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3; 나 비록 검을지라도,, (1장 5-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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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3; 나 비록 검을지라도,, (1장 5-6절)

일요시사 0 1226 0 0

이민 와서 살다 보면, 부부간에 서로 깜짝 놀랄 일이 잘 생긴다. 아니 내가 여태껏 이런 인간하고 함께 살았었나? 한국에서는 남자는 직장생활로, 여자는 집안일로, 혹은 둘 다 각자의 일로 바쁘게 지내느라 서로 함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잘 알지 못하면서, 서로 잘 안다고 착각하고 지내기 쉽다. 그런데 이민을 오게 되면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하루 24시간 붙어있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이때 한국에서는 서로 몰랐던 부분들을 보게 되고, 경악하게 된다. 그래서 서로 실망을 하게 되고, 부부싸움도 일어나고, 갈라서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사랑,,, 사랑에 조건이 붙는다면, 그때 그 사랑은 이미 순수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런 사랑은 조건이 바뀌면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돈을 보고 사랑한 사람은 돈 떨어지면 떠난다. 외모를 보고 사랑한 사람은 외모가 변하거나, 더 멋있는 사람 보면 떠난다. 사회적 신분을 보고 사랑한 사람은 신분의 변화가 생기거나, 더 좋은 신분의 사람을 만나면 역시 떠난다. 마음씨가 고와서 사랑한 사람은, 상대방의 고약한 모습을 보거나 더 마음씨 고운 사람 만나거나 하면, 떠나게 된다. 뭐,, 떠나지는 않더라도, 사랑은 점차 식어가고, 그냥 마지 못해 사는, 그런,, 사랑 없는 부부가 된다. 

 

사랑에는 조건이 있어서는 안 된다. 못나면 못난 대로, 잘나면 잘난 대로 현실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게 진짜 사랑이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그렇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조건을 보고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다. 우리의 조건이야말로 사랑 받을래야 받을 수 없는 조건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이시다. 그렇다.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이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요 15:12,14에서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서로 사랑해라. 그러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아내와 남편과 형제를 사랑할 수 있으면, 너희는 나의 친구다.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알맹이는 쏙 빼먹고, 너도 나도 예수는 나의 친구라고 노래를 부른다. 

 

오늘도 솔로몬 왕과 깊은 사랑에 빠진 술람미 여인의 고백은 이어진다. 산골처녀인 술람미 여인이 왕의 사랑을 받아 예루살렘에 와 보니, 도시의 아가씨들은 한결같이 피부도 희고 곱고, 세련되어 보였다. 그들과 비교해보니 자기는 피부도 검고 거칠고, 촌스러웠다. 이런 초라한 모습의 술람미 여인을 예루살렘의 아가씨들은 흘겨보았습니다. 

 

그래서 술람미 여인은 자신을 비방하고 우습게 보는 예루살렘의 아가씨들을 향해 자기의 심정을 이렇게 고백한다. 

 

5절 예루살렘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예루살렘 여인들아, 내가 비록 검고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왕께서는 나를 아름답다 하시며, 그분의 휘장과 같다고 하시는구나. 

 

게달 민족은 팔레스타인의 남쪽 아라비아 광야에서 유랑생활을 하던 유목민이었다. 유목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장막인데, 그들은 검은 색, 또는 암갈색의 염소가죽으로 장막을 만들었다 한다. 그래서 게달의 장막 같다는 말은 아라비아 광야의 마르고 거센 모레바람을 맞으며 낡아진 장막, 암갈색의 볼품 없는 모습을 빗대어 한 말이다. 

 

술람미 여인의 모습이 그렇고, 그 삶 또한 그러하다. 광야 같은 인생을 살면서 사막에 불어오는 거친 모래바람에 닳고 해진 삶이다. 예루살렘의 딸들처럼 곱게 살아온 인생이 아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여인들아, 너희는 나를 검고 볼 품 없는 인생이라고 업신여기지만, 왕은 나를 아름답다 하시며 사랑하시는구나. 내가 비록 게달의 장막과 같을지라도, 왕은 나를 왕의 휘장과도 같다고 하시는구나. 

 

게달의 장막 같은 인생도 예루살렘의 딸들보다 더 아름다운 인생이 될 수 있다. 게달의 장막처럼 닳고 해진 인생도 왕의 사랑을 받으면, 왕의 장막이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그 인생은 더 이상 게달의 장막이 아니다. 주의 장막이다. 

 

주님께서는 깨끗하고 고와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죄 없고, 의로워서, 희고 깨끗해서, 우리에게 주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조건이 조금이라도 있어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다. 비록 검고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 하시고 주의 장막으로 부르신다. 

 

예루살렘의 여인들은 술람미 여인을 흘겨보지만, 술람미 여인은 그들을 향해 담대하게 말한다. “내가 비록 검을지라도 아름답고,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그래서 롬 8:33-34은 말하기를,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누가 흘기며, 누가 고발하리요,, 죄로 검게 물든 자를 죄 없다 하시고, 불의한 자를 의롭다 하시고, 불법을 행한 자를 깨끗하다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게달의 장막 같은 인생이라도, 나의 장막에서 함께 살자고 부르신 이도 주님이시다. 나 비록 검으나 주께서 아름답다 하시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주의 장막 안에 살리라,,, 

 

이것이 복 중의 최고의 복이다. 건강의 복, 재물의 복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복이다. 그래서 밧세바와 간음한 후 다윗 왕은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이렇게 기도한다. 

 

시편 32편 1,2,5절

1 허물을 용서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사람은 복이 있도다

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

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주님 앞에서 검지 않은 사람은 없다. 모두가 다 죄인이며, 온갖 허물로 가득한 인생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 한 가지가 있다. 다윗의 고백처럼, 술람미 여인의 고백처럼, 자신이 검다는 사실, 게달의 장막과 같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만나게 된다. 포도주보다 진한 주님의 사랑을 만나게 된다. 주님께서는 내가 검고 게달의 장막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아름답다 하시고, 함께 주의 장막에서 살자 하신다.

 

 

 

채원병 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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