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76) 내 손에 새겨진 하나님의 은혜 <열왕기하 6:1~7>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이야기의 시작은 엘리사의 제자들의 자발적인 헌신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로서 사명을 감당하면서, 더불어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제자들이 와서 엘리사에게 엘리사를 따르는 제자들이 너무나 많아서 거주하기가 어려우니까, 좀 더 넓은 장막, 기도원을 만들자고 말합니다. 엘리사는 이에 대해 2절에 “가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다함께 요단에 가서는 나무를 자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는 중에 도끼질을 하던 한 제자가 소리를 지릅니다. “아아~ 내 주여! 도끼가 물에 빠졌습니다. 이 도끼는 빌려온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제자들은 잘못한 게 없습니다. 저들은 그저 장막의 터전을 넓히고자 한 것 뿐입니다. 그것도 나 한 사람 좋자고 한 게 아닙니다. 모두 다 함께 좀 더 넓은 공간에서, 좀 더 많은 이들이 엘리사의 가르침을 받으며 지내고자 그 터전을 넓히려 한 것입니다. 좀 더 잘 해보려고, 좀 더 열심히 해보려고 했는데, 이런 문제가 생겼으니, 딱 시험에 들만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그런 경우가 있잖아요. 좀 더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좀 더 헌신해보려고 했는데, 그 때 문제가 생깁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로 결과는 해피엔딩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는가? 어떻게 이런 해피엔딩이 되었는가? 어떻게 도끼를 빌어온 사람은 낙심과 절망의 주인공이 아니라,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는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 우리 역시 기적의 주인공 되고자 하는 소망을 품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로, 그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는 그 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주간에 새벽예배 중에 에스라 2장의 말씀을 봤습니다. 에스라 2장, 트리니티 성경공부를 통해서도 배웠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명단이 끊임없이 나옵니다. 역대상 같은 경우에는 1장부터 9장까지 계속 그렇게 이름만 나옵니다. 그럼 성경에서 도대체 그 사람들의 명단을 왜 그렇게 기록해 놓았을까요? 저들이 어떤 모양으로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에 쓰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보십시오. 엘리사의 제자들이 말합니다. “우리가 저기 요단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처소를 조금 넓히겠습니다.” “가라.” 엘리사는 잘 다녀오라고 합니다. 본인이 직접 갈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끼리 가서 잘 하고 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3절과 4절을 보십시오. “그 하나가 이르되 청하건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가리라 하고 드디어 그들과 함께 가니라.” 다른 제자들은 그저 엘리사에게 다녀오겠다는 허락만 구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 한 사람, 본문에 이름도 나와 있지 않은 “그 하나”는 엘리사에게 말합니다.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여기서 만약에 엘리사가 다른 생도들과 함께 그 자리에 가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도끼를 물에 빠뜨리고 빈손으로 돌아왔겠죠. 그리고 도끼를 빠드린 제자는 시험에 들어서 자신의 자리를 떠나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엘리사가 함께 했기에, 모든 제자들은 기적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도끼를 빠뜨린 제자는 절망의 주인공이 아니라, 오히려 기적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기적의 역사를 위해 정말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엘리사를 향해서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요청한 “그 하나”입니다. 언제나 기적의 역사를 위해 쓰임 받는 그 한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이 여기까지만 가는데,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의 걸음을 통해서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들이 엘리사에게 함께 하기를 원한 것은 단순히 엘리사를 향한 마음이 아니죠. 엘리사가 섬기는 하나님! 엘리사에게 기적의 역사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의 동행을 요구한 것입니다. 내가 걷는 그 모든 걸음 위에, “주님 나와 함께 하소서.” 이러한 간구를 올려드림으로 기적의 역사에 쓰임 받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수많은 제자들이 열심히 일하는 중에 한 사람의 울음 섞인 외침이 들려옵니다.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본문의 시대는 벌써 지금으로부터 거의 2,800년 전입니다. 그러니 본문의 도끼가 얼마나 형편 없었겠습니까? 또한 당시 철기 시대입니다. 철이 엄청 귀했기 때문에, 가격은 또 꽤나 비쌌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사람은 도끼를 물에 빠뜨리자마자 소리 높여 통곡합니다.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그런데 보면 도끼를 빠뜨린 사람이 누구를 찾고 있습니까? “아아! 내 주여!” 엘리사를 부르고 있죠.
이 사람은 왜 엘리사를 찾는 걸까요? 엘리사가 도끼의 주인입니까? 엘리사가 도끼가 어디에 빠지는지를 목격했습니까? 엘리사가 이 사람에게 도끼를 빌려다가 나무를 하라고 요청했습니까? 아니잖아요. 그럼 왜 이 사람은 엘리사를 찾는 걸까요? 처음에 엘리사에게 “당신도 우리와 함께 하소서.”라고 요청한 그 제자와 똑같은 마음입니다. 지금 이 사람은 엘리사에게 자신의 문제를 아뢰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 역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대답합니다. “어디에다가 빠뜨렸냐?” 이 사람은 도끼가 빠진 곳을 가르키고 엘리사가 나뭇 가지를 베어 던졌더니, 물에 빠진 도끼가 떠오릅니다. 오늘 도끼질은 하던 제자는 문제가 생기자마자 어떻게 반응합니까? 울면서 엘리사를 찾습니다. 다시 말해 울면서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그리고 그 문제가 발생한 그 곳을 정확하게 가르킬 때에 그 속에서 문제의 해결 방법이 떠오르는 것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때로 문제가 생기면 외면하려고 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생기면 애써 모른 척 하려 하기도 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내 약점을 드러내야 할 때가 있거든요. 상처는 드러내야 낫습니다. 그건 육적인 상처도 그렇고, 마음적인 상처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육적인 상처는 의사에게 드러내야 하지만, 마음적인 상처는 하나님께 드러내야 한다는 거예요. 세상에 문제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문제가 끊이지 않으니까, 쉬지 말고 기도함으로 주님께 문제를 아뢰라는 것입니다. 감추려 하지 말고, 주님 앞에 나와서 내 상처를 내어 놓고 울라는 거예요. “아아! 내 주여!” 우리의 안타까운 음성을 주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
끝으로, 내 손에 새겨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은 기적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앞서 열왕기하 2장에 엘리야의 승천과 그 뒤를 이은 엘리사는 7장까지 계속해서 기적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이를 통해 갑절의 영감을 구한 엘리사에게 하나님의 응답이 임한 것을 계속해서 증거하는 듯한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앞뒤를 둘러싼 그 수많은 사건들만이 기적의 역사입니까? 정말 가장 큰 기적의 역사는 지금 내 손에 새겨진 하나님의 은혜임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믿음이라는 것이 내 의지로 되던가요? “오늘부터 믿어봐야지.” 그렇게 결단한다고 믿어지는 게 아닙니다. 믿음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믿어지는 게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설교 말씀이 들려질 때에, 그 말씀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에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다는 것이 엄청난 은혜입니다. 또한 주어진 삶 속에 감사의 고백이 나오는 것, 이게 정말 큰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십시오. 마지막 7절입니다.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 문제의 발단은 한 제자가 도끼를 물에 빠뜨리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그 제자의 손에 도끼가 들려짐으로 마무리됩니다. 도끼를 빠뜨린 손은 부끄러움의 손이었습니다. 실수한 손이었습니다. 인간사회로 보면 책망받고 정죄받아야 할 손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손에 다시금 도끼를 쥐어 주심으로, 그 손에 하나님의 은혜를 새겨주십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이겁니다. 내가 지금 요단 강에 들어가서, 내가 지금 손을 내밀어서, 내가 지금 그 도끼를 잡는 것은 아니지만, 이 말씀이 읽혀질 때에, 이 말씀이 지금 들려질 때에, 이 말씀을 내가 아멘으로 받아 믿음으로 반응하는 그 순간, 나의 삶에도 기적의 역사가 새겨지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기적의 역사를 아멘으로 화답하는 나의 믿음을 통해서, 말씀이 살아 운동력 있게 역사하길 원하는 그 소망을 통해서, 또한 나에게 체험되어진 기적의 역사를 우리 주변에 함께 나누고자 하는 그 사랑을 통해서, 내 삶에 또 다른 새로운 기적의 역사가 계속 새겨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으면, 오늘 하루 자체가 기적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기적과도 같은 오늘, 내 손에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새겨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