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22;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 4장 6-7절 )
6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내가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7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사람들은 자기가 속해 있는 나라를 위해서 산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자신의 것보다 하나님의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는 세상 것보다 하나님 나라의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주님께서는 마 6:19-21에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고 하셨다. 자신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하늘의 것이냐, 땅의 것이냐 하는 문제다. 가치관이 하나님 중심이고, 하나님 나라 중심이냐, 아니면, 자기 중심이고, 세상 나라 중심이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지 않는 기독교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땅의 것보다 하늘의 것, 자신의 것보다 하나님의 것을 귀하게 여기며 사는 기독교인도 별로 없어 보인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하나님의 보살피심과 도우심 안에서 살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더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엇이 문제인가? 마음중심이 세상과 자신을 향하여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 열심히 다닌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교회를 다녀도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이 세상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 너무 많지 않은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 다 훌륭한 인격자가 되고,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하나님의 자녀라면 자기가 어디에 속한 자인가에 대한 자기정체성은 분명히 서 있어야 한다.
술람미 여인은 6절에,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내가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고 하였다.
내가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동방의 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예물로 드리기 위해, 몰약을 가져 왔다(마 2:11).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로마의 병사들은 몰약을 탄 포도주를 마시게 하려 했고(막 15:23), 니고데모는 주님의 장례를 위하여 많은 양의 몰약과 침향을 가져왔다(요 19:39).
유대인들은 시체에 몰약과 향기 높은 향료를 놓음으로써 시체를 보존하고, 이것이 부활의 필수 요건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그들의 생각은 틀린 것이다. 부활은 죽은 시체가 그대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죽지 않고 영원히 썩지 않는 영광의 몸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죄와 형벌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셨고, 우리에게 영광의 부활과 영생이 있음을 확증하시기 위해 다시 사셨다.
몰약과 유향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은 십자가의 자리를 의미한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가야 할 자리는 십자가의 자리다.
십자가의 자리에 나가지 않고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바르게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도 실제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삶을 살기가 참으로 어렵다. 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순종의 삶을 살지 못한다.
왜 그럴까? 하나님의 나라를 가로막고 있는 강력한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사탄, 마귀? 아니다. 이보다 더 강력한 세력이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죄 된 본성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우리의 죄성은 여전히 살아서 우리를 지배하려 한다.
우리의 죄성은 여전히 자기 삶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자기 몸도, 자기 인생도, 자기 재산도 모두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여전히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살고, 세상욕심으로 가득하게 하고, 시기, 질투, 분냄과 분쟁이 있게 하고, 교만하게 하며, 자기의 의로움을 자랑하게 하고, 세상의 영광을 구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장벽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장벽이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아낙 자손인 거인들이 가로막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민 13:33).
하나님의 자녀들이 십자가의 자리로 나가야 하는 이유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을 만나기 위함이며, 주님과 함께 자신이 못 박히기 위함이다.
눅 9:23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인간의 모든 욕심과 욕망과 죄악은 자기 자신 안에 있다.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의 자리에 나아가,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려는 자신을 못 박아야 한다. 내 안에서 수시로 고개를 드는 온갖 욕심들을 못 박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온갖 죄 된 마음들을 못 박아야 한다. 시기와 질투와 분냄을 못박고, 교만을 못박아야 한다. 자기 자랑과 자기 의와 자기 공로를 못박아야 한다.
내가 죽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께 순종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만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의 모든 것이 되는 나라다.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살아서 실제로 역사하시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부르짖으시며,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부인 당하셨다. 단순히 우리의 죄를 뒤집어쓰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죄가 주님께로 넘어간 것이다. 주님께서는 단지 죄인으로 모함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다. 우리 죄인들의 모든 죄를 실제로 감당하시며, 하늘 아버지로부터 버림 당하신 것이다.
이것이 자기부인이다. 십자가는 ‘나’라는 존재가 철저하게 부인 당하는 자리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영광, 땅의 영광, 육신의 영광, 세상의 영광을 위해 사는가,,,, 자기 자신이 먼저 부인되지 않고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를 수 없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스스로에게 속한 자는 자신의 영광을 구한다. 하늘에 속한 자는 하늘의 영광을 구하고, 땅에 속한 자는 땅의 영광을 구한다.
날마다 십자가의 자리에 나가자. 그 자리에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아무리 검을지라도 아름답다 하신다.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7절)
채원병 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