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크라이스트처치를 가신다면…
“차로 90분, 프랑스풍 작은 바닷가 마을에도 들러 보세요”
산 중간에서
바라본 아코로아 마을. 바라보기만 해도 여행이 된다.
“有朋(유붕)이 自遠方來(자원방래)하니 不亦樂乎(불역낙호)아.”
‘논어’ 학이(學而)편 첫 구절에 나오는 말이다.
“벗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이 얼마나 즐거운가.”
친구 부부가 결혼 25주년 은혼식 기념으로 뉴질랜드 여행을 왔다. 이 먼 곳까지 달려온 친구를 위해 남섬 여행을 함께 했다.
공항 도착 후 지인이 ‘강추’한 아코로아로 직행
아코로아 마을의
기념물. 빈 이젤에 빈 물감. “당신이 명작입니다.”
첫 도착지는 크라이스트처치. 최근에 그곳을 다녀온 지인에게 물었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은 어딘가요?”
나이든 문학소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코로아(Akoroa)를 강추(강력히 추천)하고요. 그다음은 모나 베일(Mona Vale), 시간 되면 해글리 공원(Hagley Park)도 들러 보세요.”
뉴질랜드에 사반세기 살면서 몇 차례 크라이스트처치 여행을 했다. 해글리 공원이나 대성당이 있는 시내 중심은 그때마다 들렀다. 하루 일정이라 딱 그 정도면 족했다.
공항에서 차를 빌려 아코로아로 향했다. 10여 년 전 시도를 했지만 강풍이 몰아쳐 중도에 포기한 곳이다. 아코로아까지는 차로 1시간 30분. 반도(Banks Peninsular) 끝에 자리 잡고 있는 프랑스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오래 전 섭섭했던 내 마음을 읽었는지 가는 내내 날씨가 좋았다. 봄의 끝,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꽃향기를 마시며 차를 몰았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아코로아에 도착했다. 인구는 600명 정도. 휴가철만 되면 그 인구에 열 배에 이르는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프랑스 냄새가 나는 곳이다.
아코로아, 오래된 교회와 예쁜 공방 그리고…
모나 베일 가든 파크, 강물까지 평화롭게 다가온다.
아코로아는 1840년대 포경선 사업을 위주로 형성된 마을이다. 오래된 교회, 예쁜 공방, 허름한 집들…. 200년에 가까운 세월의 매력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한나절 시간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운 곳이다. 이삼일 마음을 풀어놓고 지내다 오고 싶을 정도다.
마을 한복판에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은 군인을 기념하는 탑이 서 있다. 그 옆에는 빈 이젤에다 빈 물감으로 ‘나름의 명작’을 만들려는 관광객들이 줄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점심 무렵 세 시간을 아코로아에서 보냈다. 피시 앤드 칩스(Fish & Chips)도 사 먹었고, 옛 모습을 간직한 박물관에도 들렀고, 아기자기한 공방에도 들러 눈요기도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행의 묘미가 내 가슴 곳곳에 스며들었다.
크라이스트처치로 돌아가다가 길을 잃었다. 아니, 조금은 색달라 보이는 길로 들어섰다. 서밋 로드(Summit Road)라는 길로 들어섰다. 길을 틀자 얼마 안 있어 산 아래 구름이 보였다. 30분을 구름 너머 또 구름, 산 너머 또 산의 길을 내달렸다. 그 어디를 찍어도 달력 속 사진이 나올 것 같은 멋진 풍경이 이어졌다. 때로 여행의 묘미는 길을 잃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석대로, 계획대로 여행하면 그건 그저 ‘일정’이 되고 말 뿐이다.
참, 캠퍼밴이나 큰 차는 운전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아차 하다가는 구름 속으로 빠질 수도 있다. 빗길 눈길 운전 조심을 요한다.(크라이스트처치에는 눈이 온다는 점을 아시길.)
모나 베일, ‘정원의 도시’ 크라이스트처치에서도 백미
아코로아에 있는 1차 세계대전 희생자 위령탑.
다음 날 아침, 모나 베일 가든 파크(Mona Vale Garden Park)를 찾아갔다. 40 Mona Vale Ave., Riccarton. 크라이스트처치는 ‘정원의 도시’(The City of Garden)라는 애칭이 있다. 인구와 면적에 대비해 뉴질랜드에서 가장 많은 그러면서도 예쁜 공원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 바로 크라이스트처치다.
모나 베일은 너무 넓어 걷기도 벅찬 해글리 공원에 견주면 아담한 동네 공원 같다. 딱 삼십 분 정도 산책 거리다. 그 안에는 결혼식 장소로 쓰이는 오래된 집도 있다. 모나 베일은 장미꽃 정원으로도 유명하다. ‘정원의 도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짧은 시간이나마 제대로 된 ‘정원의 아름다움’을 맛보려면 모나 베일이 최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 지인, 나이든 문학소녀가 내게 그렇게 말했고,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다.
알다시피 크라이스트처치는 지금까지 지진의 아픔을 겪고 있는 도시다. 2011년 2월에 일어난 지진으로 수많은 목숨을 잃었다. 지진이 일어난 지 며칠 뒤, 취재를 목적으로 하루치기 크라이스트처치 취재를 다녀왔다. 그때 지진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실감했다. 무너진 대성당, 파괴된 크고 작은 건물들, 그리고 짓눌린 사람들의 가슴들. 그 때문에 한동안 크라이스트처치가 마음에 걸렸다.
역시 세월이 약이던가. 만으로 하루치기 아코로아와 모나 베일 여행을 다녀온 뒤 내 마음이 편해졌다. 지진의 슬픔을 알리 없던 내 친구 부부는 여행 내내 탄성을 내뱉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적어도 사나흘은 크라이스트처치에 머물러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중에 무조건 하루(일박)는 아코로아로 잡으려고 한다.
혹시, 독자님들도 크라이스트처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아코로아를 잊지 마시길, 그리고 적어도 하룻밤은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이나 고흐의 풍경화 같은 기운이 풍기는 멋진 예술을 맛보시길…. 먼저 갔다 온 길손은 부탁합니다.
글과 사진_프리랜서 박성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