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77) 길을 만드시는 주 <이사야 43:16~21>
지금 세계적으로 많이 불리어지는 CCM중에 [Way maker]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외국 CCM가수들이 많이 부르기도 하였고, 근래에는 한국어로 번안되어서 많은 찬양사역자들이 집회 때마다 자주 부르고 있는 찬양입니다. 사실 이 찬양이 나온지는 벌써 4년이 넘었습니다. 이 곡을 만든 원곡자는 시나크라는 나이지리아 여성 CCM가수입니다. 그녀는 [Way maker]라는 곡을 작곡한 배경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곡을 만드는데, 성령께서 한국을 마음에 품으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을 마음에 품고, “길을 만드시는 주”라는 찬양을 만들었습니다. 남과 북으로 막혀진 길, 도저히 지날 수 없는 길이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길이 열려진다는 의미이죠. 이와 함께 찬양의 가사를 보면, 우리 삶에도 “비록 지금은 내 눈에 보이지 않고, 비록 지금은 내 삶에 느껴지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위해 길을 만들고 계신다.”라는 믿음의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의 말씀에서도 16절에 이렇게 선포합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 지름길을 내고.” 이어서 19절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길을 만드시는 주님! 바다 가운데는 길이 없습니다. 큰 물 가운데는 길이 없습니다. 광야에는 길이 없습니다. 사막에는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마음만 먹으시면, 바다 가운데도, 큰 물 가운데도, 광야에도, 사막에도 길을 여시는 분임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삶에도 길을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 이 시간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눌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열어주신 그 길을 걷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로, 영적인 길을 열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만드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살아있는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걸작품입니다. 본문 21절에도 말씀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을 위해 지음 받은 존재, 하나님을 향해 찬송하기 위해 지음 받은 존재임을 말씀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적인 길을 열어주시고, 바른 길을 걷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영적으로 바른 길을 걷기위해 필요한 게 무엇일까요? 늘 이야기하는 분별력입니다. 분별력은 뭔가 대단한 것, 심오한 것, 하늘에 있어 사람이 도달 할 수 없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붙잡을 것 잘 붙잡고, 멀리할 것 멀리하는 겁니다. 단순해요. 하나님의 말씀 붙잡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순종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이사야 선지자는 남유다의 선지자로서 북이스라엘이 멸망 당하기 직전부터 멸망 당한 후까지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따라서 이사야의 말씀을 보면 전반부는 이스라엘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망하게 될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어서 후반부에 가면 그럼에도 다시 회복시켜 주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럼 지금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제 이사야의 예언, 그리고 약 100여년이 지난 후에 남유다도 바벨론에 의해 패망의 길을 걷게 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영적으로 바른 길을 걷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적인 길을 열어주셨는데, 알려주셨는데, 보여주셨는데,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다른 길로 가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늘 영적으로 바른 길을 열어주십니다. 주일마다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그 시간을 통해서 매일 나에게 영적으로 바른 길을 알려주십니다. 어떤 분들 말씀하십니다. “목사님! 이상해요. 기도한대로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어요.” “목사님! 정말 이상하게 오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데, 설교 중에 답을 찾았어요.” 이상한 게 아니죠. 사모하는 자에게 임하는 당연한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적인 길을 내게 열어주신 것입니다.
우리 삶에 영적인 길이 열려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이미 영적인 길을 우리에게 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우리를 지도하십니다. 기도하는 중에 내 마음에 주시는 감동으로 그 길로 이끄십니다.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걷는 걸음, 우리의 걸음이 하나님을 향한 찬송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삶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내가 믿는 자로서 영적으로 바른 길을 걷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나의 삶의 길도 형통의 길로, 평안의 길로, 축복의 길로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 다시 말해 영적으로 바른 길을 걷는 것이죠. 그러면 이 모든 것,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삶의 모든 길도 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 삶의 길이 복되게 열려지는 것, 이 역시 어렵고 복잡한 게 아닙니다. 남유다에 요담이라는 왕이 있습니다. 역대하 27장 6절에 보면 요담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합니다. “요담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
따라서 우리가 삶 속에서 뭔가 잘 되길 원한다면, 우리 자녀손들의 앞길이 뭔가 형통하게 열려지길 원한다면, 일단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로 서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내 삶의 길도 열려지게 됨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전세계에 코로나로 인해 하늘길이 다 막혀버렸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빨리 저 하늘길이 좀 열려졌으면 좋겠다.”라고 말씀들을 하십니다. 그런데 가만히 묵상하는 중에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 저 하늘길이 열려지기에 앞서서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늘의 문이 열려져야 함이 아닌가?” 하늘의 문을 어떻게 열어갑니까? 기도하는 거죠. 우리의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어지면 그 때 하늘의 문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말씀합니다. 16절과 17절에 딱 연상되는 사건이 있죠. 홍해를 건너고, 애굽 군사들을 수장시킨 사건입니다. 하지만 곧바로 18절에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왜요? 19절입니다. “보라 내가 새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지금까지 베푸신 놀라운 은혜의 역사, 그 모든 것이 기억되지도 못할만한 더 큰 은혜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셨음을 말씀하십니다. 그 은혜의 역사가 20절 중반에 나오죠.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하나님께서 택한 자가 누구일까요? 더 크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자가 누구인가요? 이 자리에 함께 한 저와 여러분들인 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삶의 모든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담대함으로 걸어가면 되는 거예요.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믿음 가지고 나아갈 때에, 하늘의 문이 열려지고, 삶의 길이 열려지고, 형통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흔들림 없이 걸어가야 합니다.
이제 앞선 두 가지를 하나로 모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능력의 손으로 우리에게 영적인 길을 열어주십니다. 삶의 길도 열어주십니다.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다면, 이제 그 길을 걷는 것은 나의 몫입니다. 어떻게 걸어야 하나요? 흔들림 없이. 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영적 분별력을 허락하시고, 지혜를 주셔서, 주님 열어주신 그 길을 잘 걸어가게 됩니다. 세상적인 말들이나 자랑만 가까이 하는 습관을 가지면, 주님 열어주신 은혜의 길을 발견하지도 못하고 헛된 길로 걸어가게 됩니다.
뭔가 하나 큰 일을 완성했다고 끝나는 일회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어제까지 열심히 기도했지만, 오늘도 열심히 기도하고, 오늘도 열심히 사명 감당하였지만, 내일도 또 새로운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람의 습성은 자꾸만 제자리로 오려고 하거든요. 좋은 습관을 가지고 운동을 시작해도 어느 순간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마음 먹고 다이어트 했는데, 어느 순간 몸도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럼 영적인 것은 어떻겠습니까? 신앙의 삶은 어떻겠습니까?
믿음의 걸음은 마지막 순간까지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유명한 설교가인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구원 받았다. 나는 구원 받고 있다. 나는 구원 받을 것이다.” 구원의 역사를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과거에, 현재에, 미래에도, 변함없이 계속해서 내 삶에 이루어질 사건으로 선언합니다. 믿음의 뿌리를 견고히 내리고, 끝까지 흔들림 없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