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새해에 만난 인물-캡스톤 건축 김동렬 대표
“제 손이 거쳐 간 자리에 예술의 흔적이 드러났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서로 도와가며 사는 중국 사회 부러워…사업
철학은 ‘같이 먹고 살자’
‘건물에 예술을 입히다.’ 캡스톤 건축의 김동렬 대표는
이런 정신으로 사업을 한다고 말했다.<사진_레이휴 스튜디오>
2018년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일요시사>는 새해 첫 인물로 캡스톤 건축 김동렬 대표를 만났다. 한인 사회에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현지 사회 건축계에서는 명성을 얻고 있는 사업가다. 이 인터뷰는 올 한 해도 한인 사회와 한인 사업체 모두 열심히 뛰어보자는 뜻을 담고 있다.<편집자 주>
구릿빛 피부에 거친 말투.
첫눈에 ‘삶의 현장’ 냄새가 폴폴 느껴졌다. 추(醜)를 미(美)로 바꾸고, 못 쓰는 것을 다시 쓰는 것으로 바꾸는 게 그의 일이다. 나아가 최근 들어 아예 새 살 곳까지 꿈꾸고 있다. 그것도 대단위(아파트 신축)로 말이다.
90% 이상이 현지 사업체나 개인이 맡긴 일
캡스톤 건축(Capstone Construction) 김동렬 대표.
그는 50대 중반의 사업가다. 한인 사회보다는 현지 사회에 더 알려져 있다. 90% 이상이 현지 사업체나 개인이 맡긴 일이다. 크고 작은 건축 관련 한인 사업체 중에서도 ‘캡스톤’이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생소한 이유다.
김 대표는 1999년 뉴질랜드에 이민을 왔다. 그의 전직은 고등학교 교사. 철학과 수학을 맡아 가르쳤다. 그는 일 하나하나에 자기만의 철학을 담아 한다. 대학 전공(철학)과 무관하지 않다.
2000년대 초, 그는 혈혈단신으로 아프리카를 누볐다. 가나, 나이지리아 등 서쪽에 있는 나라를 돌며 사업을 벌였다. 구형 컴퓨터를 조립해 파는 일이었다. ‘대박’을 쳤지만, 뜻하지 않은 일로 사업을 접어야 했다.
우여곡절을 겪은 뒤 2011년 오클랜드에서 새 사업에 뛰어들었다. 페인트(도장) 사업이었다. 첫 일부터 규모 면에서 남과 달랐다. 오클랜드 서쪽 켈스톤(Kelston)에 있는 켈스톤 보이스 하이 스쿨(Kelston Boys High School)의 도장 일이었다. 5만 5천 달러짜리 공사.
“일을 끝내고 나니 교장 선생님이 제게 이러더군요. ‘유 아 더 히로’(You are the hero)라고요. 제 나름대로 해석하면 ‘뉴질랜드 페인트 업계에 드디어 영웅이 나타났다’는 뜻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교장 선생은 흔쾌히 추천서(reference letter)를 써 주었다. ‘대니얼 킴’(Daniel Kim, 김동렬 대표의 영어 이름)에게 맡기면 도장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오클랜드 서쪽 대형 상가 페인트 사업 따내
김 대표는 몇 해 전 새로 생긴 웨스트 게이트 인근에 있는 대형 건물의 도장 사업을 따냈다. 우리가 잘 아는 하비 노먼(Harvey Norman), 마이타 텐(Mitre 10), 파머스(Farmers) 같은 곳이다. 마이타 텐 공사가 끝난 뒤 김 대표의 사업은 날개를 달았다.
“웨스트 게이트 인근 상가 건물 페인트 공사는 하청을 받아서 했습니다. 공사가 끝나자 건물 매니저가 제게 뜻하지 않은 제안을 하더군요. 자기랑 같이 손잡고 하자고요. 속된 말로 주인을 제치고 하자는 뜻이었지요. 제가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신의를 저버릴 수는 없다고요. 그 말에 매니저가 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를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본 거지요.”
김 대표는 넉 달에 걸친 공사 기간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일을 했다. 성실과 끈기에서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다.
캡스톤이 이뤄낸 작품은 수백 곳에 이른다. 그 가운데 한인들이 ‘아, 그 건물!’ 하며 떠올릴 수 있는 것은 타카푸나 바닷가 앞에 있는 센티넬 아파트(The Sentinel)다. 29층으로 된 이 아파트 건물의 도장 공사를 바로 캡스톤이 해냈다. 그 밖에 오클랜드에서 내로라하는 큰 건물들이 캡스톤 김동렬 대표의 지휘 아래 아름다운 모습으로 재탄생됐다.
웨스트 게이트 공사를 계기로 캡스톤의 사업 영역은 점점 넓어져 갔다. 뉴질랜드 건축 관련 회사인 트레이드 스킬(Trade Skills)과 업무 제휴를 맺었다. 쉽게 말해 ‘트레이드 미’(Trade Me)의 건축판이라고 보면 된다. 페인트, 타일, 전기 등 건축과 연관된 공사의 거래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캡스톤은 트레이드 스킬을 등에 업고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다. 사업 영역을 페인트에서 건축과 관련된 모든 일로 확대한 것이다.
“페인트 일을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다른 일도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내심 더 큰 비즈니스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배관, 전기, 카펫 등 모든 일을 하게 된 것이지요. 앞으로는 대규모 아파트 건축 사업을 하려고 합니다. 오테하 밸리(Oteha Valley)를 시작으로 뉴린(New Lynn)까지 여러 지역에 아파트를 지을 겁니다. 제 마지막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해나갈 겁니다.”
2017년 한 해만 개·보수 공사 200건 해내
캡스톤은 2017년 한 해 200건에 달하는 개·보수 공사를 해냈다. 그 전 해는 160건에 가깝다. 주로 주택 일이었다. 그동안 맡은 손님만 해도 3천 명이 넘는다. 현재 사무직원을 포함한 직영 인원 26명과 수많은 외부 인력이 한마음 한뜻을 다해 새 느낌 나는 건물과 집을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나아가 모든 공사는 365일 100% 책임 실명제를 채택하고 있다.
김 대표의 사업 철학은 무엇일까?
“쉬운 말로 ‘같이 먹고 살자’입니다. 저희 사업체를 통해 수많은 일꾼이 생겼고, 또 앞으로도 나올 겁니다. 제가 조금 손해 보는 일이 있더라도 세상을 좀 더 밝게 하는 일에 앞장서고 싶습니다. 여건이 되면 좋은 일도 하고 살 겁니다.”(내가 알기로 김 대표는 이미 그 일을 하고 있다.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김 대표는 건축의 본질을 휴머니즘이라고 정의한다. 추한 대상(집이나 건물)을 아름답게 바꾸는 예술가라고도 표현했다. 일용직 노동자가 아닌 예술가 관점에서 일을 진행한다며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보였다. 캡스톤이 거쳐 간 자리에 ‘예술’이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읽었다.
“공사를 시작할 때 ‘어떻게 살기를 바라십니까’하는 차원에서 접근합니다. 돈이 아니라 사람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지요. 저희가 고친 집이나 건물에는 바로 사람이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입에서 입으로…자식이 부모에게, 삼촌이 조카에게
숱한 공사를 하면서 맛본 보람은 무엇일까?
“손님 대부분은 입소문을 통해 이어집니다. 믿고 맡길 수 있어 추천해 주는 것이지요. 자식이 부모를, 삼촌이 조카를, 이웃이 또 다른 이웃을 추천하는 식이지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집니다. 그들의 식구가 된 듯한 느낌이지요. 종종 잔치에 초대받기도 하고요. 사람의 정이 느껴지는 집과 건물, 저희 회사가 그렇게 만들고 또 손님들이 그렇게 느껴진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지요.”
김 대표는 대화 내내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했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이겨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건축과 관련해 현지 사회에서 우뚝 선 기업체로 자리매김하고 싶은 마음도 드러냈다. 본인은 몇 년 뒤 삶의 현장에서 물러나 후배에게 넘겨주겠다고 말했다.
“중국 사회에서 가장 부러운 건 같은 민족끼리 서로 도와가며 잘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인 사회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모두가 일등이 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조금은 부족하더라도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살았으면 합니다. 2018년 새해 바라는 소망이기도 합니다.”
글_프리랜서 박성기
오클랜드 노스쇼어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도 있는 ‘더 센티널 아파트’, 캡스톤 건축이 페인트 공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