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인생, ‘트로트 가수’로 사는 도현우 씨(코넬대학 대표)
산청 시골 소년 50년 꿈 이뤘다…“‘꺾기’는 제가 최고죠”
고향 ‘철쭉제’ 행사 때 무대에도 올라, YouTube로도 노래 들을 수 있어
트로트 가수이자 교육 사업가인 도현우 씨, 그는 남은
인생은 노래하며 즐겁게 살겠다고 말했다.
<사진_레이휴 스튜디오>
“사람들이 그래요. 제 ‘꺾는’ 실력이 일류 트로트 가수 뺨친다고요. 트로트의 맛은 얼마나 잘 꺾느냐에 달려 있어요. 어릴 때부터 꿈이 트로트 가수였는데, 늦게나마 그 꿈을 이뤄 정말 기분이 좋아요.”
그는 갑자기 내게 ‘남자가 운다’라는 노래의 한 소절을 들려주었다.
“여자야 울지 마라~~남자가 운다.”
그와 박상길이라는 사람이 함께 작사한 가사 중 일부분이다. 그 짧은 소절에서도 두 번의 ‘꺾음’이 있었다. 그 꺾음 너머로 그의 트로트 사랑이 자연스럽게 전해져 왔다. 남은 인생은 가수로 살고 싶은 그의 소박한 바람 말이다.
1988년에 백호주의 기승부리던 호주로 유학
트로트의 맛인 ‘꺾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도현우 씨.
도현우, 영어 이름은 피터 도(Peter Do)다. 도현우라는 이름 앞에는 ‘트로트 가수’라는 호칭이 붙고, Peter Do 앞에는 ‘교육 사업가’라는 호칭이 따른다. 그는 서른 해 가깝게 교육 사업가로 살아왔다. 뉴질랜드 한인 사회에서 이름만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코넬대학(Cornell Education Group)의 대표다. 2000년대 초 오클랜드를 비롯해 크라이스트처치, 타우랑아 등에 ‘코넬’이라는 이름을 걸고 교육 사업을 벌여왔다. 지금도 요식업(Cookery) 계통에서는 뉴질랜드 최고로 꼽히는 대학이다. 졸업생 중 98%가 취업을 할 정도로 명망이 높다.
그런 그가 교육 사업가가 아닌 트로트 가수로 불리길 바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2의 인생은 가수로 살고 싶었어요. 제 평생 꿈이기도 했으니까요. 초등학생 때부터 그 꿈이 있었는데 사업을 하느라 어쩔 수 없이 접고 산 거지요. 이제는 남은 인생을 신나게 살려고요. 후회 없이 ‘꺾으며’ 즐겨야지요.”
도현우 씨는 1988년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리던 그해, 한국을 떠나 호주 시드니로 유학을 하러 갔다. 잘 나가던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백호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호주에 발을 내디뎠다. 그 당시 그의 지갑에는 호주 돈 1,700달러가 있었다.
그는 사무실 청소, 페인트 일을 해가며 한두 해를 버텼다. 그러다가 교육 사업(영어 학원, 비즈니스 칼리지 등)에 손을 대, 큰 성공을 거뒀다. 그가 세운 영어 학원은 한인 최초였다. 몇 차례 우여곡절을 겪은 뒤 ‘코넬’이라는 이름이 호주 한인 사회에 널리 알려졌다. 형제 나라인 뉴질랜드에도 코넬대학을 세워 지금까지 수많은 졸업생을 배출했다. 4년 전 호주 교육 사업을 정리한 그는 지난해 말 오클랜드로 와 뉴질랜드 코넬대학 일을 맡아 하고 있다.
시내 노래방에서 홀로 한 시간 열창 즐겨
“호주에서 사업을 할 때 종종 오클랜드에 오곤 했어요. 이곳 일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때마다 저만의 기쁨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나 홀로 노래방’을 찾아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일이었어요. 맥주 한 병을 시켜놓고 한 시간 정도 노래를 부르고 나면 모든 스트레스가 날아가 버렸지요. 노래방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깔끔하게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혼자 와서 노래를 부르다 가는 게 신기하게 보였을 거예요.”
도현우 씨의 고향은 경상남도 산청. 지리산 밑에 있는 시골인데 철쭉제로 유명한 곳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트로트를 즐겨 불렀다. 마흔 가구 정도 되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그가 노래를 부르면 동네 사람들이 다들 나와 노래를 지켜보곤 했다.
“그때부터 끼가 있었나 봐요. 세상 그 무엇보다 노래할 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반세기가 지난 오늘 비록 신인가수이긴 하지만 트로트 가수가 되어 감개가 무량해요. 앞으로는 평생 노래만 하며 살고 싶어요.”
도현우 씨는 2년 전 첫 음반을 냈다. 정식으로 가수로 데뷔한 것이다. 그 중 ‘막차는 오지 않았다’는 노래의 한 소절이 내 눈을 끌었다.
“아직도 우리 사랑이 남아 있다면 막차를 타고 온다 그랬지.”
그렇다. 트롯풍에 딱 어울리는 가사다. 어깨춤이 절로 나오고 발가락이 까딱까딱해진다. 도현우 씨는 이 노래를 구성지게 부른다. 누구 할 것 없이 이런저런 사연 많은 세상에 충분히 위로가 되고도 남는다. 노래가 주는 치료다.
고향 산청에서 열린 ‘철쭉제’에서 도현우 씨가 열창하고 있다.
도현우 씨는 바쁜 사업 중에도 한국 나들이를 자주 한다. 순전히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어서다. 일 년에 네 차례, 한 번 가면 한 달 체류는 기본이었다. 그동안 그는 음반 녹음을 하는 등 주로 노래 관련 일만 했다. 그러면서 ‘트로트의 전설’이라는 가수 남진과도 교분을 쌓았다. 토속적인 음악을 즐겨 부르는 장사익 씨와도 연을 맺었다.
“지난해 장사익 선생님이 연락을 해왔어요. 산청에서 ‘철쭉제’ 행사가 열리는데, 그곳 출신인 제가 빠져서는 안 된다는 거였어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날아갔어요. 거기서 흥겹게 노래를 꺾었지요. 무대를 휘젓고 다녔는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제 안에 있던 ‘끼’가 자연스럽게 노출이 되었나 봐요.”
그가 닮고 싶어하는 가수는 나훈아 씨다. 그의 노래 중 특히 ‘붉은 입술’을 좋아한다. 가사 중 일부.
“맺지 못할 사연 두고 떠난 사람을/ 이렇게 밤을 새워 울어야 하나/ 잊지 못할 붉은 입술.”
“나훈아 선배님의 노래는 가슴에서 나오죠. 한 섞인 목소리라는 뜻이에요. 저도 그런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 제 롤모델(본 받고 싶은 가수)이신데 그분처럼 되려고 노력을 많이 하죠. ‘제2의 나훈아’라는 별칭을 듣고 싶어요.”
도현우 씨는 얼마 전 두 번째 음반을 냈다. 주제곡은 ‘남자가 운다.’
음반 안내서에 있는 사진이 유독 멋졌다. 오클랜드의 이정표인 스카이 타워를 뒷배경으로 한 사진 속의 남자는 ‘이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찢어진 청바지에 검은색 트렌치코트, 거기에다 지구 밖까지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은 지프가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한인 대상 ‘노래 한마당’ 잔치 곧 펼칠 계획
트로트 가수 도현우의 꿈은 무엇일까?
“제 노래를 한인들과 좀 나누려고 해요. 오클랜드에서 대중가요를 하시는 분들과 상의해 추석이나 설날 등 절기별로 작은 콘서트 같은 걸 하려고요. 떡도 돌리고 흥겨운 노래도 들으면서 사람답게 사는 한인 사회를 만들려고요.”
그는 조만간 첫 공연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것이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소박한 공연이든, 전체 한인 사회를 위한 좀 규모가 큰 공연이든 함께 어울려 노는 ‘노래 한마당’을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산청 시골 소년의 ‘카수 꿈’은 이루어졌다. “해낼 수 있다고 믿기만 하면…, 결국 이루고 만다”는 그의 지론처럼 그는 정식 가수가 되었다. 남은 생은 오롯이 노래하는 일에만 전념해 살겠다고 했다.
“‘코넬대학의 대표’라는 교육 사업가의 비중도 만만치 않을 텐데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가수가 더 좋아요. 교육 사업가 피터 도(Peter Do) 말고, 트로트 가수 도현우의 얘기를 써 주세요.”
그거면 됐다. 교육 사업가보다 대중 문화인(트로트 가수)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더할 나위 없이 멋져 보였다. 인생은 ‘흥(興)’을 즐기며 사는 게 최고다.
참, 트로트 가수 도현우의 노래는 유튜브(YouTube)에서도 들을 수 있다. 검색창에 ‘도현우’라고 치면 텔레비전에 출연한 그의 노래도 감상할 수 있다. 그의 절절한 ‘꺾음’이 어디쯤 있는지 다들 찾아보시길….
글_프리랜서 박성기
▣ YouTube에 나온 동영상 일부 ▣
'막차는 오지 않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o-AYMryb_o8
'남자가 운다'
https://www.youtube.com/watch?v=HZDD0nkvlMo
'돌려주'
https://www.youtube.com/watch?v=KnzsLhQnfiU
'물레방아야'
https://www.youtube.com/watch?v=O2W9EMJhuMU
'가슴으로 쓰는 편지'
https://www.youtube.com/watch?v=8_ZWVxtRD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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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는 오지 않았다
아직도 우리 사랑이 남아 있다면
막차를 타고 온다 그랬지
사랑했던 기억들이 가물거리면
생각해 보겠다 그랬지
나는 기다린다 정거장에서
당신을 기다린다
복잡한 생각이 가슴 때리면
깊어가는 밤을 붙잡고
기다리던 막차는 돌아왔지만
내 사랑은 오지 않았다
내 사랑의 막차는 오지 않았다
<작사/ 온누리, 작곡/ 박현진>
남자가 운다
헝클어진 가슴으로 할 말이 너무 많아
하고파도 할 수 없는 사랑한다 말 한마디
정이란 정이란 미움이 되어
까맣게 까맣게 타버렸네
여자야 울지 마라 남자가 운다
빨간 그 입술로 누굴 또 유혹하려나
헝클어진 가슴으로 할 말이 너무 많아
하고파도 할 수 없는 사랑한다 말 한마디
정이란 정이란 미움이 되어
까맣게 까맣게 타버렸네
여자야 울지 마라 남자가 운다
빨간 그 입술로 누굴 또 유혹하려나
<작사/ 박상길 도현우, 작곡/ 이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