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동의 뉴질랜드 낚시; 세대 교체
세대가 바뀌었다. 바뀌어도 많이 바뀌었다. 2000년 12월 말 '조선(釣仙)' 이라는 제하의 낚시 칼럼을 끝으로 19년이란 세월이 이민자 세대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식당에 가거나, 교회에 가거나, Countdown에 가거나, 낚시터에 가거나,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시기가 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이젠 거의 모르는 사람들 뿐이다. 이른바 신세대로 세대 교체가 된 셈이다. 신세대는 뉴질랜드를 잘 모른다. 어쩌면 아는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사업을 하거나, 집을 구하거나, 낚시를 하거나 실패율이 조금은 더 높다. 마르크스의 모순법칙 같지만, 아는게 더 많다는 이유 때문에...
낚시도 그렇다. 필자의 경우 한국에서 오랜 낚시경험으로 낚시에 관한 지식 만큼은 누구도 따를 수 없다는 자신을 한결과 뉴질랜드에서는 낚시를 가장 못하는 사람으로 유명해 본적이 있다. 한국에서의 낚시 지식과 상식 그리고 습관을 버리는데 꽤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어느날 낚시배에 동승한 필자의 얼굴을 잘 모르는, 즉 필자의 이름만 아는 낚시꾼 일행이 있었다. 필자에 관한 얘기였다.
"유해동이 낚시에 관해 아는게 그렇게 많지만, 헌데고기는 영 못 잡는다더만..."
"그런 유명 낚시꾼이 낚시를 못한다고?"
"그렇다니까. 고기는 영 못 잡는대."
소문이란 참 무서웠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필자 옆에서 필자가 낚시하는 걸 언제 봤다고 필자에 관해서 무얼 안다고 그런 싱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소문은 꽤 크게 번져 나갔다.
어쨌거나 낚시는 뒷장이 잘 붙어줘야하는 노름판과 같은 특수성, 즉 바둑이나 골프처럼 급수를 꽤 정확히 구분하는 것과는 달리, 등급의 구분에 어려움이 따르는 게임이다. 초보자가 엉터리로 던진 엉터리 미끼도 그날의 큰 고기가 물고 늘어지면 그날은 그 초보를 최고로 잘하는 낚시꾼으로 인정한다. 이것이 낚시꾼만의 속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