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4; 지켜야 할 나의 포도원,, (1장 5-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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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4; 지켜야 할 나의 포도원,, (1장 5-6절)

일요시사 0 1240 0 0

요즘 좋은 취미가 하나 생겼다. 정원가꾸기다. 솔직히 집을 처음 짓고 심은 나무들이 자기 멋대로 자라도록 방치해두고 있었다. 인공적으로 가꾸는 멋도 있지만, 있는 그대로 자연의 섭리에 맡기는 것도 괜찮다 싶었고, 또 정원을 가꾸는 일은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몰랐었다. 

 

그런데 넝쿨들이 우리 집과 담을 접하고 있는 세 집들에서 자라나와 담들을 다 점거하고 바닥을 건너 우리 집까지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쪽문 하나는 아예 넝쿨들에 뒤 덮여서 문이 잘 닫히지도 않을 정도였다. 결국,, 쪽문에 붙어있는 넝쿨들을 쳐내기 시작한 것이 정원을 가꾸게 된 계기가 되었다. 

 

넝쿨들을 쳐내다 보니, 이웃집에서 자라나온 넝쿨들이 얽히고 설키고 난리가 아닌데, 어떤 줄기는 나무처럼 굵어서 전지가위로 쳐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플레이스메이커에 가보니 15불짜리 톱이 있기에 하나 사 왔다. 일단 제일 싼 것으로,,, 손에 톱이 주어지니까, 이제 마구 잘라내기 시작했다. 

 

아직도 손질해야 할 넝쿨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어느 정도 넝쿨들을 정리해내고 보니, 이번에는 정원의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또 나무들 가지치기를 시작했는데,,,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라고 다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때 알았다. 쓸 데 없이 붙어서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가지가 의외로 많았던 것이다. 

 

아! 그래서 주님께서 요한복음 15장 2절에서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는 제거해버리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잔가지를 쳐내서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이구나,, 가지를 쳐보니까, 가지치기 비유가 실감나게 느껴진다. 잔 가지들은 쳐내고, 주된 가지들이 잘 자라도록 가지치기를 했다.

 

생각해보니,, 살고있는 건물만 우리 집이었지, 정원은 잡초들과 이웃집에서 넘어온 넝쿨들이 주인이었던 것 같다. 신앙생활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가 가꾸고 지켜야 할 각자의 정원이 있다.

 

술람미 여인은 6절에서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자기에게 노하여, 그들의 포도원지기로 삼았기 때문에 자기 포도원을 돌보지 못하였다고 말한다. 오빠들이라고 하지 않고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서, 이들은 의부의 아들들로 보여진다. 

 

술람미 여인은 이복형제들의 핍박 때문에 자기가 돌보아야 할 자신의 포도원은 방치한 체, 그들의 포도원을 돌보아야 했다. 여기에서 ‘나의 포도원’은 우선 ‘자기 몸’을 말한다. 이복 형제들이 자기를 마구 부려서 그들의 포도원을 돌보게 했기 때문에, 여인은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꾸지 못했다는 뜻이다. 예루살렘 딸들아 나를 흘겨보지 말아라. 내가 햇볕에 타서 피부가 검어지고 게달의 장막처럼 된 것은, 이복형제들이 내게 화를 내며 자기들 포도원을 돌보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적으로 보면, ‘나의 포도원’이란 성도들이 돌보아야 할 각자의 ‘영적 포도원’을 뜻한다. 이 경우, 이복형제들은 성도들이 자신들의 영적 포도원을 돌보고 가꾸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상의 세력을 상징하게 된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갈 4:28-29).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어릴 때 이복 형인 이스마엘에게 박해를 받은 것을 말한다. 육체를 따라 난 자는 육체에 속한 자, 즉 세상에 속한 자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난 자다. 그 때에 세상에 속한 자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들, 하나님께 속한 자를 박해한 것같이 지금도 그러하도다. 

 

그렇다. 하나님께 속한 약속의 자녀들은 세상에 속한 자들에게 핍박을 받는다. 그러나 성도가 핍박을 받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으로 인해 욕먹고 박해를 받을 때,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주님으로 인해 박해를 받는 것이 복이며, 그럴 때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셨다. 성도들이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는 것은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주님께 속한 자라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9) 

 

누구나 자기에게 속한 자를 사랑하기 마련이다. 세상은 세상에 속한 자들을 사랑하고, 주님께서는 주님께 속한 자들을 사랑하신다. 성도는 세상에서 주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며, 주님께 속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성도들을 미워하고 박해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세상에 속한 자들이 성도들을 미워하고 박해하는 데는 목적이 있다. 그들의 포도원을 가꾸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술람미 여인은 이복형제들의 핍박 때문에 나의 포도원을 지키지 못하였다고 말한다. 성도들이란 어차피 세상의 사랑을 받기는 틀린 사람들이다. 세상에 속한 자들에게 핍박을 받거나, 미움이나 방해나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이 각자 자신의 포도원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성도들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방해나 유혹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이를 이겨내며 자신의 포도원을 지키고 돌볼 책임이 있다. 

 

그 포도원은 마음이라는 영적 포도원이다,,, 성도는 각자의 마음이라는 영적 포도원을 가꿀 책임이 있다. 우리는 세상의 가치관이나 사상과 같은 세상의 넝쿨들이 우리 마음 속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주인 노릇하지 못하도록 잘라내야 한다.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의 정욕과 탐심,, 여기에서 육체는 죄 된 본성이다,, 죄의 욕심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이다. 아니,, 못 박힌 사람들이다. 주의 성령에 의해 주와 함께 못 박힌 자들이다. 마음에 들어와 있는 세상의 넝쿨들에게 자리를 내줄 수 없는 자들이 성도들인 것이다. 

 

술람미 여인은 자신이 이복형제들 때문에 자기 포도원을 지키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자신의 포도원을 온전히 지키는 성도는 없다. 때로는 넝쿨들이 자라 무성하게 되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때마다 주님 앞에 나간다. 나 비록 검으나 아름답다 하시고, 게달의 장막 같을 지라도 왕의 장막으로 부르시는 주님 앞에 나간다. 내 안에 있는 온갖 넝쿨들을 자신의 육체에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 앞에 나간다,, 

 

지켜야 할 나의 포도원,,, 알고 보니,, 주께서 지키시는 주의 포도원이었다. 

 

 

채원병 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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