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21) 죄인의 회개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사무엘하 12:7~15>

할렐루야! 이시간 주님 보좌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가운데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시간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죄인의 회개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입니다. 제가 어느날 집에 누워 유튜브를 보는데 과거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에 대한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은 백화점이 붕괴되고 다리가 붕괴되는 그런 사건들이었습니다. 그렇게 그 당시 뉴스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서 보는데 사건 현장이 참 끔찍하고 그 아픔들이 다 전해지더라고요. 제가 본 그 영상에서는 당시 그 사건들에 대해 전문가들이 나와서 사고의 원인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하나같이 이야기하는 원인이 뭐냐면 ‘안전 불감증’이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럼으로 이 안전불감증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보면 안전사고에 대한 인식이 둔하거나 혹은 안전사고에 익숙해져서 사고의 위험성에 대해 별 다른 느낌을 갖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안전사고에 대한 감각이 둔해져서 “오늘은 괜찮겠지” 했던 그 안일한 생각이 우리 나라를 뒤흔드는 상상도 못할 끔찍한 사건을 낳게 된 것이죠.
제가 그 영상에 나오는 이 안전 불감증에 대해 보고 있는데 마음 한켠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우리의 영적인 삶도 어쩌면 이와 같을 수 있겠구나. 우리의 영적 삶에도 이와같은 안전불감증이 있어서 영적으로 완전히 둔해져 내 영혼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의 영적인 상태에 전혀 관심이 없고 나 이 정도면 괜찮은거 아닌가? 하는 그저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그런 영적인 고질병이 우리의 삶에도 있을 수 있겠구나” 이 영상에서의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사건과 같이 그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영적 안일한 생각이 결국 우리의 삶 전체를 뒤 흔들어 나를 사망의 길로 가게 만들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으로 성도님들 이 시간 우리가 경계해야 할 믿음의 모습에 대해 함께 나눌 때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영적 상태를 확실히 점검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죄의 자리에서 떠나 주님 가라하신 생명의 길, 진리의 길로만 나아가는 저와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첫 번째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믿음의 모습은 삶에
회개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던 안전불감증에서의 가장 큰 문제는 안전에 대하여 둔해지는 것이죠. 이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적인 삶 가운데 경계해야 할 모습이 있다면 바로 영적인 감각이 둔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읽었던 말씀에 보면 다윗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칭호로 유명하고 또한 하나님 앞에서 전심을 다해 예배했던 예배자로 모두가 인정하는 그런 대단한 믿음의 사람이었죠. 그런 그의 삶은 정말 완벽해보이고 성경에서 묘사하는 그에게 어떠한 오점도 없을 것 같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듯 다윗의 그런 완벽한 삶을 단번에 꺾어버리는 사건이 한가지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은 다윗이 밧세바라는 한 여인을 마음에 품게 되며 시작하게 되죠. 그렇게 다윗은 그렇게 밧세바의 아름다움에 눈이 팔려 하나님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자신의 정욕을 따라 일을 처리해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밧세바와 동침을 하게 되고 밧세바가 다윗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죠. 그리고 그는 그것을 숨기려 갖가지 노력들을 하다 결국 어디까지에 이르게 되죠? 자신의 죄를 감추려 우리아의 살인을 명령하는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밧세바라는 여인을 본 후 들었던 그 마음 하나가 살인을 교사하는 죄에까지 이르게 만들게 된 것이죠. 성도님들 이와 같이 우리의 믿음의 삶 가운데 경계해야 할 것은 내 삶에 점검과 회개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보았던 안전 불감증이 안전에 대한 감각이 둔해져 점검을 하고 고칠 것이 있으면 고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괜찮겠지” 하며 넘어가는 것 처럼 우리 또한 영적으로 둔해지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열매가 신앙의 안일함과 타협에 빠져 내 삶을 돌아보고 바른 길로 바로잡는 그 점검과 회개가 삶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에게 있는 특징이 하나 있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생명이며 본질인 복음이죠. 이 십자가는 우리가 매순간 놓치지 말아야 할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데 이것을 먼저 놓치게 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정말 예수님을 잘 믿고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은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신의 심령에 세우려고 애쓰고 진리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점검하고 그 피로 회개하기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럼으로 성도님들 우리 한번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내 영적 삶에는 점검이 있는가. 그리고 그에 따른 회개가 있는가.
만약 내 삶에 그 철저한 점검과 뜨거운 회개가 사라졌다면 어쩌면 우리도 어느순간 영적으로 둔해져 버려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럼으로 성도님들 우리가 영적으로 둔해지지 않기위해 날마다 해야할 것이 무엇인가. 우리의 삶에 다시 십자가와 진리의 말씀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진리의 말씀이 나의 죄를 들추어 줄 것이고 십자가의 능력이 내 안에 참된 회개의 영을 부어줄 것입니다. 이제는 이것을 깨달으시고 내 삶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그 말씀으로, 그 복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저와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두 번째로, 죄의 자리가 익숙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그렇게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저지른 다윗은 하나님의 시선은 생각지 않고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바로잡으려는 노력도 없이 그렇게 죄에 익숙해져 갑니다. 그리고 다윗에 관하여는 하나님께서는 늘 칭찬만 하셨으나, 오늘 말씀에서는 다른 평가를 내리시죠. 사무엘하 11장 27절입니다.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성도님들 다윗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 우리는 죄에 대하여 익숙해지는 모습을 경계해야 합니다. 처음 살펴봤던 영적으로 둔해진 영혼의 상태가 지속되었을 때 그렇게 죄 가운데 계속 노출되어 있으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이제는 죄에 익숙해지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 죄의 자리가 불편하고 양심에 찔렸으나 이제는 그 불편함이 사라지고 익숙해지다 오히려 죄가 주는 쾌락을 쫓게되죠. 그렇게 세상에 빠져 살아가는 것이 익숙해져서 붙잡고 있던 하나님의 영역들을 내려놓게 되고 자연스레 그 부분들을 세상의 것으로 채우게 됩니다. 그렇게 점점 죄가 우리의 영혼을 삼켜버리기 시작하는 것이죠.
성도님들 우리는 우리의 영적 삶을 생각할 때 하나님, 죄, 그리고 이도저도 아닌 중간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사실 중간은 없습니다. 애초에 하나님 없는 영역은 다 죄의 영역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보면 하나님의 영역이 내 삶에 많아지면 죄의 영역들은 물러가는 것이고 반대로 죄의 영역들이 넘쳐나면 하나님의 영역들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은 세상 것들을 끊어내야지 라는 선포보다 내 삶에 하나님의 영역들을 늘려가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빛이 오면 어둠은 물러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와보면 조금전 말씀에서 죄에 익숙해져 있는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와 책망의 말씀을 전해주셨듯 우리도 죄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늘 찾아와 그 죄를 가르쳐 주시고 주께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릴 때 그 앞에서 반박하며 내 자존심을 세우는게 아니라 그저 겸손하게 말씀 앞에서 회개하고 순종할 줄 아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말씀이 내 마음을 찌른다면 성도님들 이건 은혜입니다. 이 땅에 있을 때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 내 죄를 들추어 주신다면 이건 굉장한 은혜라는 것이죠. 그것이야말로 나를 사랑하셔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인 줄 믿습니다. 그럼으로 이제는 하나님의 회개의 말씀을 나를 사랑하셔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받는 저와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끝으로,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와보면 나단 선지자가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을 들고 다윗을 찾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이야기를 하나 해주게 되죠. 그러면서 당신이 어찌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짓을 행하였냐고 나단 선지자가 막 책망의 말씀을 전하게 되죠. 그때 죄에 대해 이미 익숙해지고 안일하게 살아가던 다윗에게 한 가지 모습이 나타나죠. 본문 13절입니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다행히 그 책망을 들은 다윗은 곧바로 하나님께 회개를 하죠. 그런데 참 허무하게도 다윗이 그 큰 범죄를 저지르는 장면은 11장 전체를 차지하며 나왔는데 다윗이 회개하는 장면은 단 한 절 그중에서 짧게 나와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다가 이부분에서 사실 허무했습니다. 이렇게 큰 범죄를 저지른 자의 회개가 단순히 이것인가. 허무했습니다. 주님께 통곡하며 옷을 찢으며 그런 전심을 다해 회개하는 모습이 나와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다윗의 그런 짧은 회개뒤에 나단이 이야기하죠.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하나님께서는 그 다윗의 회개를 받아주신 것이죠. 제가 이 말씀을 보는데 깨달아지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는 짧게 기록되서 이 회개의 장면이 허무했을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다윗의 회개를 크게 본 것이구나. 아니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회개만 기다리신 것이구나 깨달아지더라고요.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말씀 앞에 선 우리 가운데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 한가지, 바로 회개입니다. 우리 주님은 회개하는 자를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누가봐도 악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다윗의 회개 하나만 기다리셨던 것처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도 동일합니다. 어떠한 죄를 지었든, 내가 현재 어떠한 영적 상태를 가지고 있던 그저 뻔뻔하게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와 회개하는 자를 주님은 기다리십니다. 이제는 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십자가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께로 돌이킬줄 아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돼지와 양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키우는 돼지와 양을 똑같이 깨끗하게 목욕 시켜놓았다고 합니다. 돼지도 여러분들 깨끗이 씻기면 양만큼 뽀얗다고 합니다. 그렇게 씻긴 그둘을 한 진흙 구덩이에 빠뜨렸다고 합니다. 그러자 서로 다른 반응이 나타나는데 돼지는 거기서 좋다고 논답니다. 진흙에서 뒹구르며 나올 생각이 없답니다. 그런데 양은 빠지자마자 이곳이 더러운 곳이구나를 느끼고는 어떻게서든 빠져 나오려고 했다는 것이죠. 성도님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씻김 받은 우리 성도들 가운데 죄에 빠졌을 때 두가지 반응으로 갈라집니다. 한 성도는 죄에 빠졌을 때 그저 그 죄가 주는 즐거움과 쾌락에 빠져 그곳에서 나오려는 생각도 없이 즐기며 살아가지만 어떤 성도는 죄에 빠지자마자 어떻게서든 그 죄에서 나오려고 발버둥을 치는 양과 같은 성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어떤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양과 같이 늘 깨어있어 더러운 죄의 길에서 떠나 주님의 길로만 나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말씀 앞에서 내 영적 상태를 점검하고 또 회개하기를 즐겨하는 자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오늘 함께 나눈 말씀을 기억하며 나의 영적인 삶을 진리의 말씀을 통해 점검하고 또 점검하여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그 생명의 길로만 나아가는 저와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