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84) 풍랑은 지나가지만, 예수님은 나와 함께 계십니다. <마태복음 14:25~33>
가나안의 입구인 가데스바네아에서 출발한 열 두 명의 정탐꾼의 모습을 보면, 열 명의 정탐꾼은 말합니다. “우리는 저 땅을 차지할 수 없다. 저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다. 또한 저 땅에 거하는 백성들은 거인족들이라 그 앞에서 우리는 마치 메뚜기와 같아 보였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저 땅을 차지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똑같은 땅을 바라보았고, 똑같이 거인족을 바라보았습니다. 똑같은 현실입니다. 그런데 현실에 대한 태도가 다릅니다. 한 무리는 자신들을 향해 “메뚜기”의 정체성을 가지고, 주저 앉아 울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믿음의 정체성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저들은 똑같은 현실에서 각각 다른 반응을 보이고, 다른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도 보면, 제자들이 풍랑의 문제를 만났습니다. 그럼 주어진 이 풍랑이라는 현실 속에서, 제자들은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까? 우리 삶의 풍랑과도 같은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왔습니까? 우리가 믿는 자라고 한다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겠습니까? 이에 대한 답이 오늘 말씀의 제목입니다. “풍랑은 지나가지만, 예수님은 나와 함께 계십니다.” 풍랑의 현실 속에 예수님의 함께하심을 향한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주의 은혜가 우리 삶에 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로, 두려움을 평안으로 바꿔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배를 타고 갈릴리바다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예수님 자신은 따로 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십니다. 그러는 중에 제자들이 탄 배는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풍랑중에 고생하며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밤 사경에, 즉 새벽 3시가 넘어가는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이 탄 배 앞에까지 도착하셨습니다. 제자들은 풍랑 때문에 기진했고, 사람의 형상을 가진 누군가가 바다 위를 걸어오기에, 유령인줄 알고 무서워하며 소리를 지릅니다. 그 때 이런 음성이 들립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이후에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쳐 잔잔해집니다. 두려움 가운데 빠졌던 제자들에게 평안함이 임합니다. 이 말씀과 함께 풍랑은 지나가고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도 이러한 예수님 주시는 평안의 메시지가 들려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평안의 소식보다 두려움의 소식이 많습니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온통 풍랑의 소리와도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제자들은 풍랑을 만나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풍랑은 제자들을 두렵게 하였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에게 평안함을 주십니다. 풍랑은 제자들의 배를 위험에 빠지게 할만큼 바람과 바다를 요동치게 만들었지만, 예수님의 함께하심은 모든 자연까지도 잔잔하게 만드십니다. 함께하심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재촉하여 바다를 건너게 하셨고, 예수님께서는 산에 올라 홀로 기도하셨지만, 그 순간 예수님의 마음은 제자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시대 죄악의 풍랑에 갇힌 우리들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 풍랑 속에서 두려워하는 우리들을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삶의 바다를 걸어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 순간 우리들을 힘겹게 하는 삶의 풍랑은 사라지고, 예수님의 함께하심의 은혜가 체험되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실 때, 세상의 모든 풍랑은 사라지고, 우리는 흔들림 없는 평안함 가운데 거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두려움을 넘어 주의 평안함 안에 거하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의 연약함까지도 품어주십니다.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죠.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말라.” 그 말씀을 듣자마자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다시 말해 “예수님! 나도 물 위를 걸어보고 싶습니다.” 베드로는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반응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생각한 그대로를 말하고, 실행에 옮기는 사람입니다. 지금 현실적으로 보면, 일단 풍랑을 피해야 하잖아요. 일단 예수님을 배 위로 모시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야 하잖아요. 하지만 베드로는 그 풍랑 중에 말합니다. “나도 물 위를 걷고 싶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즉시 대답하십니다. “오라!”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함으로 정말 물 위를 걸어갑니다. 지금 아직 풍랑이 잔잔해진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정말 바다 위를 걸어갑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갔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아갈 때는 바다 위를 걸었는데, 바람을 보는 순간에, 무서운 마음이 드는 순간에, 물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님께 소리를 지릅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예수님은 즉시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잡으시며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자, 보세요. 여러분들 중에 베드로의 믿음이 작다고 할 수 있는 분 계신가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잠시동안이지만, 풍랑이 일렁이는 바다 위를 걸었습니다. 이게 얼마나 엄청난 믿음입니까?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이 안에서 어떤 마음이 느껴지시나요? 예수님께서 지금 베드로를 향해 꾸짖으시는걸까요? 예수님께서는 안타까움으로 베드로를 향해 말씀하시는 겁니다. “베드로야! 내가 너를 게바, 반석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반석처럼 굳건한 믿음을 가져야 할 터인데, 왜 여전히 그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연약함을 안타까움으로 품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베드로가 바람을 보며 두려움으로 물에 빠진 것에 주목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물에 빠진 베드로를 향해 손을 내미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연약함까지 품어 안으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는 늘 똑같은 패턴입니다. 언제나 호기롭게 나섭니다. 물 위를 걸을 때에도, 십자가 죽으심을 마씀하실 때도, 예수님 잡히시는 순간에도, 언제나 불같이 타오르는 것 같다가 금새 식어버립니다. 이게 베드로만의 이야기인가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늘 새롭게 결단하고 기도하면서, 과연 얼마나 이루고 계신가요?
우리 삶의 풍랑 중에도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오실 줄 믿습니다. 세상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두려워 그 안에 빠져가는 우리를 향해 손을 내미실 줄 믿습니다. 언제나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고 계신 예수님. 바람을 보며 두려움에 빠질지라도,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님을 바라보는 그 순간, 내 손을 붙잡아 주시고, 나의 모든 연약함까지 품어주시는 예수님!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더 크신 주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사실 우리는 의문을 갖게 되죠.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 제자들을 재촉해서 바다 건너편으로 보내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탄 배는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되어진 모습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풍랑 속으로 밀어넣으셨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때로 삶 속에 겪는 고난의 문제 앞에서 의문을 제기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나를 이렇게 힘겹게 만드시는가?” 이 모든 질문의 답은 하나입니다. “더 크신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오늘 제자들은 풍랑 중에 바다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 자신들과 똑같은 인간인 베드로도 바다 위를 걷는 기적의 역사에 동참하는 것을 똑똑히 바라봤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탄 배에 오르시자마자 바람이 그치는 것도 경험합니다. 이 일로 인해 본문 33절에 말씀합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이 모든 일을 겪은 제자들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면서 고백합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오늘 본문은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고생했다는 이야기 하려는 게 아닙니다. 풍랑을 만난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 주시기 위함입니다. 왜 풍랑이 일어났는가? 왜 풍랑 속에 제자들을 밀어넣으셨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예수님을 바라봐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에게는 다 계획이 있으셨던 거죠. 예수님께는 제자들을 향한 더 큰 계획이 있으셨기에, 이 풍랑을 겪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 삶의 풍랑을 만날 때가 있지만, 그로 인해 원망도 하고, 답답해하고, 힘겨워 할 때도 있겠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이 담겨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풍랑이 있을지라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더 크신 계획을 깨닫고, 성취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