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칼럼-먼 길 떠나는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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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칼럼-먼 길 떠나는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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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칼럼>

 

먼 길 떠나는 그대에게

 

壯途’(축 장도, 중대한 사명이나 큰 뜻을 품고 떠나는 길을 축하합니다.)

1990 5월 초 늦은 봄바람이 코끝을 유혹하던 어느 날, 나는 서울역 앞에 있는 벽산그룹 회장실에 앉아 있었다. 17평 우리 집 아파트보다 네 배는 넓어 보였던 그곳에서 내가 기자로 일하던 신문사의 명예 사장 김인득 회장을 만났다. 김 회장은 보수 교단의 장로로, <기독신문>의 사장직도 겸하고 있었다. 월급 한 푼 안 받는 명예만 지닌 사장이었다.

남과 같이 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는 기치를 내 건 김 회장은 1950년대 한국전쟁 무렵에 사업을 시작했다. 한때 단성사, 파카디리 등 서울의 주요 극장을 세워 극장왕이라는 호칭을 얻었고,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슬레이트 사업으로 떼돈을 벌었다. 한국 재벌급 회사의 소유자였다.

나는 그런 위대한 회장님을 족히 20m는 넘어 보이는 통유리를 뒤로하고 독대했다. 70대 중반이었던 김 회장은 아직 서른이 채 되지 않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젊은이의 꿈이 참으로 가상하네. 부디 건강하게 다녀오게.”

김 회장의 반들반들한 이마가 햇살에 튕겼다. 그가 버저를 눌러 비서를 불렀다. 20대 후반의 예쁜 여비서가 흰 봉투를 가지고 들어왔다.

祝 壯途.’

김 회장은 일필휘지로 써 내려갔다. ‘특파원 ㅇㅇㅇ를 격려하기 위해 내놓은 촌지 봉투에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초상화가 그려진 유에스 달러($100)가 다섯 장이나 들어 있었다. 내 한 달 월급을 넘는 작은 뜻’(촌지)이었다.

나는 그 뒤 1년 동안 전 세계 40여 나라를 돌며 특파원을 가장한 배낭여행을 즐겼다. 그 사이 틈틈이 선교사를 만나 선교 현장의 소식을 고국으로 전했다. 훗날 김 회장은 내가 쓴 ㅇㅇㅇ 특파원 순례기-격동의 세계를 가다라는 제목의 연재 기사를 읽고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박 기자가 생각보다 오래 버티는군. 괜찮은 친구네.”

그다음 해 봄, 나는 너덜너덜해진 청바지를 입고 금의환향했다. 며칠 여독을 풀고 김 회장을 찾았다. 이집트에서 사 온 파피루스를 액자에 끼워 선물로 드렸다. 나는 장도의 성공을 알렸고, 그는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걸세하며 무사 귀환을 축하해 주었다. 몇 주 뒤 나는 차장으로 승진했다.

 

2017 6월 중순 초겨울 삭풍이 불던 어느 날, 오클랜드 콘월 파크(Cornwall Park) 안에 있는 식당에서 젊은 선교사 부부를 만났다. 결혼한 지 일 년도 채 안 된 새내기 부부다. 그들의 나이는 서른 전. 그 어느 날 한때 내 모습이 데자뷔(기시감, 旣視感)처럼 다가왔다.

아내보다 두 살 더 상큼하게 어린 남편은 대학에서 클래식 기타를, 남편보다 두 살 더 애교 있게 예쁜 아내는 컨템포리 보컬(현대 음악)을 전공했다. 둘 다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재자(才子)와 재원(才媛)이다.

남편 선교사를 내가 알게 된 것은 십여 해 전이다. 그때 그의 나이가 열일곱, Year 11 때로 기억한다. 우연한 기회에 그를 만나 내가 한 도움말은 이렇다.

인생 짧다. 뜻깊은 일을 하고 살아라. 한평생 밥만 먹고 살다가 죽어서야 되겠니?”

대충 이런 식의, 전형적인 기독교 꼰대의 교훈질이었다.

내 말이 그 친구 마음에 걸렸는지 오가는 바람 소리에 그의 신심이 선교지에까지 닿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사이 인도와 파키스탄, 캄보디아 같은 선교 현장에 몇 번 왔다 갔다 하더니 마침내 선교사로 헌신하고 말았다. 비록 한 해짜리 단기 일정이지만, ‘선교사라는 지상 최고의 뜻깊은 일을 자임하고 나섰다.

그 친구를 오랜만에 본 나는 순간 죄의식을 느꼈다. ‘어설픈 내 교훈질에 걸려든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ㅇ 집사의 아들 대신 김 집사나 최 집사의 아들을 선교사로 보내 달라고 기도할 걸 그랬나하는 후회가 왔다.

그가 맞닥뜨려야 할 앞 길은 외롭고 고될 게 분명하다. 아무리 한 세대 전과 견줘 선교 환경이 많이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이슬람권에서 하나님 나라를 알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얼마 전 그쪽 지역에서 선교사 둘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까지 들었으니 내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한 시간 동안 귀를 세우고 그들의 얘기를 들었다. 새내기 선교사답게 들떠 있었다. 오래전 선교 현장을 돌며 아골 골짝 빈 들에서 복음 들고 외친 선교사들을 직접 취재한 나로서는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수밖에 달리할 게 없었다.

기도할게. 적지만 선교 헌금도 보내고. 건강해라.”

조금은 그럴싸한 점심을 마칠 무렵, 나는 그들에게 내가 쓴 책과 함께 봉투 하나를 건넸다.

祝 壯途.’(큰 뜻을 품고 떠나는 길을 축하해.)

봉투 안에는 내 마음을 담아 정성껏 쓴 편지와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얼굴이 새겨진 종이돈 다섯 장이 있었다. 내 손은 부끄러웠지만, 내 마음만큼은 알 수 없는 기쁨이 느껴졌다.

젊은 선교사 부부는 호주를 거쳐 7월 말 선교 현장에 도착해 음악 교사로 사역을 시작한다. 훌륭한 직장보다, 멋진 집 마련보다 남다른 길을 고른 그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좀 더 넓어지기를 빈다.

새 꿈을 안고 먼 나라로 떠나는 그들에게 후원을 해주고 싶은 분들은 연락 바란다. 꼭 뉴질랜드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 어니스트 러더퍼드($100), 마오리의 전설적인 지도자 아피라나 응아타($50)가 아니어도 된다. 에베레스트를 가장 먼저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5) 경이나, 여성 투표권을 세계 처음으로 이끈 케이트 셰퍼드($10)여도 충분하다.

_프리랜서 박성기

◈후원 계좌

12-3629-0177499-00

Daniel 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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