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일상톡톡; 고몰고몰 그때그때

교민뉴스


 

백동흠의 일상톡톡; 고몰고몰 그때그때

일요시사 0 157 0 0

고몰고몰 혼자서도


그때그때 하나씩 여유있게 행동하는 습관이 차츰 몸에 배게 되었나 싶네요.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늘 빨리 달리던 기억이 먼저 떠오르는군요. 젊은 시절엔 앞만 보며 달려야 한다고 믿었고, 중년의 문턱에선 책임이란 무게에 눌려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며들어요.


고몰고몰, 조금은 낯선 표현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마음을 곱씹어 보면, 묵묵히 나만의 속도로 조용히 움직이는 태도를 닮아가는군요. 화려하지 않아도 좋고, 빠르지 않아도 괜찮지요. 중요한 건 혼자 있어도 심심해하지 않고, 소소한 순간에서도 재미와 의미를 찾는 힘일 테지요.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순간들


오클랜드의 거리를 걷다 보면 종종 이런 풍경을 만나지요. 창가에 앉아 바닷결을 한참 바라보는 이들, 공원 벤치에 기대어 책장을 천천히 넘기는 모습.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도 이곳만의 리듬이 살아 있음을 느끼지요.


세계보건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서두르지 않고 느긋한 생활 습관을 가진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평균 수명이 7년 길다고 하지요. 조급함은 결국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수치로 보여주는 거지요.


노자의 말처럼 “큰 소리는 들리지 않고, 큰 형상은 보이지 않는다”는 구절이 떠오르네요. 겉으로 드러나는 성취와 속도가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그때그때, 하나씩


돌아보면 여러 일을 한꺼번에 해내려다 오히려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던 적이 많지요. 그런데 눈앞의 작은 일 하나에만 집중했을 때, 성취감도 크고 마음도 편안했지요.


“그때그때 하나씩”이라는 말, 참 좋지요. 밥을 먹을 때는 밥맛에 집중하고, 산책을 할 때는 바람의 결에 귀 기울이고, 대화를 나눌 때는 상대의 눈빛에만 마음을 두는 것. 그렇게 지금 이 자리에 충실하면 혼자 있어도 허전하지 않고, 함께 있어도 기대와 실망에 휘둘리지 않지요.


장자가 말했지요. “삶은 한낱 꿈과 같다. 중요한 것은 깨어 있는 동안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이다.” 혼자서도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은 멀리 있지 않지요. 차를 마시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순간, 텃밭의 작은 새싹을 바라보는 짧은 여유, 책 한 페이지에 고요히 몰입하는 시간. 이런 순간들이 모여 인생을 단단히 채워주니까요.


 

흔들리는 날에도


물론 인생은 언제나 순탄하지만은 않지요. 나이가 들수록 건강은 예전 같지 않고, 인간관계에서도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곤 하지요. 괜스레 외로운 날이 찾아오기도 하고, 작은 걱정이 밤새 마음을 괴롭히기도 하지요.


한국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60대 이상 인구의 34%가 ‘외로움’을 자주 느낀다고 해요. 그런데 같은 조사에서, 취미나 몰두할 일이 있는 이들의 외로움 지수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는 결과도 있지요. 결국 혼자서도 잘 지내는 습관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는 것이지요.


실제로 오클랜드 교민 사회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자주 보게 되지요. 브라운스에 사는 한 70대 지인은 은퇴 후 적적함이 커졌지만, 주말마다 작은 텃밭을 가꾸며 이웃에게 채소를 나누어 주는 일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하더군요. 혼자서도 고몰고몰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주변에 자연스레 따뜻한 관계가 생겼다는 고백이 참 인상 깊었지요.


또 한 분은 글렌필드에서 혼자 사시는 80대 여성분인데, 도서관에서 열렸던 수필문학 교실에 빠짐없이 참석했지요. 특별히 큰 대화가 오가는 것도 아니지만, 자신이 쓴 짧은 글을 나누는 그 시간 덕분에 “외롭지 않고 오히려 자유롭다”고 웃으시던 모습이 오래 남네요.


세월을 붙잡으려 애쓸 필요는 없지요.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니까요. 강을 건너려면 다리를 찾을 것이 아니라, 물결에 몸을 맡길 수 있어야 한다는 말처럼 말이지요.


 

평화와 여유, 그리고 자존감


고몰고몰, 서두르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서 마음을 놓아두는 태도는 단순한 여유가 아니라 지혜라고 생각이 드네요. 남에게 지나친 기대를 걸지 않고, 내 앞의 일에 집중하며, 되어가는 대로 살아가되 감사함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후반을 평화롭게 지켜주는 힘일 테지요.


“행복은 준비된 마음을 만난 우연이다”라는 말이 있지요. 그 준비된 마음은 다름 아닌, 일상의 사소한 습관에서 시작되지요. 고몰고몰 움직이는 삶, 그때그때 하나씩 집중하는 습관, 혼자서도 재미있게 살아가는 자존감. 이 세 가지가 우리 삶을 단단하게 지켜줄 것이라 생각이 드네요. 교민 사회 안에서도, 이 단순한 습관을 통해 삶의 균형을 찾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지요. 일상의 작은 기쁨에 감사하며, 마음 편히 지금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평화의 길일 거라고 여겨지네요.


오늘 하루만큼은 잠시 멈춰 서서 내 삶의 속도를 바라보면 어떨까요.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게, 지금 그 자리에서 감사함을 느끼는 것. 그 평화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나와 이웃을 함께 따뜻하게 지켜줄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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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백동흠 

수필 등단: 2015년 에세이문학. 수필집: 아내의 뜰(2021년). Heavens 지금여기(2022년). 수상: 2017년 제 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 대상 (깬니프!). 2022년 제 40회 현대수필문학상 (Heavens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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