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23 ; 헤르몬 꼭대기에서 내려오너라 ( 4장 7-8절 )
7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8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너라
사람은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을 때 기쁘고,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때 행복해진다. 서로 사랑을 주고 받고, 사랑에 푹 빠지면 어떤가? 눈을 떠도 감아도 그 사람 얼굴이 떠오르고, 마음 안에는 오직 그 사람 생각으로만 가득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혼자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경우도 있다. 짝 사랑이다. 상대방이 아무리 차갑고 쌀쌀맞게 대해도 아랑곳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주는 사랑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다. 일방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다 내주신 사랑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주시고, 원수 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다(롬 5:10) 그 사랑은 아무 근거도 없고, 조건도 없는 일방적인 사랑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런 사랑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기 보다는 자기자신을 더 사랑하며 살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변함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바라보신다.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하시면서 말이다(7절).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이렇게 보신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흠 하나 없이 온전히 아름답다고 하시며 사랑하신다. 여기에서 ‘어여쁘다’라는 말은 ‘아름답다’라는 뜻도 있고, ‘맑다, 깨끗하다’라는 뜻도 있다.
외모는 그럴 듯하게 곧잘 생겼는데, 왠지 추해 보이는 사람이 있고, 딱히 잘 생겼다는 느낌은 없는데, 풍기는 인상이 맑고 깨끗한 사람이 있다. 마음도 온유하고 친절하고, 남을 위해서 자기희생도 할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 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한다.
예수님 나오는 영화를 보면 한결같이 키 크고 잘 생기고 멋있는 배우들이 예수님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런데 정말로 그렇게 멋있게 생기셨을까?
이사야 53장 2절은 예수님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는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마른 땅에 튀어나온 나무뿌리처럼 볼 품이 없으셨다. 육신으로는 자랑할 만한 것도 없고, 사랑할만한 아름다움도 없으셨다. 그러나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우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못나고 낮은 자들을 찾아오신 분이시다. 가장 낮은 자가 되셔서 세상의 못나고 비천한 자들의 친구가 되시고, 구원의 주가 되셨다.
어느 추운 눈 내리는 겨울 밤이었다. 불을 끄고 막 잠을 청하려고 침대에 누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귀찮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찾아온 사람을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불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자, 문 앞에는 험상궂은 나병환자가 추워서 벌벌 떨며 서있었다. 프란체스코는 나병환자의 흉측한 얼굴을 보고 섬찟했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중하게 물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죄송하지만 너무 추워 온 몸이 꽁꽁 얼어 죽게 생겼네요. 몸 좀 녹이고 가게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병환자는 애처롭게 간청을 했다. 마음으로는 당장 안 된다고 거절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마지못해 머리와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주고 안으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자 살이 썩는 고름으로 심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그래도 참고 물었다.
“어떻게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니요. 벌써 사흘째 굶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식당에서 자신의 아침식사로 준비해 두었던 빵과 우유를 가져다 주었다. 나병 환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빵과 우유를 게걸스럽게 다 먹어 치웠다. 프란체스코는 식사 후 몸이 좀 녹았으니 나가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나병 환자는 가기는커녕 기침을 콜록이며, 오히려 이렇게 부탁을 했다.
“성도님, 지금 밖에 눈이 많이 내리고 날이 추워 도저히 가기 어려울 것 같네요. 하룻밤만 좀 재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할 수 없지요. 누추하기는 하지만, 그럼 여기 침대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가시지요.”
프란체스코는 염치가 없는 나병환자에게 울화가 치밀어오는 것을 꾹 참았다. 사실 혼자 살고 있어서, 침대도 일인용 하나밖에 없었다. 침대를 나병환자에게 양보한 그는 바닥에 자려고 누웠다.
밤이 깊어지자 나병 환자는 또 다시 엉뚱한 부탁을 해 왔다. “성도님, 제가 몸이 얼어서 너무 추워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네요. 미안하지만 성도님의 체온으로 제 몸을 좀 녹여주시면 안되겠습니까?”
프란체스코는 어처구니없는 나병환자의 요구에 당장 밖으로 내 쫓아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신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며 꾹 참고 그의 요구를 들어 주었다.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문둥병환자를 꼭 안고 침대에 누웠다.
온 몸에 고름이 나서 고약한 냄새까지 나는 문둥병환자와 몸을 밀착시켜 자기 체온으로 녹여주며 잠을 청했다.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꿈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갔다. 그런데 꿈속에서 주님께서 기쁘게 웃고 계셨다.
주님께서는 죄로 썩고 뭉그러져 악취가 진동하는 우리를 당신의 온 몸으로 감싸주시고, 당신의 피로 씻어주셨다. 그리고 우리 보고, 온 몸이 깨끗하고 흠 없고 아름답다고 말씀하신다.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너라”(8절)
아마나와 스닐은 헤르몬 산의 봉우리들 이름이다. 산은 교만의 자리요, 자기가 왕이 되어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서 사는 곳이다. 그 산은 세상에 속한 자들이 사는 곳이다. 이제 네가 전에 살던 세상, 너의 산에서 내려오라는 주님의 사랑의 음성이다.
“나의 사랑아, 너는 나의 사랑의 피로 흠 없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나의 신부가 되지 않았느냐? 이제는 너의 산에서 내려와야 하지 않겠느냐? 옛날 모습 그대로 살아서야 어찌 나의 신부라 할 수 있겠느냐? 나와 함께 가자꾸나. 나의 사랑하는 자, 나의 신부야, 너는 순전하여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채원병 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