 귀한 땔감이라 음식 중 가장 귀한 ‘갈비’에 빗대어 ‘갈비’라 하였을 것 같고, 또한 작지만 모양이 갈비처럼 생겨서 그렇게 부르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곳의 소나무가 특이해서 구글링을 했더니 Radiata Pine 으로 나온다. 그리고 또다른 이름으로 뉴송(뉴질랜드 소나무) 이라고 한다는데 좋은 목재라고 한다. 카우리 나무만 좋은 줄 알았더니…


처음 시작에서 끝날 때까지 걸린 시간이 4시간 30분 정도, 우리가 점심을 먹으면서 이야길 많이 해서 30분 정도 초과된 듯하다. 입산했다가 하산을 하듯이 속세로 나온 우리 앞에는 콘스텔레이션 스테이션으로 향하는 95C 버스가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 교민 권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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