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일상톡톡;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를 보고
영화 노량은 현 시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한민 표 '이순신 삼부작'의 완결편인 <노량: 죽음의 바다>
2024년 1월 12일. 오클랜드와이라우 로드 호이츠에서<노량> 영화를 봤다.
쉬는 날, 종일 집 밖 외벽에 하얀색 페인트칠을 하고서 선물로 받은 시간이었다.
일을 마칠 즈음 아내가 제안한 <노량> 한국 영화 관람에 흔쾌히 응했다
페인트 칠하던 장비를 정리하고 몸까지 샤워하고 저녁까지 먹고 나선 영화 관람이었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에 몸을 싣고 집을 나섰다. Hoyts 영화관에 도착해 표를 끊었다.
내친김에 Hoyts 영화 멤버쉽 카드까지 만들어 할인 서비스도 받게 되었다.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의 완결편인 <노량: 죽음의 바다>는 전편과 결이 달랐다.
<노량>은 1700만명의 극장 흥행 최고기록을 지닌 <명량>과 72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한산>을 잇는 후속편이었다.
<명량>(2014)의 이순신 역은 용맹스러운 장수를 보여줬다. 배우 최민식이 펄펄 끓는 연기로 그려냈다.
<한산: 용의 출현>(2022)의 이순신 이미지는 지혜로운 장수였다. 박해일이 연기했다.
<노량: 죽음의 바다>(2023년)의 이순신은 고독한 리더십이 빛난다. 현명한 장수였다. 김윤식이 내면묘사 정점을 찍었다.
<노량>은 집을 잃은 사람(조선 병사), 집에 가고픈 사람(명나라 병사), 집에 가야만 하는 사람(일본 병사)들의 혈투였다.
영화 전반의 내용은 조선을 침략한 왜군과 이를 함께 방어하고자 부른 명나라 군간의 치열한 심리전 육박전이다.
이 영화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일으킨 도요토미히데요시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조선에 주둔하던 왜군을 철군하라는 유언을 남기면서 시작한다.
여수반도 동쪽 순천왜성에서 명군에 포위돼 오도가도 못하던 고니시는 남강하구에 진을 치고 있던 사천왜성의 시마즈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시마즈는 주변 왜군들을 끌어 모아 500척의 선단으로 하동과 남해도를 잇는 좁은 물길인 노량으로 공격해 들어오면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이 영화에서 명나라 수군의 도독인 ‘진린’이 나온다. 진린은 실제로 이순신 장군을 명나라로 데려가고 싶어할 정도로 존경했다.
이순신 장군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노야’라고 호칭한 건 존경의 표시다. 처음엔 협조하다 중간에 마음이 바뀐다.
왜군 고니시 첩자가 수차례 명군 진린에 찾아가 포위 퇴로를 풀어줄 것을 부탁하며 많은 뇌물공세로 승락을 받아낸다.
끝까지 왜군을 섬멸하려는 이순신과 달리 적당히 왜군을 놓아보내주려는진린간의 대립이 고구마로 답답하게 한다.
이순신 장군이 해상 전투 중에 위기에 몰린 진린 제독을 구하게 충신 준사를 보내서 구해줬다. 준사는 아깝게 죽고 만다.
이순신 사망 후 진린은 시신을 수습하여 가묘를 만들고 통곡한다. 진린 손자가 나중 해남에 망명해 살게 되었다.
새카만 노량 먹빛 바다에 배 한 척이 송두리채 불타는 걸 신호로 조선 수군의 횃불 화살이 장대비처럼 왜선에 쏟아졌다.
1598년 11월 18일 밤 이순신의 예견대로 노량 바다를 왜선 500여척이 덮쳐왔다.
200여척의 조‧명 연합 수군이 지형과 바람 때를 맞춘 전술로 맞서며 아비규환의 장을 이어갔다.
3국 함선 간의 전투보다도 병사들의 시점에서 이어진 롱테이크 신이 인상적일 정도였다.
노량해전후 2만명이 죽고 왜선 300척이 초토화 되었다. 업데이트된 영화 촬영 기술이 돋보였다.
100분간에 이르는 치열한 대규모 해전을 물 없이 촬영했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평창 겨울올림픽 때 사용된 강릉 아이스링크에 실제 크기로 재현한 판옥선 등 선박세트를 지어서 촬영했다.
지난 10년 간 발전한 사전 애니메이션 작업의 수준이 한없이 빛나는 상상의 날개를 달아줬다.
시각특수효과(VFX)나 롱테이크 촬영 기법 그리고 조명 기술이 합세해 생생한 밤 전투 장면을 그려냈다.
달빛‧횃불에 의지한 밤 전투 장면을 그렇게 그려내기란 불가능 할텐데도생동감있게 보여줬다.
<한산>에서 안성기가 연기한 장수 어영담, 이순신 장군보다 어리지만 명석했던 전라우수사 이억기 등.
이순신 장군이 동 터오는 바다에서 앞서 전사한 캐릭터들을 극 중 다시 보는 환상 장면은 가슴을 전율케 했다.
명량대첩과 한산대첩은 모두 ‘대첩’이 붙는데 노량만은노량대첩이라고 부르진 않았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전사했기 때문에 크게 이겼다는 의미의 ‘대첩’을 붙이지 않는다고.
김한민 감독은 말했다.
"<명량>이 개봉했던 2014년은 세월호 참사,<한산> 때는 2022년 코로나라는 큰 재앙이 있어서.
한국 영화 위기를 부르기도 했는데 그 위기를 잘 이겨내면 좋겠다며 성실하게 만들었다"고.
"끝까지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지 않으면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는 이순신의 결연한 의지 말이 울린다.
2024년 여태껏 오랜 시절 대립을 이어온 한일관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유언이다.
<노량>은 또 다른 한국의 어려운 세상을 반전시킬 새로운 전환과 메시지가 필요한 시기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