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32;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 6장 3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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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32;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 6장 3절 )

일요시사 0 1218 0 0

3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그 양떼를 먹이는도다



성도들은 성부와 성자의 사랑 안에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출산하신 자녀들이다.


요한복음 6장은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시작해서, 거친 바다를 건너는 배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마무리된다. 서로 다른 이야기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은 한 가지 내용으로 요약이 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먼저 오병이어의 기적,,, 생명의 떡으로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만이 광야에 버려진 무리들을 살릴 수가 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예수를 왕으로 모시려 한다면, 당시 유대인들과 다를 게 없다. 주께서는 그들을 피하여 혼자 산으로 가셨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내용이 거친 바다를 건넌 이야기다.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만이 성도들이 거칠고 유혹이 넘치는 세상의 바다를 건너 목적지에 이르게 하신다. 


성부와 성자의 십자가의 사랑만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붙잡아줄 수 있으며, 우리의 궁극적 목적지인 영원한 영광의 나라로 인도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철저하게 아버지와 아들 중심이어야 한다. 


교회가 사람 중심이 될 때, 그 교회는 이미 세상이라는 바닷물에 침몰하는 배와도 같다. 교회에 세상의 인본주의적 사고와 물질주의, 배금주의 등의 세속주의가 밀려들어오게 될 때, 그 교회는 침몰할 수밖에 없다. 대형교회 세습과 같은 문제들,, 교회에 만연해 있는 기복주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놓치게 될 때, 아무리 크고 화려한 교회라고 할지라도,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와 다를 것이 없다. 배가 크다고 안전한 것이 아니다. 배가 아무리 작고 초라해 보일지라도, 철저하게 하나님과 예수님 중심으로 세워질 때, 그 배는 세상이라는 거친 바다를 안전하게 건널 수가 있는 것이다. 


술람미 여인은 3절에서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고 고백한다. 앞의 2장 16절에서는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다”고 고백했었다. 같은 내용인 것 같지만, 순서가 바뀌었다. 앞에서는 내가 중심이 되어, 내 사랑하는 자가 내게 속하였다는 말이 먼저 나왔었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방황 끝에 주님을 새롭게 만난 술람미 여인은 내가 주님에게 속하였다는 고백이 먼저 나오게 된 것이다. 이런 술람미 여인의 고백은 자기 중심의 신앙에서 주님 중심의 신앙으로 믿음이 성숙해졌음을 보여준다. 


내가 주께 속하였고, 하나님께 속하였습니다,,, 주만이 나의 주님이시고, 하나님만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아브람이 나이 80이 되도록 자식이 없어서 크게 낙담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환상 중에 하신 말씀이다. 상급이란 영어로는 reward, 보상금이란 뜻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가장 큰 보상이 되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가장 큰 보상이다,,, 

아브람은 늙어가고 자식은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하신다. 무슨 뜻일까?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상급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들처럼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현실적으로는 주신 것은 이삭 한 명뿐이었다. 100살이나 돼서 얻은 이삭이 아브라함이 얻은 모든 것이었다. 많아서 귀한 것이 아니라, 하나뿐이기에 더욱 귀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크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마음은 오직 이삭으로만 가득했다. 그렇게 십여 년이 지난 후에 갑자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내게 바치라고 하셨다. 그것도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다. 번제,, 불에 태워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물이다. 


이삭은 이미 아브라함의 모든 것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이삭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다. 차라리 자기를 바치라고 하시면 자신의 온 몸을 불태워 드릴 텐데,,, 아브라함은 절망에 빠졌다. 하나님, 제게서 이삭을 거두어가시렵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무리한 요구를 하셨을까?


아브라함이 의지하는 지팡이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눈 앞에 있는 이삭이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의 지극히 큰 상급은 이삭이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을 요구하심으로써, 아브라함의 지극히 큰 상급은 이삭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임을 알게 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 시련을 통해서 다시 하나님께서만이 자신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시지만, 아브라함에게 현세에 무수히 많은 자손을 주신 것도 아니고, 이삭만 의지하고 살라고 이삭을 주신 것도 아니었다. 나이 백 살이 되어서 얻은 이삭보다 지극히 큰 보상은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면서 얻는 가장 큰 상급은 무엇인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내가 이렇게 기도하고 고생하고 교회를 위해서 많은 헌신을 했는데,, 또는 열심히 살았는데,, 우리 앞에 나타나는 현실은 의외로 보잘것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자식이 없는 아브람처럼 크게 실망하게 된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기도하고 수고했는데, 제게 주시는 보상(상급)은 대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제게 주고자 하시는 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이것이 ‘주께서 내게 속하였고’의 신앙이다. ‘내가 주께 속하였고’의 신앙은 하나님만이 나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시는 신앙이다. 


하나님을 믿어서 세상적으로 크게 성공하는 것도, 교회가 크게 부흥하는 것도 진정한 상급은 아니다. 사람들은 교회의 일이든, 사회의 일이든 자기가 하는 일이 크게 잘 되었을 때, 이것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상급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이런 것들도 모두 감사할 일들임에는 분명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한 가지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요구하셨지만, 받지 않으셨다. 대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의 제물로 내주셨다. 


“내가 나를 너의 상급으로 주는데, 나보다 네게 더 큰 상급이 있느냐?” 주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물어보신다. 




채원병 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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