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90) 달리다굼-일어나라!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90) 달리다굼-일어나라! <마가복음 5:35~43>

오늘 본문의 말씀은 열 두 살 된 소녀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기적의 역사입니다. 이 아이는 회당장 야이로라는 사람의 딸인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지금 죽게된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 부탁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집으로 향하는 중에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갑자기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등장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 여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시간이 지체된 겁니다. 야이로의 집에서 한 하인이 달려옵니다. “회당장님! 회당장님의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더 이상 예수님을 수고롭게 하지 마십시오.” 혈루증 걸린 여인의 사연을 들으면서 함께 감동하고 있던 이들에게, 갑작스러운 참담함이 몰려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가시던 길을 계속 가십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이르러, 야이로의 딸이 죽어서 누워 있는 방에 들어가 아이의 손을 잡고 말씀하십니다. “달리다굼 – 소녀야 일어나!” 이에 아이가 곧 일어나 걷습니다. 죽음의 자리에 누워있던 아이가 생명의 자리로 일어납니다.

  

이처럼 본문을 보면, 두 가지 사건이 겹쳐 있습니다.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통받던 여인에게 임한 치유의 역사, 더불어 열 두 살 된 회당장의 딸이 죽음에서 살림받는 기적의 역사입니다. 여기 보면 공통점이 있죠. 12년입니다. 이 여인은 혈루증으로 고통받던 세월이 12년입니다.  그럼 회당장의 딸 야이로의 12년은 어땠을까요? 회당장의 딸 야이로는 부족함 없는 행복함으로 12년의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똑같은 12년인데, 혈루증 걸린 여인의 12년은 고통의 시간이었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보낸 12년은 행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 과거 고통의 시간이었든지 행복의 시간이었든지, 현재 지금 저들이 예수님을 만났기에 치유를 얻고,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는 그 사실입니다.


오늘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눌 때에, 우리 삶에도 “달리다굼” 일어나는 역사가 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지난 날이 어려움의 시간이었든지, 기쁨의 시간이었든지, 그 모든 것을 넘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달리다굼” 주의 음성을 듣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일어서야 하는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낙심의 자리에서 ‘달리다굼’ 

일어나야 합니다.


 본문 35절의 말씀입니다.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서론에서 말씀드린 내용이죠. 열 두 해를 혈루증에 걸렸다가 나음을 받은 그 여인, 예수님께서는 걸음을 멈춰 그 여인과 대화를 나누고 계십니다. 그 때 사람이 와서 회당장에게 비보를 전합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지금 한시가 급한 상황인데, 갑자기 중간에 끼어든 한 여인으로 인해서 시간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그 때에, 들려온 소리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이 때 회당장의 마음은 탄식으로 가득찼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원망도 가득했을 것입니다. 아니 분노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회당장이 원망과 분노로 자신의 낙심된 마음을 드러내기 전에 예수님께서 먼저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런데 잘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죽은 소녀를 향해 생명의 선포를 하시기 전에, 먼저 회당장 야이로의 낙심된 마음을 향해 선포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다시 말해, 두려움으로 인한 낙심의 자리에서 ‘달리다굼-일어나라!’

  

낙심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풀어보면 마음이 떨어졌다는 뜻입니다. 우리네 삶에 이와 같은 낙심의 상황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 낙심의 순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이전에도 몇 번 말씀드렸지만, 두려움과 믿음은 반비례관계입니다. 두려움이 가득하면 믿음이 작아집니다. 믿음이 올라가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지금 회당장이 처한 현실은 낙심될 수밖에 없는 마음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회당장의 죽은 딸 앞에서 선포하십니다. “달리다굼-일어나라!” 그 순간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고, 낙심은 오히려 큰 기쁨과 환희로 바뀌어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을 향해서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 음성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볼 때에, 낙심의 자리에서 ‘달리다굼!’ 일어나, 소망의 내일을 바라고 체험하고 또한 증거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죄악의 자리에서 ‘달리다굼’ 

일어나야 합니다. 


이 땅에 죽음이 오게 된 이유가 바로 죄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어 죄인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의 문제를 온 인류가 그대로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이를 가르켜 원죄라고 하죠. 그런데 보세요. 아담과 하와가 따 먹은 열매가 어떤 열매인가요?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입니다. 그럼에도 이상한 것은 그 후손인 모든 인류가 지금도 여전히 선과 악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죄를 짓고 있단 말이죠. 

  

그렇기에 성경에서 말씀하고 죽음은 본질적으로 죄의 결과를 뜻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 아이의 죽음과 다시 살아남의 역사를 통해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복음서에 나타난 죽음에서 생명을 얻는 역사는 모두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시 살아나는 기적의 역사, 이 모든 생명의 역사는 죽음까지도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더불어 예수님 자신의 부활의 역사를 예표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온 인류의 죄, 죽음으로 갈 수밖에 없는 죄를 사하시는 능력이 되었고,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사망 권세를 물리치시고 승리하신 주의 영광을 드러내었으며, 이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주시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여전히 선과 악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죄악의 길을 걷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음에서 생명을 얻게 된 것은 이러한 구원의 역사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건입니다. 죄악 가운데 머물러 있으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따라서 오늘 예수님께서 ‘달리다굼-일어나라!’ 선포하신 것은 곧 우리를 향한 구원의 음성입니다. 아직 믿음을 갖지 못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모든 사람들을 향한 구원의 선포입니다. “달리다굼-죄악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도 죄악의 자리에서 ‘달리다굼’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알게 모르게 짓는 죄의 문제들이 있습니다. 마땅히 해야 하는데 하지 않음으로 짓는 죄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늘 영적인 전쟁입니다. 악과 싸워 선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죄와 싸워 생명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이를 위해 나 스스로를 향해서도 선포해야 합니다. 내 영혼아! 내 삶아! 죄악의 자리에서 ‘달리다굼-일어나라!’ 죄의 자리, 죽음의 자리를 떨쳐 버리고 일어나, 생명의 자리로 나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시험의 자리에서 ‘달리다굼’ 

일어나야 합니다. 


얼마전에 유튜브 쇼츠에 남포교회 박영선원로목사님이 교회의 목회자와 모든 성도들을 향한 권면과도 같은 말씀을 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딱 1분짜리 영상입니다. 내용이 이겁니다. “우리는 모두 경기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때로 축구경기를 보면, 중간에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왜 저렇게 패스를 하냐? 저기서 저렇게 슛을 하면 어떻게 하냐? 쟤 빼라.” 등등.. 쉽게 말합니다. 그런데 내가 직접 경기를 뛰어보면 말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1분도 되지 않아 금방 깨닫게 됩니다. 신앙의 삶에 있어서도 비슷합니다. 내가 마음먹은대로 안된단 말이죠. 그러니까 다들 슬그머니 꾀를 내어서 해설자가 되려고 하고, 심판이 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쉽게 판단하는 거예요. “그렇게 신앙생활 하면 안되지. 여기서 왜 그렇게 해?”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셨음에도, 회당장의 집까지 오셨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울고 통곡하고 있습니다.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장례식에 모여서 우는 자들이 있습니다. 통곡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떠드는 자들도 있습니다. 비웃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게 다 우리가 마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내가 믿음생활 잘 해보려고 하는데, 주변에서 떠들며 비웃으며 방해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저들로 인해서 시험에 들고 실족하기도 합니다. 제가 지난 주에 그런 말씀 드렸죠. “다른 사람 판단하고 정죄하기 전에 먼저 그 기준으로, 아니 그보다 더 엄격한 기준으로 나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 그런데 함께 주의해야 하는 것이 또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시험에 빠져드는 겁니다. 자기 스스로 실족하는 자리로 가는 겁니다. “떨어진 화살을 주어서 내 가슴에 찌르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굳이 주워서 나 스스로 내 가슴을 찌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은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혼자 상처받는 경우들도 많습니다.그럼에도 예수님만 붙잡고 따라갈 때에, 결국에는 기적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도 시험의 자리에서 ‘달리다굼’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경기자로 뛰다보면, 언제나 시험거리가 있습니다. 그 모든 것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은 믿음의 담대함입니다.   여러분! 시험은 이겨내라고 있는 겁니다. 어떠한 시험의 문제가 있을지라도, “달리다굼-일어나라!” 말씀하시는 주의 음성을 듣고, 담대한 믿음으로 시험을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낙심의 자리에서, 죄악의 자리에서, 시험의 자리에서 ‘달리다굼-일어나!’ 죽음을 넘어 생명의 자리에 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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