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1 ; 솔로몬의 아가(雅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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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1 ; 솔로몬의 아가(雅歌)라

일요시사 0 1224 0 0

금년에도 어김없이 또 한 해가 가고, 새 해를 맞이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느끼는 것이지만, 세월은 화살처럼 빨리 날아간다. 이 땅에서의 삶도 한 해가 가는 것만큼이나 빨리 날아가리라,,, 이 땅에서의 여행을 다 마치고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지나온 인생은 한 순간의 꿈처럼 느껴질 터,,, 분주히 살아온 삶이 그 날에는 한 순간 꿈에 불과할 뿐이다. 그 날에 꿈과 같았던 그 삶이,, 아름다운 사랑의 꿈으로 기억된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솔로몬의 아가라,, 솔로몬의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Song of Songs’ 노래 중의 노래,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뜻한다. 아가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 솔로몬 왕과 시골처녀의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과 땅과 각종 생물들을 창조하시고, 여섯째 날에 아담을 만드셨다. 아담 곁에는 온갖 짐승과 공중의 새들과 각 생물들이 있었다. 그러나 아담은 고독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에덴동산에서 부족한 것이 없었으며, 공중의 새들과 땅의 수많은 동물들이 아담 곁에 있었지만, 아담의 마음 한 구석은 늘 허전했다. 우리도 마찬 가지다. 하나님을 믿고, 집에 개와 고양이와 새들이 있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고 해도, 홀로 사는 사람은 외로울 수밖에 없는 법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고독함을 아시고, 아담에게 짝이 있어야겠구나 생각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여자를 만들어 주셨다. 그런데 아담처럼 흙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아담의 몸에서 일부를 취하셔서 여자를 만드셨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갈빗대 하나를 취하셔서,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만드실 때, 왜 흙이 아니라 남자의 몸에서 일부를 취하여 만드셨을까,,, 자기 몸처럼 여자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라는 뜻이리라. 이는 여자를 처음 본 아담의 반응에서 잘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만드시고 아담에게 데리고 오시자, 아담이 여자를 처음 보고 얼마나 기뻤던지, 이렇게 외쳤다.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내 살 중에 살이라” 내 뼈 중에 뼈요, 내 살 중에 살이라,,, 나의 모든 뼈 중에서 가장 소중한 뼈요, 나의 모든 살 중에서 가장 소중한 살이 여자다. 남자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며,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이 바로 자기 아내인 것이다. 

 

여자는 아담에게 있어서 최초의 친구이자 아내였다. 외로울 때 자신의 말벗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는 평생 동안 함께 해야 할 인생의 동반자였다. 외로울 때는 가장 가까운 벗이 되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는 가장 힘이 되는 사람이 자기 아내다. 또 기쁜 일이 있을 때나 슬픈 일이 있을 때, 누구보다도 함께 기뻐해주고 슬퍼해줄 사람이 바로 자기 아내다.

 

이처럼 성경은 창세기에서부터 부부 간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아가서는 남녀 간의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다. 

 

아가 1장 1~4절

솔로몬의 아가라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다.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구나.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사랑은 붉은 포도주보다 달콤하며, 사랑은 향유보다 향기롭고 아름답다. 우리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에 기뻐하며 행복해 할 수 있다. 사랑이 메마른 사람은 설사 많은 것을 가졌어도 그 삶이 황량한 사막과 같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가진 것이 없어도 그 삶이 풍요로울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가서가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의 노래라면, 성경에서 그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가서는 구약성경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실려 있다. 이사야에서 말라기까지 17권의 예언서가 구약성경의 마지막 내용인데, 아가서는 예언서들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이 사실은 아가서가 구약성경을 마무리하고 신약성경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에서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영원히 버리신 것이 아니셨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한다. “또한 너는 주님의 손에 들려 있는 아름다운 면류관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될 것이다. 다시는 어느 누구도 너를 두고 '버림받은 자'라고 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너의 땅을 일컬어 '버림받은 아내'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너를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여인' 이라고 부르고, 네 땅을 '결혼한 여인' 이라고 부를 것이니, 이는 주님께서 너를 좋아하시며, 네 땅을 아내로 맞아 주는 신랑과 같이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총각이 처녀와 결혼하듯이, 너의 아들들이 너와 결혼하며, 신랑이 신부를 반기듯이, 네 하나님께서 너를 반기실 것이다”(사 62:3-5)

 

아가서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회복을 아름다운 남녀 간의 사랑을 통해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특히 우리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 된 교회 또는 성도와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그 관계는 마치 솔로몬 왕과 시골처녀의 사랑과 같은 관계다. 왕과 시골처녀의 사랑,,, 뭔가 어울리지 않는 사랑이다. 도무지 비교할 수가 없는 두 사람의 신분이다. 이스라엘의 왕이요, 권세 자요, 지혜의 왕이며, 부강한 솔로몬 왕이 산골에서 포도원 일을 하고, 양을 치며 거무스름한 얼굴에 게달의 장막 같이 비천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말이 되지 않는 사랑,,, 우리가 그 사랑의 주인공들이다. 솔로몬 왕이 시골처녀를 사랑했던 것처럼, 만 왕의 왕이신 우리 주님께서 볼 품 없고 비천하기 짝이 없는 우리를 신부로 맞이해주시고, 아낌 없는 사랑을 부어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솔로몬 왕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만 주의 주요, 만 왕의 왕이시다. 반면에 우리는 시골처녀 술람미 여자보다 더 검은 죄인들이었다. 하나님의 원수였으며,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였으며,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 이러한 자들이 주님의 택하심을 받고 부르심을 받아 주님의 사랑의 대상이 된 것이다,,, 왕이 시골처녀를 택하고 부르고 사랑했듯이,,,

 

“내 뼈 중에 뼈요, 내 살 중에 살이라”는 아담의 고백처럼, 새 아담으로 오신 주님께서는 자신의 뼈와 살을 내주시며 술람미 여자와 같은 우리를 사랑해주셨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다. 아니,, 현재도 받고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주님의 사랑을 받는 주님의 신부들이다. 

 

이 땅의 신부들이여,, 주의 사랑을 노래하라!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주의 사랑을 노래하라! 솔로몬의 아가로 노래하라!

 

새해가 그분의 순결한 신부로서 우리 왕과의 아름다운 사랑이 향기로운 기름처럼 가득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채원병 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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