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92); 감 사 <시편 138:1~8>
오늘 본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1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고백이 출발입니다. 그런데 정작 다윗의 삶을 생각해 볼 때, 다윗이 정말 감사할만한 삶을 살았다고 보십니까? 다윗만큼 드라마틱하고 대단한 삶을 살았다고 할 만한 이도 없습니다. 저기 들에서 양을 치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선 신앙인으로서의 다윗의 모습도 보십시오. 그의 믿음, 기도하는 삶,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고 인정 받을만한 그의 삶은 참으로 모든 믿는 자의 귀감이 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한 편 다윗의 삶은 엄청난 고난의 연속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왜 오늘날 가장 위대한 믿음의 인물을 꼽으라고 하면 주저 없이 다윗을 떠올리게 될까요? 다윗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삶은 부러워할만한 부분도 있겠지만, 수많은 시간들이 전쟁과 갈등, 고난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변함없이 고백합니다.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다윗은 감사의 상황에, 또한 감사할 수 없는 상황일지라도, 언제나 주를 향해 감사의 고백을 올려드렸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인정 받는 믿음의 인물이 된 것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 한 해 동안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교회 창립 25주년 기념주일, 지난 25년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혹 그 안에는 감사할 일도 있고, 때론 감사하기 어려운 현실이 있었을지라도, 다윗처럼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감사의 고백을 올려드릴 때에, 우리 주님께서 더 복된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실 줄 믿습니다. 이 시간 함께 주님께 드릴 감사의 고백을 생각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부르심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최고의 감사가 어디 있을까요? 지금 이 자리에 있음이 감사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다들 고향도 다릅니다.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방식도 다릅니다. 신앙의 연수도 다르고, 믿음의 분량도 다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더군다나 이 곳 뉴질랜드까지 와서 함께 한 교회를 섬기고,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오늘 2절에도 보면 다윗이 고백합니다.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1절에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린 다윗은 이어서 감사의 제목을 먼저 고백하는데, 예배할 수 있게 하심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이 가장 기뻐할 때가 언제였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모셔 올 때에 가장 기뻐합니다. 그렇기에 4절에도 보면 “여호와여 세상의 모든 왕들이 주께 감사할 것은 그들이 주의 입의 말씀을 들음이오며.”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이 최고의 감사거리임을 고백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주셔야 가능한거죠.
우리 의지로, 우리 힘으로 이 곳 주의 전에 나왔나요? 그렇죠. 내가 운전해서 왔죠. 내 다리로 걸어서 왔죠. 하지만 그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주님 전에 나와 우리가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불러주신 하나님 은혜, 나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그 은혜, 나를 부르시사 예배의 자리마다 내 걸음이 있게 하시고,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도록 내 마음과 상황과 여건과 모든 형편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 우리 삶에 최고의 감사거리는 지금 이 자리입니다. “부르심의 은혜” 부르심의 은혜에 늘 감사하는 삶을 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응답하심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똑같습니다. 이미 가진 것은 보지 못하고, 아직 없는 것에만 집중하곤 합니다. 이미 내가 누린 것보다 앞으로 누릴 것만 풍성하길 원하곤 합니다. 지난 날 응답하시고, 베푸신 은혜는 잊어버리고, 지금 당장 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 때문에 실망하곤 합니다. 이게 당연한 우리의 모습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믿음을 가진 자라면 생각을 바꿔볼 수 있어야 합니다. 3절에 말씀합니다.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 실망되고, 낙심되면, 이 말씀을 거꾸로 한 번 보세요. “나를 강하게 하셨습니다. 내 영혼에 힘을 주셨습니다. 그 힘을 의지하여 내가 간구하오니, 그 날에 주께서 응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
기도하십시오.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저도 계속 응답될 때까지, 뿌리가 뽑힐 때까지 중보하며 기도하겠습니다. 목사가 왜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지 대답은 못합니다. 목사가 왜 응답이 더딘지 이유는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약속드리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끝까지 기도하겠습니다. 함께 눈물 흘리며, 함께 탄원하며 끝까지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6절에도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 살피시며.” “낮은 자” 그게 나입니다. 낮은 자, 낙심한 자, 연약한 자, 기도 응답이 더딘 것 같아 실망해 주저앉은 나를 굽어 살피신다고 말씀합니다. 끊임없이 낙심치 말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응답하심의 은혜를 반드시, 꼭, 결단코, 기필코, 빨리, 누리시고 감사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인도하심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주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그럼 부름 받은 우리들을 그냥 내버려두시겠습니까? 우리를 부르시고, “너 저기 가서 알아서 잘 살아봐.” 그러실까요? 절대로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앞으로의 모든 삶 속에 우리의 인도자가 되어 주실 줄 믿습니다.
7절에 다윗이 고백합니다. “내가 환란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 삶의 어려움 중에도 나를 붙잡아 주시고, 수많은 대적의 문제가 있을지라도 건져주실 것임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죠. 다윗의 삶.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입니다. 시편 23편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는 말이 멋진 시적 언어로 만들어낸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다윗의 일생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삶이었습니다. 사울에게 쫓기면서 다윗이 요나단에게 말하죠. “나와 죽음과는 한 걸음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럼 왕이 되었을 때는 괜찮던가요? 아들의 칼을 피해 쫓겨 다닙니다. 맨발로 울면서 피난의 길에 서기도 합니다. 수많은 배신과 갈등의 상처를 경험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오늘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보호해주시고, 주의 오른손으로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지금의 현실을 넘어선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 여러분! 오늘 감사의 절기인데, 엊그제부터 코로나 관련 새로운 소식으로 인해 다들 마음이 철렁하였습니다. 때로는 내게 주어진 문제, 해결되지 않는 어려움으로 인해서 감사고 뭐고 다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과 문제가 있을지라도 그 속에서 감사의 고백을 올려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다윗에게는 현실을 뛰어넘는 감사의 고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가 다윗의 삶을 이끌어가는 가장 큰 영적 에너지가 되었습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현실, 그 안에서 감사의 제목이 있다면, 정말 힘을 다해 주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혹 감사보다는 답답함과 원망이 있을지라도, 지난 날의 감사의 삶을 돌아보고, 내일의 감사를 기대함으로 소망 중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내 믿음의 결단입니다. 언제나 감사의 삶을 살아갈 때에, 날마다 감사가 끊이지 않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