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43;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지니라 ( 8장 1-4절 )
1 네가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더라면,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
2 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머니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게 하겠고
3 너는 왼 팔로는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 손으로는 나를 안았으리라
4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지니라
미국 프로농구인 NBA에 캐빈 듀란트라는 선수가 있다. 이 선수가 2013-2014년도에 미국 NBA 농구 MVP로 뽑힌 후에 가진 소감발표가 아주 강동적이다. 그의 어머니는 21살에 캐빈과 동생을 둔 흑인여성으로서 미혼모였다. 미혼모에 가진 돈도 없었다. 자식들이 길거리의 부랑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머니는 온 몸을 다 바쳐 두 아들을 키웠다. 자신은 못 입어도 아이들은 입혔고, 자신은 굶으면서도 “나는 먹었으니 너희나 배부르게 먹어” 하면서 자식들은 굶기지 않았다. 캐빈은 먹으면서도 어머니는 굶으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속으로 울면서 빵을 먹었다고 한다. 캐빈은 단순히 빵을 먹은 것이 아니다. 눈물 젖은 빵과 함께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을 먹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란 캐빈은 뛰어난 농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죽어라 운동을 했다. 그리고 결국 세계 최고의 농구선수에게 주는 미국 NBA의 최우수선수가 되었다. 캐빈은 이러한 자신의 자라온 과정을 눈물을 흘리며 말한 후에, 진정한 MVP는 자기가 아니라, 자기 어머니라고 말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적시며 자리에서 일어나, 감동 어린 박수를 보내주었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과 꿈이 캐빈 듀란트를 최고의 농구선수로 키운 것이다.
이것이 사랑의 힘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가? 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사랑이다. 캐빈의 어머니의 사랑은 자기 자식을 향한 사랑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원수 된 자들을 자기 자식으로 삼기 위한 사랑이다. 원수 된 자들을 사랑하셔서, 자신의 외아들을 십자가에 죽이시면서 원수관계를 청산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들로 받아주신 사랑이다.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가 무엇이기에 그토록 사랑하시고, 돌보신단 말인가? 이유는 오직 하나,,,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이유도 없고, 조건도 없다. 왕이 시골의 거무튀튀한 시골여자 술람미를 사랑한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시는 외아들을 십자가의 죽음에 자리에 내주시는 그 사랑으로 택하신 자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사랑이 우리를 강하게 한다.
캐빈은 훌륭한 농구선수가 되겠다는 꿈과 어머니의 사랑이 있었기에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꿈을 키워나갈 수가 있었다. 꿈과 사랑이 있는 사람은 결코 좌절하거나, 어려운 현실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다.
대학 다닐 때 아내와 결혼을 했다. 20대 중반에 했으니, 좀 일찍 한 편이다. 양 쪽 집안이 여유 있는 형편도 아니었고, 학생 때 결혼을 했으니 경제적으로 많이 쪼들렸다. 처음에는 정말 손바닥 만한 단칸방에서 살았는데, 방이 너무 작아서 한 쪽으로 똑바로 다리를 펴고 눕기도 힘들 정도였다. 한 집에 여러 가구가 살다 보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화장실 한 개로 여러 가구가 함께 사용하다 보니 화장실 사용이 특히 불편했다. 부엌이란 건 아예 없고, 함께 쓰는 마당이 부엌이고, 빨래터고, 세면장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의사 부부가 되면 잘 살 게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 확실한 꿈과 사랑이 있었기에 힘들지만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러다 13평짜리 연탄보일러 아파트를 전세 얻어 이사했을 때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방이 두 개에다, 전용 화장실에, 작지만 마루도 있고 부엌도 있었다. 궁궐에라도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후로는 아무리 크고 좋은 집에 살아도, 그때의 기쁨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미래에 대한 꿈이 있고 사랑이 있는 사람은 좌절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하늘의 영광된 나라라는 소망이 있다. 그 사랑은 자기 아들의 피 흘림으로 이루신 사랑이고, 그 소망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이다.
로마서 8장 24절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영광의 그날에 대한 소망이 영혼의 닻이 되어 우리를 굳게 붙잡아준다(히 6:19). 그리고,, 그 꿈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 꿈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너무나 확실한 꿈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늘의 본향을 사모하며, 이 땅에서는 나그네처럼 살 수가 있는 것이다. 헌데,, 보이지 않는 소망은 보지 못하고, 세상의 보이는 소망이 전부인 양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그러나 성경은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라고 말한다.
1-3절에서 술람미 여자는 마음껏 사랑을 나눌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한다. 자신의 비천한 신분이 왕과의 자유로운 만남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왕이 차라리 오라비라면 어머니의 집에 마음껏 들이고 사랑을 나날 수 있을 텐데,, 예루살렘의 화려한 왕궁보다 시골 어머니 집에서 자유로운 사랑을 나누길 원하고 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의 소망은 화려한 왕궁에 있지 않다. 보이는 세상의 영광이 그들의 소망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주님과의 은밀한 사랑을 원한다. 둘만의 깊고 은밀한 시간을 원한다.
술람미 여자는 4절에서 내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라고 말한다. 주님과의 깊은 사랑을 흔들고 방해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영광의 그날에 대한 꿈을 품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주님께서는 요 15장 9절에서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셨다.
요 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한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살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여기에서 ‘거하라’는 말의 뜻을 알면 이 말씀의 의미가 더 새롭게 다가오게 된다. 헬라어 원 뜻은 ‘굳게 서다, 계속 머무르다, 계속 살다’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 사랑 안에 거하라고 하신 말씀은 내 사랑 안에 굳게 서고, 계속 내 사랑 안에 머물며, 내 사랑에서 떠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데 ‘거하라’는 동사가 문법적으로 보면 과거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 헬라어에서 과거동사가 현재의 일에 쓰일 때는 변할 수 없는 확정적 사실을 뜻한다. 너희는 이제 내 사랑 안에서 사는 것이 확정적 사실이라는 뜻이다. 주님의 사랑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주님의 사랑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는 자들,, 주님의 사랑 안에서만 비로소 삶의 의미가 있고, 그 삶에 소망이 있는 자들,,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다.
채원병 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