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 명소를 찾아 4-시간이 멈춘 마을, 푸호이(Puhoi)
“이 가을 그곳에 갔다 오면 이상하게 살맛이 난다”
1863년 보헤미아에서 83명 집단 이민…황무지를 비옥한 땅으로 바꿔
‘하늘이 내게로 온다.’ 산 위에서 바라본 푸호이 전경.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뒷부분은 생략)
나는 가을만 되면 박두진의 시, ‘하늘’이 떠오른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그 시에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든 서유석을 따라 흥얼거린다. 뉴질랜드에 가을이, 내 가슴에도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애창곡이기도 하다.
푸호이(Puhoi)는 오클랜드 시내에서 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자리한 시골 마을이다. 실버데일을 지나 콧구멍처럼 생긴 푸호이 터널을 통과하자마자 왼쪽에 큰 이정표가 보인다.
‘Puhoi 2Km. Historic Village.’
나는 푸호이를 ‘시간이 멈춘 마을’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에만 갔다 오면 이상하게 살맛이 난다. 가을 한복판의 어느 날, 푸호이를 찾았다.
‘천천히 흐르는 물’…첫 개척자는 마틴 크리프너
‘보헤미안.’(Bohemian)
보통 사람들은 ‘집시’라는 말이 먼저 떠오를 거다.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사람’의 뜻으로 쓰이는 단어 말이다. 보헤미안은 지금은 체코의 일부분이 된 보헤미아(Bohemia) 지역에 살던 사람을 가리킨다. 그 ‘보헤미안’들이 160여 년 전 뉴질랜드에 왔다. 정착지는 푸호이. 마오리 말로 ‘천천히 흐르는 물’(Slow Water)이라는 곳이다.
개척자는 오스트리아 군대에서 복무하다 대위로 전역한 마틴 크리프너(Martin Krippner 1817~1894)와 아내 그리고 보헤미아 동네 주민 몇 명이었다. 1860년 3월 22일 뉴질랜드에 첫발을 내디딘 마틴 크리프너는 오레와 우체국장으로 2년 동안 일하면서 새 나라의 정세를 살폈다. “한번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마틴 크리프너는 조지 그레이(George Grey) 총독을 만났다. 총독은 어른 한 명에 40에이커(약 5만 평)의 땅을, 어린아이에게는 그 반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1863년 6월 29일 마틴 크리프너의 고향 사람들이 푸호이에 이민 짐을 내려놓았다. 기차 타고, 기선(汽船) 타고, 배 타고 123일 만에 도착한 이민자는 모두 83명, 명실공히 이민 1세대였다.
웬더홈(Wenderholm)에서 카누를 이용해 푸호이 강 입구까지 거슬러 올라왔다. 인근에 살던 마오리들은 그들을 반갑게 맞았다. 먹을 것도 내놓고, 숲속 정글 같은 땅에서 생존하는 방법도 알려 주었다. ‘황무지’(Waste Land)가 사람 사는 곳으로 바뀌는 데는 석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푸호이 보헤미안박물관에 전시된 다리미들.
보헤미안박물관, 초창기 역사 소박하게 보여줘
푸호이 보헤미안박물관(Puhoi Bohemian Museum).
마을 어귀로 들어서는 곳에 있다. 박물관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가정집 같다.
“Puhoi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사무실 창문에 쓰여 있는 한글이다. 한국 사람들도 종종 찾아온다는 뜻이다. 문을 열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웃으며 반긴다. 자원봉사자들이다. 사무실 한쪽에 11인치쯤 되어 보이는 오래된 삼성 텔레비전이 눈에 들어온다. 홍보 비디오를 상영(?)하기 위해 갖춰 놓은 소품이다.
할아버지가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오클랜드에 살고 있지만, 고향은 서울이라고 했다. 사무실 안에 있는 세계 지도에 압정으로 표시해 달란다. 나는 한국 사람을 대표해 방문한 흔적을 남겼다.
박물관은 푸호이 역사를 소박하게 품고 있다. 초창기 이민자들이 썼던 생활용품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녹슨 재봉틀과 투박한 철 다리미가 정겹다. 푸호이 마을을 축소해 만들어 놓은 구조물도 볼거리다. 시간이 멈춘 마을을 둘러 보는 이방인의 마음이 차분해진다.
뉴질랜드에서 두 번째로 작은 푸호이도서관.
“우리는 신앙을 지켰고, 우리는 서로 도왔다”
박물관을 나왔다. 눈앞에 초창기 정착민들의 지친 영혼을 달래줬을 성당이 보인다. 그들의 대다수는 로만 가톨릭 신자였다. 성당 건너편에는 돌로 만든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선조들의 정신은 이렇게 기록됐다.
“We kept the Faith and we helped each other.”(우리는 신앙을 지켰고, 우리는 서로 도왔다.)
푸호이에는 색다른 건물이 한 채 있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도서관(Puhoi Town Library)이다. 강가에 자리 잡은 도서관은 마을의 사랑방 구실을 한다. 1923년 처음 세워져 10년을 주민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는데 대홍수로 도서관의 기능을 잃었다. 1977년 새롭게 단장해 오늘에 이르렀다. 주민 숫자가 600명밖에 안 되는 이 작은 마을에도 도서관이 있다는 게 부러웠다. 갑자기 ‘한인 사회는?’ 하는 심술 궂은 생각이 들었다.
이 도서관은 나랑도 연관이 있다. 몇 해 전 내가 영어책 수백 권을 기증했다. 그 책의 일부는 아직도 푸호이 주민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으리라 믿는다. 내가 알기로 푸호이도서관은 뉴질랜드에서 두 번째로 작다. 1위는 남섬 오타고 지역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2위는 푸호이도서관이다. 고작 대여섯 평이나 될까. 그런데도 푸호이의 관광 명소이자 주민들의 긍지이기도 하다.
도서관 안에 있는 책들.
푸호이 강줄기 따라 뱃길 여행도 즐기길
푸호이 강의 설명을 빼놓을 수 없다. 정착민들에는 그야말로 생명의 젖줄이었다. 그들은 푸호이가 황무지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뉴질랜드 정부가 넓은 땅을 그냥 주면서까지 불러들인 이유를 곧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대신 1,500년 넘게 이어온 조상들의 근면 성실한 삶의 자세를 뉴질랜드 오지에서 직접 몸으로 보여주었다. 카우리 송진(gum)도 팔고, 숯도 구워 팔고, 통나무도 잘라 팔고, 기차 침목도 만들어 팔았다. 모든 상품은 푸호이 강을 경유해 내려갔고, 반대로 먹고 입을 것들도 그 강물을 거쳐 올라왔다.
푸호이 여행의 최고는 ‘카누(혹은 카약) 따라가는 20리길(8Km) 뱃길 여행’이다. 푸호이 강어귀에서 시작해 웬더홈 공원(Wenderholm Regional Park)까지 이어진다. 9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만 즐길 수 있다. 밤에만 가능하며,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 09) 422 0891, 027 284 1672
사실 나도 못 해본 여행이다. ‘언제 한 번 해봐야지’ 하면서도 실천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황홀경에 취해 다시 속세로 돌아가기가 힘들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여린 달빛에 노 젓는 뱃사공. 그저 ‘바라는 것’(Wish List)에 올려놓고 있을 뿐이다. 아주 오래오래 전, ‘보헤미안은 무슨 생각을 하고 그 강을 건너왔을까’ 하고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짠해진다.
선술집에서 맥주 한 잔…호텔 객실은 여섯 개
푸호이 펍(Puhoi Pub).
푸호이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다. 얼추 스무 해 전이었다. 오클랜드로 내려가는 1번 고속도로가 중간에 막혔다. 큰 교통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기다리다 지쳐 샛길로 빠져나가다가 만난 게 푸호이 마을이었다. 선술집이 유독 맘에 들었다. 보헤미안의 역사를 오롯이 품고 있었다.
해마다 대여섯 번, 특히 가을에는 한두 번은 꼭 선술집에 들른다. 술이 고파 가는 게 아니다. 그저 한나절이라도 보헤미안처럼 살고 싶어서다. 이 선술집은 1883년에 문을 열었다. 그냥 평범한 술집이 아니다. 푸호이 정착민들의 생활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 벽 곳곳에 걸린 빛 바랜 사진과 먼지 낀 생활용품이 그걸 묵묵히 말한다.
아울러 전 세계 곳곳에서 온 여행자들이 뿌린 돈이 사방 곳곳에 가득하다. 한국의 종이돈도 더러 보인다. 거기에는 그들만의 추억이 담겨 있다. 푸호이 여행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독특한 곳이다.
선술집 옆에는 조금은 고풍스러운 호텔이 붙어 있다. 객실은 여섯 개뿐. 아직도 옛날 모습 그대로 영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하룻밤 자는 데 내야 하는 돈은 싱글 $60, 더블 $120. 침대나 샤워기 같은 것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푸호이 선술집, 바로 옆에는 100년하고도 35년이나 된 호텔도 있다.
남은 내 평생 몇 번이나 갈 수 있을지
푸호이를 남에게 알려 주고 싶지 않았다. 나만의 아지트를 뺏기는 기분이 들어서다. 나는 푸호이에 가면 한 시간 정도 트레킹을 하고 난 뒤 아무 생각 없이 마을을 걷는다. 그래야 고작 30분이다. 그다음은 선술집에서 책을 읽으며 맥주(Tui) 한 조끼를 걸친다. 내 옆에는 누가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다. 마음속이라도 옆에 있었으면 하는 사람은 내가 정한다. 푸호이는 그런 곳이다.
시간이 멈춘 마을, 푸호이.
굳이 내 죽음의 장소를 고르라면 나는 푸호이가 제일 좋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박제된 시간에 내가 머물고 싶어 그럴지도 모른다.
이 가을날, 하늘은 내게로 여릿여릿 오는데 슬프게도 나는 안길 곳이 없다.
글과 사진_프리랜서 박성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