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15) 하나님의 어린 양 <요한복음 1:29~34>

오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향해 선포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큰 절기 중에 하나가 유월절입니다. 이 유월절이 어디서 유래하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입니다. 애굽에 내려진 열 번째 재앙, 장자의 죽음. 애굽의 모든 장자는 그 밤에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셨는데,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좌우 인방에 바르면 그 피를 보고 넘어가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망 없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를 위해 죽임 당하셨고, 우리를 위해 부활하셨으며, 우리를 위해 승천하시고, 우리를 위해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소망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우리의 영적인 눈을 들어 구원의 주가 되시는, 소망의 주가 되시는, 생명의 주가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이 시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만이 대속의 주가 되십니다.
사람들이 세례를 베푸는 요한을 찾아가 묻습니다. “네가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네가 선지자냐?” 이 모든 말에 세례 요한은 아니라 답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답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네가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선지자도 아닌데,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그러자 요한은 말하죠.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다. 그 사람은 내 뒤에 오시는 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이런 대화가 오고간 다음날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바라보며 선포한 것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여기서 가장 중심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어린 양’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가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이라는 말을 헬라어 원어로 하면, ‘아이로’라고 합니다. 그 뜻을 직역하면 “제거하다. 없애 버리다.”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다시 해석하면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는, 세상 죄를 없애버리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렇게 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제거한다는 것인가요? “세상 죄”입니다. 여기서 세상은 시간과 공간과 모든 것을 초월한 세상,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세상을 뜻하는 말입니다. 또한 그 세상 속에 살아간, 살아가고 있는, 그리고 살아갈 모든 사람들까지 포함합니다. 정리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포함한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죄를 제거하시는, 없애 버리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저와 여러분들의 죄를 제거하시고자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하셨음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에 백성들이 뭐라고 답하는가? 이어지는 15절입니다.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여기 보면 “없이 하소서”를 두 번 반복하는데, 이 말의 헬라어 원어가 ‘아이로’입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의,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인류의 죄를 없애버리시고자 십자가 죽음의 길을 향하시는데, 그 죄를 대속받는 주인공인 백성들은 외칩니다. “예수를 없애 버리소서. 없애 버리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만이 대속의 주가 되십니다. 구원의 주가 되십니다. 생명의 주가 되십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나의 죄를 없애 버리시고자, 십자가 길을 걸으신 예수님, 대속의 주가 되신 예수님을 향한 믿음으로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누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성령의 세례를 받습니다.
마태복음 3장 16절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여기서 예수님만이 아니라, 세례 요한도 예수님께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는 바라본 것입니다.
이어서 본문 33절에 또 말씀합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세례 요한도 잘 몰랐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세례 요한은 친척 관계였거든요. 하지만 그분이 메시야라는 사실,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처음에는 몰랐던 거죠. 그러다가 후에 보니까 알게 되고 깨달아진 것입니다
그럼 세례 요한이 자신의 뒤에 오실 분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였었나요? 마태복음 3장 11절입니다.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먼저 물로 죄 사함의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나의 구원의 주로 영접하면 이제 나는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됩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성령의 세례를 받으신줄 믿습니다. 그런데 사실 여기에 아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신은 성령 받으셨습니까?” 그러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엄청난 모순입니다. 보십시오. 고린도전서 12장 3절 후반부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예수님을 향해 나의 구원의 주로 고백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성령께서 나에게 명하셔야, 다시 말해 성령의 임재가 있어야지만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예수님을 나의 구원의 주로 믿으십니까? 그럼 성령의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원의 주로 내 안에 모신 자는 이미 성령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령의 임재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의 임재와 충만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충만하지 않을 때는 있습니다. 주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고, 사명 감당하는 그 모든 것,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성령의 임재를 받은 우리들, 거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 위에 굳건히 서서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거하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믿는 자에게 증인된 사명이 있습니다.
본문 마지막에 세례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이어서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면서 그 위에 성령의 임재가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가 지나는 모습을 보면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정리하면서 확증하여 말합니다.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후에 요한복음 3장 28절에 보면 세례 요한이 자신의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어떤 뜻인가요? “내가 끝까지 그리스도의 증인된 사명을 잘 감당하였음에 대해서 너희가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에게는 이러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내가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되어서 메시야의 오실 길을 준비하였다.”믿는 자로서 증인된 사명에 충실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도 세례 요한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누가복음 7장 28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이는 세례 요한만의 사명이 아닙니다. 예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구원 받은 우리들, 영원한 생명의 빚진 자 된 우리들 모두에게도 증인된 사명이 주어져 있음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온 모든 성경의 역사, 복음 전파의 역사 속에도 보면, 복음의 증인된 삶을 자청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먼저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은 바울입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입니다. 그 외에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의 역사하심 안에서 복음을 전한 수많은 익명의 크리스챤들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선교의 사명 감당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 모시고 그리스도의 빛된 삶을 살아가고자 애쓰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믿는 자로서 복음의 증인된 사명이 맡겨져 있음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 말과 행동과 삶을 통해 증인된 삶을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고, 복음의 증인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