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손바닥 소설 [22편] 비끼라니깡
사자 습격을 받고 잡혀먹힐 동료를 보호하려다 한 마리가 잡혀 쓰러지면 바로 포기하고 멀리 달아난 얼룩말들.
쓰러진 얼룩말을 갈기갈기 찢어 포식한 사자.
한 시간 뒷모습을 보니 믿기지 않더구먼. 얼룩말들은 유유히 풀을 뜯고, 사자는 길에 대자로 누워 세상 모르게 잠을 자고.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것 다 잊고 평화로운 풍경으로 복귀하더구먼. 일할 때 힘써 몰입하기. 배고플 때 제대로 먹기.
힘들 때 쉬기. 졸릴 때 충분히 잠자기. 지나간 일 후회 않기.
돌아올 일 미리 가불해 걱정 않기.
“딱 그 나이가 된 거야. 어깨가 괜히 아픈 게 아니라니까. 통과의례 식으로 거쳐 가는 통증이니 걱정하지 말아. 못 고칠 병도 아니고 문제 되는 질환도 아니니. 장년층 성장통 같은 거야.”
“온종일 일하고 나서 뻐근한 것쯤이야 이해를 해. 근데 큰 곰 한 마리가 어깨 위에서 꼼짝달싹 않고 붙어있는 느낌이라니까. 그 중압감이 엄청나.”
왜 오십견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어깨가 뭉친 거라고. 자연스레 근육이 굳어지니 통증이 따라다닌다. T가 B의 어깨를 만져본다. 힘을 주는지 어깨가 거북 등처럼 딱딱하다.
“B, 자네 어깨 말이야. 아주 콘크리트처럼 굳었네그려. 침 좀 맞고 물리치료도 받아봐. 최근 새롭게 단장한 글렌필드 수영장 스파에 푹 담가 봐. 안 올라가는 팔도 조금씩 더 움직여 보고. 찜질 사우나도 해보고. 풀어줄 때가 됐다는 것은 쉬라는 신호야.”
“T, 자네는 요사이 괜찮은가. 몇 달 전만 해도 어깨 통증과 시림으로 잠을 못 잔다고 했잖아.“
“그래, 불과 3개 월 전만 해도 그랬지. 그때는 새벽 두 세 시쯤, 어깨가 시리고 아파서 잠에서 깼어. 지금은 90%는 좋아진 것 같아. 팔을 올리기도 어려웠던 그때 비하면 지금은 목수 일도 제대로 해서 양반이지.”
B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요사이 운전하기가 버겁다고. 온종일 택배 운전을 하다 보면 긴장과 스트레스가 쌓여 힘들다고. B에게는 주일날 교회 예배 보고 사람 만나 이야기하는 게 유일한 휴식이었다. 교회에서 집에 돌아와 집 안팎으로 손 볼 것들을 치다꺼리하다 보면 일요일도 금세 지나가 버렸다. T도 마찬가지였다. 목수일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까지는 속된 말로 빡 시게 몸을 썼다. 목수 일이 하드워크라고 키위들이 하는 말에 수긍이 갔다.
“에너지 총량 불변의 법칙이라던가, 뭐 그런 게 있다잖아. 왜 평생 쓸 에너지가 정해졌다고 했지. 그 양이 100이라 할 때, 젊어서 혹사하면 나이 들어 힘을 못 쓰게 된다고.”
“그 말도 일리가 있네그려. 농구선수들의 수명이 다른 종목 선수보다 짧다고. 단위 시간당 힘들어 헉헉거리는 정도가 심하지.”
“사람만 그런가. 자동차도 마찬가지지. 봉고차를 가지고 택배 일 하는데 요사이 자주 퍼지더구먼. 하루 200킬로 이상을 뛰니까 차도 배겨나지 못해. 겉은 멀쩡한데 주요 기능 부품들이 산화되어 제대로 작동을 못 하는 거야.”
“몸만 그런가. 맘도 녹초가 되면 산화되고 말지. 나이 들면서 우리 또래들 조심들 해야 할 때네.”
“속도를 줄이고 일 양을 덜어내고 생각도 비우라는 옛 선인들의 말이 맞지.”
B와 T의 이야기는 건강 쪽으로 쭉 이어졌다. 나이 들며 가장 무난한 이야기가 바로 건강이니 맞장구가 잘 맞았다. 더는 정치 이야기 같은 거로 시간 죽이고 싶지 않았다. 지난주 예배 끝나고 X와 Y가 정치 이야기 하다 험상궂게 얼굴 붉히며 설전 벌이는 걸 보면서 쉬쉬했다. 각자 정치적 소견이야 있겠지만, 자기 정서와 안 맞는다고 상대를 몰아붙이는 것은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중년의 나이가 되고부터는 그 사람 정치적 견해를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거북 등처럼 딱딱한 정치적 사고가 뭉쳐서 좀처럼 풀릴 수 없는 얼음덩어리였다. 얼음을 깨려고 순간 망치로 내려치면 되나. 따뜻한 물로 살살 녹여 내려 해도 시간이 걸리는 법인데.
“B. 뉴질랜드에 이민 오기 전 서울에서 건강강좌 들었는데, 아직도 그 내용이 생생하네. 근 이십 년이 넘었는데도 귀에 딱 박혀있어. 왜 당시 유명한 홍 박사 있었잖아. 의대 교수 출신이었어. ‘건강이란 나 이외에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 상태다’고, 그 당시 전직 대통령 둘이 감옥, 영어의 신세를 졌던 시절이었지. 전직 대통령들 지금 건강한가요? 묻더라고. 신체적 건강은? 아니요. 정신적 건강은? 아니요. 사회적 건강은? 아니요. 다들 아니라고 맞장구쳤어. 두 전직 대통령은 세 가지 건강이 모두 문제라고. 대통령까지 지내고도 온 국민의 지탄 대상이 되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건강은 어쩜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에서 비롯된다고 했지. 아주 명강의였어. 이민 와서도 그 말을 유념해 살려고 노력 중이라서 고맙지. 홍 박사에게.”
“T. 세상은 참 희한하지. 그게 벌써 이십 년 전 일인데. 그런 대통령 둘을 보면서 그 뒤로는 안 그럴 줄 알았지 않은가. 근데 뭔가. 요즘도 전직 대통령 둘이 감옥, 교도소 신세를 지고 있으니. 둘 다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이 바닥이지.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도 임기 끝나면 국내는 물론 다른 나라에도 강연 같은 것 하면서 좋은 영향을 주면 얼마나 좋을까?”
“B. 우리가 너무 비약한 게 아닌가. 자, 이야기를 건강 쪽으로 다시 바꾸자고. 이십 년 전 홍 박사의 건강강좌는 참 쉬웠어. 건강이란 이런 것이니 유념하고 잘살아 보자는 권유였지. 요즘은 유 박사의 구체적 건강 지키기 동영상이 유행하더구먼. 이분도 의대 교수 출신이래. 삼십 년 이상의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니 귀에 쏙쏙 들어와서 좋아.”
“T 말이 맞아. 옛날엔 직접 강의장에 가서 들었는데. 요즘은 유튜브 동영상을 스마트폰에서 바로 찾아 언제든지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살맛 나는 세상인가.”
Q 권사가 두 사람 옆을 지나가면서 인사를 한다. 두 장로님이 무슨 이야기로 그리 화색이 좋아요? 옳아 배려심 좋은 Q 권사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면 남에게 불편을 끼치는 것은 아니잖은가. 그렇담 건강하다는 인증을 받은 셈이네. 둘은 웃으며 화답했다.
“B. 몇 달 전, 유 박사의 어깨통증 완치훈련 편을 봤거든. 아주 쉽게 이야기하더구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래. 아파봤자 어깨 저림이다라고. 실제 어깨에서 느끼는 아픔이 1이라면 두뇌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통증 회로가 100배 이상으로 증폭시키고 만대. 그러니 증폭되어 보내온 통증 회로를 깨라는 거야. 어깨통증은 기능 질환이라는 거야. 어깨 통증에만 너무 신경 쓰면 쓸수록 아픔은 크게 느껴지는 법이라고. 예민함에서 벗어나 둔감 훈련하기. 충분한 수면.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기. 수영장 스파에서 어깨 스트레칭 범위를 늘려가기. 공원 운동 시설 기구로 어깨 강화 훈련하기. 매일 운동하며 운동량을 밀고 당기기. 남과 비교 말고 나 자신의 어제와 비교하기. 힘씀과 지나침을 줄이기. 많은 생각을 줄이기. 하루 10%의 여력은 남겨놓기. 실제로 따라 해보았지. 전반적인 건강이 좋아지니 국부적인 아픔이나 저림은 서서히 사라지더구먼. 놀라운 체험이었어.”
“T. 자네. 의사가 됐네그려. 나도 한번 그 유튜브 동영상 봐야겠네. 사실 어깨에 신경이 곤두선 건 사실이야. 내 마음이 그렇게 느끼고 키웠는지도 모르지. 나는 아프다. 내 어깨는 저리다. 늘 상 암시를 하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지. 내 말을 내 귀로 듣고 증폭되기도 했겠지.”
“B. 충분한 수면이 자연치유력 으뜸 순위라고. 다음으로 제대로 먹는 밥이 최상의 보약이라고. 보약이나 운동은 다음 순위라고. 내 경우엔 여러 가지 일한다고 수면이 부족했어. 밥도 몰아서 먹고. 힘씀과 지나침이 늘 따라다녔지. 스트레스를 끼고 산 게지. 가끔 동물의 왕국을 보면 느껴지는 바가 커. 사자 습격을 받고 잡혀먹힐 동료를 보호하려다 한 마리가 잡혀 쓰러지면 바로 포기하고 멀리 달아난 얼룩말들. 쓰러진 얼룩말을 갈기갈기 찢어 포식한 사자. 한 시간 뒷모습을 보니 믿기지 않더구먼. 얼룩말들은 유유히 풀을 뜯고, 사자는 길에 대자로 누워 세상 모르게 잠을 자고.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것 다 잊고 평화로운 풍경으로 복귀하더구먼. 일할 때 힘써 몰입하기. 배고플 때 제대로 먹기. 힘들 때 쉬기. 졸릴 때 충분히 잠자기. 지나간 일 후회 않기. 돌아올 일 미리 가불해 걱정 않기.”
B의 눈에 T가 다시 보인다. B 생각에 T의 노동 강도가 훨씬 세다는 걸 안다. 한때 목수일 배운다고 베테랑 목수 T의 보조로 일해본 적 있는데 바쁠 땐 입에서 단내가 났다. 종일 일하고 집에 오면 통나무처럼 쓰러지곤 했다. 무거운 통나무를 들고 나르다 실족해 부상을 당해 그만둔 적이 생각났다. 그런 T의 말이라면 다 믿고 싶었다.
T가 B의 긍정 어린 동의에 한마디 더 얹었다. 덤이었다.
“한 때, 팔도 못 올리고 물건도 못 들었는데, 요즘은 회복이 다 됐어. 가끔 어깨가 시리다는 느낌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곤 하지. 그럴 땐 가차 없이 쳐내거든. 사탄아 물러가라고 외치는 주술사처럼 말이야. 그럼 맥없이 떨어지더구먼.”
“그 기어오르는 느낌 통증을 퇴치하는 마법 주문은 어떻게 외치나?”
“비끼라니깡!”
버럭 소리친 T의 주문을 듣고 B가 박장대소했다. 조금 떨어져 듣고 있던 Q 권사도 입에 손을 막고 키득키득 웃음을 참지 못했다. 비끼라니깡! 주문에 걸음아 날 살려라 달아나는 느낌 통증을 지긋이 바라보며 T가 허허 웃었다.*
LYNN :소설가. 오클랜드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