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72) 메 마른 뼈와 같을지라도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시면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72) 메 마른 뼈와 같을지라도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시면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에스겔 37:1~14>



에스겔에게 보인 환상, 메마른 뼈들은 절망의 현실을 의미합니다. 소망 없는 오늘의 모습입니다. 부푼 꿈과 기대가 다 사라진듯한 모습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내 신앙의 모습도 메마른 뼈와 같이 영적인 힘을 잃어버린 모습일 때가 있습니다. 미래라는 가방을 짊어지고 걸어가는 자녀들의 모습에서도 메마른 뼈와 같은 모습이 그려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운영하는 사업장, 직장의 삶 속에서, 이민자의 삶 속에서, 이런 저런 염려와 걱정 속에 메마른 뼈들이 내 발밑에 나뒹구는듯한 환상이 아른거리는 것도 같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낙심치 말아야 할 이유를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오늘 제목에 그 중심을 담았습니다. “메마른 뼈와 같을지라도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시면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주어진 현실과 삶의 모습,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것, 해 나가는 모든 일들과 계획, 그리고 나 자신의 모습, 모든 것이 때로 메마른 뼈와 같이 보일지라도, 거기에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손길이 임하시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 가지고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내 믿음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삶은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때, 우리의 반응은 어떤가요? 지난 주에도 잠깐 말씀드렸죠.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질 때, 나의 믿음의 반응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이러한 말씀의 능력이 나에게 임하기 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처음에 황량한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메마른 뼈들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이내 하나님의 능력으로 메마른 뼈들이 이리 저리 붙어서 연결되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여 인간의 형상을 회복합니다. 그 위에 생기가 임하여 살아나서 보는데, 극히 큰 군대를 이룹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주시죠.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지금 너희들의 모습은 메마른 뼈와 같은, 소망 없는 포로 생활에 묶인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시면 다시 살아날 것이다.” 에스겔에게 이러한 환상을 보여주시고, 백성들에게 선포케 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동일한 말씀으로 회복의 새 역사, 소망의 내일을 바라볼 것을 명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잘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메마른 뼈들에게 직접 명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불러서 말씀하십니다.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에스겔은 대답하죠.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 대답 안에서 우리는 에스겔의 믿음의 반응을 볼 수 있습니다. “예. 살겁니다.” 이 말보다 더 확실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주께서 아십니다.” 믿음으로 맡겨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는, 회복의 역사를 경험하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납니다. 


에스겔은 본문 앞서서도 포로된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회복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듣는 백성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회의적입니다. 에스겔은 힘을 다해서 주의 뜻을 전하였지만, 백성들의 마음은 이미 현실의 문제 속에만 묶여 있었습니다. 왜 저들은 애타게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안에서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는 걸까요? 그렇다고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예 신앙을 잃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저들은 포로 생활 가운데 묶여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고, 말씀을 따라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머리로는 하나님의 회복의 약속을 그리면서도 마음으로는 절망과 낙심을 경험하고 있는 상태였다는 거죠. 그러다보니 에스겔의 회복의 메시지가 들려져도, 머리로는 받아들여지지만, 가슴으로, 내 마음 깊이에는 들어오지 못하는 겁니다.

  

9절과 10절 말씀에 보면, 그 전까지는 뼈가 서로 연결되어 한 몸을 이루었습니다. 살도 올랐습니다. 하지만 생기가 없었기에 사람의 형상만 가졌을 뿐 생명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에 에스겔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생기를 명하였더니, 생기가 들어가 비로소 살아나게 됩니다. 생기가 임해야 사는 것입니다. 지금의 이스라엘의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뼈는 남았습니다. 지금 영적으로 죽어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회복의 말씀이 들려져도 여전히 마른 뼈처럼 굳어있는 백성들의 마음에 생기가 임해야 비로소 살아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에도 말씀합니다.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완전한 살아남, 완전한 회복의 역사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생기가 임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에도 생기가 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삶에, 가슴 속에 뜨거운 하나님의 영의 임재,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하나님의 영으로 진정 살아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권능의 손을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메마른 뼈와 같은 절망의 현실을 넘어서 소망의 내일을 살아가라.” 여기서 반드시 기억할 것은 소망으로 내일을 “바라보라, 또는 계획하라”가 아니라, 소망의 내일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살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메마른 뼈들을 향해서, 또한 생기를 향하여서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그러자 메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나서 큰 군대를 이룹니다. 그냥 한 사람도 아니고, 그냥 한 무리도 아니고, 군대가 되었습니다. 완벽하게 힘 있는 존재로, 완전히 판세를 바꿀만한 능력 있는 모습으로 다시 살아났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이제 살아났으니 소망으로 내일을 살아가야 합니다.

  

소망으로 내일을 바라보는 것과 소망으로 내일을 살아가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도 늘 수도 없이 결심하지 않습니까? 수도 없이 결단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과연 얼마나 그 결심대로 행동하고 있는지요? 하나님을 향해서도, 내 자녀를 향해서도, 내 남편, 내 아내, 내 부모님을 향해서도, 늘 새롭게 결심하고 결단하는 것이 실제 삶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7장 19절에 스스로를 향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이어서 24절에 또 말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울도 늘 하나님의 뜻을 붙잡고 순종한다고 결심하고 결단했지만, 여전히 죄악을 행하며, 사망의 몸에 묶여 살아온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가 실패했습니까? 바울이 마지막에 기록한 디모데후서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스스로의 연약함을 고백하던 바울이 어떻게 다시금 이렇게 확실한 승리의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빌립보서 4장 13절에 답이 나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오늘 본문의 처음 시작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임재하시고.” 우리 하나님은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권세와 능력이 다 주의 손에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권능이 에스겔에게 임하니까, 메마른 뼈들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려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나아가 완전한 생명과 회복의 역사를 선포합니다.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리라.”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어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하나님 주신 말씀 그대로 선포합니다. 거기에 새로운 생명의 역사, 회복의 역사가 임하였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권능의 손을 의지함으로 담대히 일어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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