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73) 복(福)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73) 복(福) <시편 1:1~6 >

우리는 복을 참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복을 좋아하고 복 받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신앙인이나 불신자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복을 받기를 원하고, 소망합니다. 금년에 참 걱정이 많았고, 염려도 많았습니다. 물론 아직도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어려운 시간들을 지나왔으니, 이제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이 듭니다. 이 예배의 자리에 함께 한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시편 1편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전하고자 마음 먹었을 때에 딱 떠오르는 문장이 “복 있는 사람은...”이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하면서 시작되는 이 말씀이 시편 150편 전체의 문을 여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시편 전체의 서론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이러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선언한 후에, 시편 전체 내용이 모두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린 자의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찬양으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복” 그런데 이 복은 그저 세상에서 말하는 “운이 좋다.” “행운이다.” “럭키하다.” 이런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자로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바라보고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누려야 합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을까?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릴만한 사람으로서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할 것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금할 것을 금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먼저 버릴 것이 있습니다. 1절에 말씀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복 있는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할 것 세 가지가 나와 있습니다. 먼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꾀라는 것은 일차적으로 내 머릿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말합니다. 악인의 생각이 무엇이겠습니까? 악한 생각이죠.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생각하는대로 행동하기 마련이기에, 악한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악한 말이 나오고, 부정적인 것을 생각하면 부정적인 말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 출발이 악인들의 꾀, 악한 생각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말라고 했습니다. 죄인들의 길에 선다는 것은 이미 악한 생각을 하는 단계를 지나 잘못된 길을 향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길을 가는 것은 목적지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조심해야 할 것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길에 서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입니다.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이제 그 자리에 익숙해졌다는 말입니다. 악인중의 최고봉이 오만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모습 중에 하나가 교만한 모습이죠. 오만한 자는 돌이킬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다는 말은 악인의 자리에 깊숙이 주저 앉아서 아예 돌이킬 생각도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1절의 말씀은 짧지만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줍니다. 악인들의 꾀, 즉 악인들의 생각을 따라가면 죄인들의 길, 즉 우리의 행동이 죄악된 길을 향하게 되고, 그 길의 끝은 오만한 자의 자리, 즉 죄악 된 삶이 그냥 편안한 모습으로 굳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지금 당장 즐거움으로 다가오지만 나중에 후회하게 만드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금할 것을 먼저 금해야 합니다. 버릴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 정결함,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 받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 “악인들의 꾀, 죄인들의 길, 오만한 자들의 자리” 어떤 큰 것이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작을 보십시오. “악인들의 꾀” 그렇기에 아무리 하찮고 작아보여도 금할 것은 금해야 합니다. 더러운 것을 먼저 치워버려야 깨끗한 것을 담을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정결함이 임해야 거룩한 성령께서 임하실 수 있습니다. 금할 것은 금하시고, 정결함으로 준비된 삶을 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붙잡을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할 줄 믿습니다. 2절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안에 새겨가는 것입니다. 동시에 요한복음 1장에 말씀하고 있듯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 있는 사람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늘 사모하며, 내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악인들의 꾀, 죄인들의 길, 오만한 자들의 자리는 버리고, 주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이 곧 복 있는 사람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복 있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3절 말씀입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들이 다 형통하리로다.” 여러분 모두 다 형통하시는 복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모든 일들이 다 형통하면 더 이상 바랄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물 걱정이 없습니다. 시냇가에서 자라난 나무가 아닙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는 것은 다른 곳에서 자라다가 시냇가로 옮겨서 심겨졌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방황하다가, 내 마음대로 살다가 말씀을 붙잡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자리로 옮겨진 사람을 뜻합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이미 은혜의 자리에 심겨진 나무와 같은 존재인 줄 믿습니다. 그 자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축복의 인물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4대 족장이 있죠. 축복의 대를 이룬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두 각각의 특징들이 있었지만, 공통적인 것 하나가 있는데, 말씀 가운데 거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순종도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고, 이삭의 온유함 역시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야곱의 축복을 향한 사모함도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이 얼마나 귀한 것임을 알기에 그랬던 것이고, 요셉 역시 하나님께서 꿈으로 보여주신 자신에게 주신 비전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간 것입니다. 중심에는 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었고, 말씀 안에 거함을 통해 “그가 하는 모든 일들이 다 형통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음으로 주님 주신 축복을 누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 복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감사가 나오는가? 내용상으로는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내용이 이겁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1절에서 3절까지 “복 있는 사람은...” 이렇게 하면서 복 있는 사람은 어떠어떠하게 살아야 하고, 어떤 축복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 다음에는 당연히 어떤 말씀이 나와야 할까요? “복 없는 사람은...” 이런 식으로 말씀이 나와야겠죠. 그런데 보십시오. 복 있는 사람에 대한 말씀이 다 끝나고, 4절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말씀이 이렇습니다. “악인들은 그렇지 않음이여.” “복 있는 사람”의 반대되는 말씀 “복 없는 사람은” 이렇게 말씀하지 않고, 악인들은 그렇지 않음이여”라고 말씀합니다. 이어서 더 뒷편의 말씀, 6절을 보면 마지막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다시 설명드리면 “복 있는 사람”은 의인이고, “복 없는 사람”은 악인이 되는 구조입니다. 가만히 묵상하는데, 이게 의도된 것입니다. 여기에 담긴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서 감사의 개념이 들어가는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은 내가 복 받은 사람임을 믿는 사람입니다. 내가 받은 복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내가 받은 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의인이라고 인정해주시는 겁니다. 하지만 받은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고, 늘 불평과 불만 가운데 있으면, 하나님 앞에 악인이 되고 마는 거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음에도 감사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 칭함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과 롯을 한 번 보십시오. 아브라함과 롯은 둘 다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부요하게 되니까 종들 사이에 다툼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헤어져 살고자 합니다. 그 때 롯은 더 좋아 보이는 땅 소돔과 고모라 쪽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반대편으로 가게 됩니다. 그 이후에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 아브라함은 더 부요케되고, 롯은 망하게 됩니다. 왜 더 좋아 보이는 땅을 선택한 롯이 망하고, 아브라함은 부요케 되는가? 단 하나, 감사의 예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예배의 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인정받고 싶으십니까? 그럼 먼저 내가 축복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축복의 주인공이 되고 싶으십니까? 그럼 먼저 의인의 삶, 즉 복 있는 자의 삶, 복 받을만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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