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50) 주의 날을 바라보는 자 <마태복음 10:24~33>
본문의 말씀은 복음 전도자로서 핍박과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다는 그 말씀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너희들의 선생된 나도 핍박을 당할 것이다. 내 제자로서 너희들도 똑같은 핍박과 모욕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두려워할 것은 없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 가지고 너희들이 세상 속에서 계속해서 나의 십자가 복음을 증거한다면, 마지막 때에 내가 하나님 앞에서 너희들의 증인이 되어주겠다.”사명을 주시는 말씀이죠. 하지만 본문 10장의 말씀은 지금 당장 제자들이 실행해야 할 사명은 아니었습니다.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자로서, 오늘 제목과 같이 “주의 날을 바라보는 자”로서 제자들이 행해야 할 일입니다.이러한 예수님의 뜻에 따라,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제자들은 비로소 그 때, 오늘 주신 예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이 시간 함께 예배하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사명이 주어져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우리는 ‘이미와 아직’ 사이를 살아가는 자입니다. 이미 이천여년전에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로서, 아직 이 땅에 실현되지 않은 주의 날을 바라보는 자입니다. 바라볼 뿐만 아니라, 그날이 우리에게 실현되기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주의 날을 바라보는 중에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 속에서 믿음을 가진 자로서, 주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때로는 힘겹고 어려운 과정이 있을지라도, 주의 날을 바라보며,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 오늘도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그 길을 걸어가야 하는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의 열정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전도에 모든 것을 걸었던 인물이 바울입니다. 마태복음 24장 14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바울은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붙잡고, 복음의 사명을 감당합니다.오늘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향해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주의 날을 바라보는 자로서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막연한 미래에 임할 주의 날, “언젠가 오시겠지?” 이게 아니라, 네 손으로, 네가 가진 복음의 열정으로 주의 날을 이루어가라는 것입니다.
제 학창시절에 있어서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한 분 계십니다. 초등학교 4학년과 5학년 때 2년 연속 담임이셨던 오장석선생님입니다. 저는 그전까지는 공부라는 걸 몰랐습니다. 저나 다른 친구나 부모님도 다 비슷했습니다.그런데 이 선생님이 부임하시고, 반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학교 전체에 새바람이 불 정도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하루는 수업시간에 노래를 배웠습니다.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노래 마지막 가사가 이렇습니다.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그런데 선생님이 갑자기 가사가 잘못 되었다는 거예요. 가사를 이렇게 바꿔야 한다는 겁니다. “통일이여 어서 오게 하라 통일이여 오게 하라.”“오게 하라.” 그런 열정을 가진 선생님 한 분이 부임하니까, 교실 분위기가 달라집니다.집으로, 들로 산으로, 논으로 밭으로 다니면서 아이들을 공부를 시킵니다. 성적이 안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신앙의 모습, 복음의 열정도 이와 같습니다. 말로만 되지 않습니다. 행동하는 모습, 내 실제적인 삶의 모습이 필요합니다.그게뭔가요?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입니다.28절에 말씀하십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사람들의 비난, 시선, 조롱, 사탄 마귀의 영적인 공격을 두려워하여 숨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내가 바로 서는 것에 먼저 집중하라는 것입니다.벵겔이라는 신학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 외에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을 두려워한다.”하나님 앞에 바로 서시기 바랍니다. 말씀의 거울에 나 자신을 비춰보고, 늘 깨어 기도함으로 내 신앙을 점검하고, 내 말과 행동과 표정과 삶의 모습을 통해 믿는 자로서의 증거를 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 세상에서도 칭찬 받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나 자신의 존귀함을 알아야 합니다.
심리학자 케이치프노이드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여섯 가지 감옥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감옥은 ‘자기도취의 감옥’입니다. 일명 ‘나르시스즘’이라고 합니다. 둘째 감옥은 ‘비판의 감옥’입니다.셋째 감옥은 ‘절망의 감옥’입니다.넷째 감옥은 ‘과거지향의 감옥’입니다.다섯째 감옥은 ‘선망의 감옥’입니다.마지막 여섯째 감옥은 ‘질투의 감옥’입니다.사람들이 왜 이런 감옥에 갇히는 걸까요? 여러 가지 상황과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 중에 하나는 자존감이 빈약하기 때문입니다.자존감이 빈약한 사람이 자존심을 강하게 내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적인 정체성을 가진 자들입니다.따라서 그에 따른 자존감,정체성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예수 믿는 자다,나는 하나님의 자녀다,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 존귀함을 가져야 합니다.보통 일반사람의 머리털 수가 약 10만개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루에 80내지 100가닥의 머리카락이 빠진다고 합니다. 저도 근래 미용실을 가면, 미용사분들이 아주 조심스럽게 말씀을 하십니다. “목사님! 이 가운데 머리카락이, 아직은 괜찮은데 조금 가늘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관리를 좀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머리숱에 있어서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이제 저도 자신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그래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내 머리카락 숫자가 줄어도, 내 얼굴에 주름이 늘어나도, 내 기억력이 자꾸 자꾸 사라져도, 모든 것에 있어서 좋아지는 것보다 나빠지는 것이 점점 많아질지라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그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그렇기에 우리는 오늘도 당당하게 주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합니다. 내 삶의 앞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내 모든 삶의 필요를 채우실 주의 은혜를 기대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당당함을 가지고 존귀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주의 날을 바라보는 자, 나 자신의 존귀함을 알아야 합니다. 주의 날에 임할 하나님나라에 내 자리가 예비되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으면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악한 사탄 마귀의 권세 물리치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적인 정체성을 굳건히 세우고, 믿음의 자존감도 잘 세우고, 존귀한 주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담대함으로 주의 자녀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두 번째에서 말씀드렸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영적인 자존감을 가지고 담대하게 살아가라.” 이 말씀은 내 내면적인, 즉 마음가짐에 관한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고 한다면, 마지막 세 번째에서 말씀드리는 것은 내 삶의 외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어떤 목사님이 설교 중에 전한 경험담입니다. 하루는 목사님이 집사님 가정에 심방을 갔습니다.목사님! 저 앞집 사람이 제가 교회 다니는 걸 알면 안됩니다.” 왜 그런가? 물었더니, 아마도 집이 바로 앞뒤로 붙어 있다보니까, 여러 갈등이 좀 있었던 모양이예요.그러면서 이 집사님이 “내가 저 앞집 아주 본때를 보여줘야 하니까, 내가 교회 다니는 것을 알아서는 안됩니다.”
오늘 오후에 신천임원교육이 있습니다. 제가 신천임원교육을 할 때마다 항상 기억이 나는 말이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교회에서 신천집사로 교육 받으실 때 집사님이 하신 말씀이예요. “목사님! 이제 집사가 된다고 하니까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그럼요. 무거워져야 합니다.”직분이 주는 무게감을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낮은 자리에서 섬길 수 있게 됩니다.교회의 직분은 올라가는 자리가 아니라, 도리어 내려가는 자리입니다. 섬김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더 섬겨야 하는 자리입니다.주의 날을 바라보는 자는 담대함으로 주의 자녀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목사님! 내가 예수 믿는 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말아 주십시오.” 마치 “나의 죽음을 적들에게 알리지 말라.”는 노량해전의 이순신장군의 말처럼 “나의 예수 믿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 그런 신앙의 모습을 가지면 안됩니다.오늘 말씀에서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한다” 이는 론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 믿는 것으로 인해,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인해 핍박을 당하고 모욕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는 환경 속에서도, 심지어 복음 전하다가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 올지라도, 숨기지 말고 당당하게 믿는 자로서의 모습을 보이라는 것입니다.그러할 때에, 예수님께서 주의 날이 임하는 그 날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위해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물론 이를 위해서 양보가 필요하죠. 참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믿는 자로서 포기해야 할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결국에는 나의 축복으로, 하늘의 상급으로 맺혀지게 됩니다. 주의 날을 바라보는 자로서, 오늘의 삶 속에 담대함으로, 떳떳함으로, 당당함으로, 주의 자녀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