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손바닥 소설 [10편] 너무합니다
일요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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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4 13:39
역시 프로라는 걸 그때 절실히 공감했지. 우리 삶에서도 저래야겠구나 싶으니 폭풍 감동이 느껴진 게지. 이민 생활하며 우리는 작은 시련에도 얼마나 작아지고 무너지는가?
저런 포스, 카리스마가 필요하겠구나. 쉽게 지지 말고 온몸을 불사르는 도전과 열정,
몰입이 필요하겠구나 싶었지~
교민사회에서 딱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내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감사한 게지. 도반같은 친구 하나쯤~
“참, 어이가 없네. 그렇게 말 잘하는 분이라 더만. 한국에서 유명강사로서 이야기하던 것과는 영 딴판이네.”
“글쎄 말이야. 한국 초대형 체육관 집회 때, 수천 명이 모인 앞에서 사자후(獅子吼)를 토했다던 분이 왜 그리 힘을 못 쓰지?”
오클랜드 엘레슬리에 커뮤니티 행사 건물에서 빠져나오며 K와 L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자영업을 하면서 어렵사리 시간을 내서 온 것이었는데 강의 내용이 성에 안차자 돌아오는 발걸음에 힘이 빠졌다. 둘 다 고개를 흔들었다. 행사장 입구 탁자에 펼쳐있던 강사의 책들에 오히려 미안함을 느꼈다. 강의장을 나오던 청중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외롭게 누워있는 책들이야 무슨 죄가 있는가. 책들도 한숨을 쉬는 듯했다. 바다까지 건너와서 찬밥신세라니, 강사보다 더 쓸쓸해 보였다. 헛발질하고 쓸쓸히 퇴장한 강사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 강사의 인생길에 전환점이 되기를 마음으로 빌었다. 그뿐이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둘의 발길은 자연스레 1층 카페로 향했다. 커피 한 잔씩을 시켰다.
“뉴질랜드 번지수를 잘 못 짚은 성싶어.”
K의 말에 L도 긍정의 반응을 보였다.
“세상에 아무리 못해도 한 시간 반 동안, 한 번도 못 웃기냐? 공감 주는 대목도 없고, 원.”
“18번 노래 부르듯, 강의 원고 안보고 자유롭게 움직이며 이야기하면 되었을 텐데. 아깝네. 주눅이 들었나?”
“겉으로 보기에 뉴질랜드가 소박하고 시골 같다는 생각에 대충 얕잡아 보다 발목 잡힌 게지. 만만하게 볼 뉴질랜드 교민이 아닌데. 복싱 챔피언이 상대 선수를 쉽게 보고 경기하다 KO패 당한 셈이지.”
“이곳 오클랜드 교민들의 의식 수준이 보기보다 꽤 높은 줄 모르는 모양이야. 학력이 좋아도 이야기를 않고, 돈이 많아도 자랑도 하지 않고, 속이 꽉 찬 사람들이 많잖아.”
“그러다 보니 어지간한 감동이나 재미가 없으면 반응을 안 하지. 어찌 보면 무심해 보이기도 해.”
K와 L은 생각과 취향이 비슷해 자주 만나 어울려왔다. 이를테면 문화예술 행사나 관련 일들에 관심이 많았다. 남의 강연이나 예술공연 같은 걸 꼭 찾아다니며 봤다. 이민 생활하며 각자 다른 직업을 가지고 일하다 한 번씩 만나면 대화가 통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평소 먹고 사는 생업에 몰두하다 가끔 한국이나 외국에서 유명강사나 예술인이 와서 행사하면 연락해서 함께 참석했다. 강연, 연주회, 음악회, 전시회가 있는 날은 둘이 만나는 날이 되었다. 행사를 마치고 나면 둘만의 조촐한 식사시간도 곁들여져서 생활에 활력소가 되었다. 골프나 등산 또는 낚시하는 사람 모임처럼 만남이 끈끈했다. 프라이한 달걀 반숙이 얹힌 토스트를 먹으면서 전에 경험한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 추억을 곱씹어 보는 것이 오히려 오늘 강연보다 흥미로웠다.
***
오래전, K가 다니는 교회에서 주관하는 문학의 밤에도 L과 함께 참석했다. 초청작가, 박완서 소설가의 강연을 들으며 많은 공감을 나눴다. 2년 전, L이 다니는 절에서 초청한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행사에도 K와 같이했다. 종교가 달라도 서로 존중해주며 공감하는 부분을 함께 나누다 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시간 나면 가끔 두 부부가 외식도 하면서 교감을 나눴다. 1년에 두어 번 정도는 부부동반으로 가볍게 여행도 다녔다.
“난 그때, 몽골에서 온 분 강연이 유난히 마음에 남더라고. 왜 하버드대에서 공부하고 몽골에 가서 대학생들 가르치며 선교 관련 일을 해온 Y 분 말이야. 티셔츠에 편한 바지를 입은 수수한 옷차림으로 단상에 올라와 동네 아저씨처럼 이야기한 모습이 좋았어.”
“나도 Y에게 공감했지. 그 강연은 인간 삶의 깊이에서 나오는 울림 같은 게 있었어. 같은 행사장에서 전에 강연한 T강사와는 영 다르게 느껴졌어. T강사는 USB 나 PTP 로 준비한 강의를 재미있게 펼쳐가긴 했어. 손바닥에 콘트롤 스틱을 들고 눌러가며 강당 정면 벽에 동영상과 자료 화면을 보여주며 강연을 했지. 세상에 좋다는 모든 자료를 총망라해 이야기했잖아. 순간순간 웃음꽃을 피웠는데 나중에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데 가슴에 찡하게 남는 게 없더라고. 무슨 코미디 쇼 보고 가는 느낌이랄까.”
“남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쭉 나열해 소개한 거라서 재미는 있어도 그냥 잊히고 말지. Y는 자신의 진솔한 체험을 이야기하니 강의 기법이나 강의 자료에 상관없이 오래 남았던 것 같아. 내 이야기를 2인칭 ‘당신’에게 진솔하게 털어놓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래 맞아. T는 내 이야기를 3인칭 청중에게 알리는 식으로 가르치려 한 것이지.”
“우리 이야기가 심도 있네. 상대를 2인칭으로 보느냐, 3인칭으로 보느냐를 이야기하고 있으니. 2인칭과 3인칭의 관점은 천지 차이야. 죽음도 마찬가지잖아. 나에게 2인칭 죽음으로 남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3인칭 죽음으로 남는 사람도 있지.”
“그렇지. 3인칭이야 남이잖아. 그냥 지나가면 끝이지. 2인칭은 연인이나 가족 또는 존경받는 이들의 경우라 오래 남고. 그래서 ‘그’로 부르지 않고 ‘당신’으로 부르는 게지. 돌아가신 법정 스님이나 김수환 추기경도 당신으로 존경하잖아. 자연스레 2인칭 죽음으로 남아있는 분들이지.”
“와~ 그럼, 우리는 무슨 사이인가? 3인칭 말고 2인칭! 서로에게 남는 좋은 관계로 잘 지내야겠구먼.”
“교민사회에서 딱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내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감사한 게지. 도반같은 친구 하나쯤~”
L이 다 비워진 커피잔에 뜨거운 물을 따랐다. 역시 빈 잔인 K의 컵에도 물을 따라주며 잔을 부딪쳤다. K가 빙그레 웃으며 잔을 다시 짱 하며 건배 포즈를 취했다.
“뭐니 뭐니 해도 난 가수 김수희 씨가 제일 인상적이더구먼. 왜 빅토리아파크 콘서트 장 공연에서 수백 명이 운집한 가운데 그녀가 보여준 반전의 카리스마! 정말 대박이었어.”
“나도 폭풍 감동했지. 처음엔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몰라. 세 곡을 다 불렀는데도 관객의 반응이 너무 냉랭했거든. 왜 처음에는 잔잔한 곡으로 운을 떼잖아. 그러면서 서서히 불을 지피는 식으로 톤을 올리는데, 관객 반응이 좀 차가 왔지.”
“나 역시 조마조마했어. 저렇게 무너지면 안 되는데 하고. 본인도 딱 반전의 타임을 느낀 나머지 이어진 행동 퍼포먼스가 관객들을 확 깨웠지.”
“나도 그 광경이 지금도 생생해. 김수희 씨가 탁자에 놓인 물병을 낚아채듯 들더니만 한 모금 마시고 머리에 물을 쏟아가며 관객 앞으로 걸어 나왔잖아.”
“맞아. ‘너무합니다’로 열창을 했지. 그러자 비로소 관객들도 서서히 손뼉을 치기 시작했어. 온몸을 불사르듯 무대를 누비자 환호와 휘파람 소리로 콘서트장이 불을 지펴갔어.”
“이어진 열창들, ‘사랑받고 싶은 여자’의 애절한 호소! ‘남행열차’를 타고 ‘멍에’를 지고 ‘애모’를 절절하고 숨 막히게 불사르는 순간! 콘서트장은 완전 환희와 감동의 도가니였지. 감동 열기가 후끈후끈했어.”
“역시 프로라는 걸 그때 절실히 공감했지. 우리 삶에서도 저래야겠구나 싶으니 폭풍 감동이 느껴진 게지. 이민 생활하며 우리는 작은 시련에도 얼마나 작아지고 무너지는가? 저런 포스, 카리스마가 필요하겠구나. 쉽게 지지 말고 온몸을 불사르는 도전과 열정, 몰입이 필요하겠구나 싶었지.”
“그래. ‘너무 합니다’나 ‘애모’ 노래 가사 말 일부는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아.”
날 울리지 말아요/ 너무합니다 너무합니다/ 당신은 너무합니다~
세월의 강 넘어 우리 사랑은/ 눈물 속에 흔들리는데/ 얼만큼 나 더 살아야/ 그대를 잊을 수 있나/ 사랑 때문에 침묵해야 할/ 나는 당신의 여자/ 그리고 추억이 있는 한/ 당신은 나의 남자여~
“1990 년대 초에 대 히트한 노래였어.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이 ‘하여가’로 연속 4주 우승하며 1승만 더 챙기면 가요 대상 트로피를 거머쥐려던 때였지. ‘애모’가 1승을 차지하더니 연속 5주째 우승한 바람에 김수희 씨가 대상 트로피를 받았지. 당연히 그 해 가요대상 MVP도 휩쓸었지.”
“와~ 가수 평론가같이 해설도 수준급이네. 난 김수희 씨가 말한 ‘자기만의 분명한 색깔’에 절대 공감하지. 그녀는 또 그런 말도 했잖아. ‘전 목이 강해요. 편도선 걸려도 두 시간은 거뜬히 공연해요. 평소 목을 담금질했거든요.’ 평범한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게 바로 그런 프로의식 때문일거야.”
“맞고말고. 당시 시류와 트렌드를 따르지 않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지닌 김수희 씨! 애절하고 느린 노래가 그녀의 스타일이었지. 자기 확신이 있으니까 그 스타일을 고집한 거지.”
카페를 걸어 나오는 K와 L의 발걸음은 그 옛날, 김수희 콘서트장을 빠져나오듯 뿌듯하고 꽉 찬 에너지로 충전되어 있었다. 카페 담장 옆에서 하얀 목련 꽃봉오리가 터질 듯 탱탱해 보였다. *
LYNN : 소설가. 오클랜드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