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들(16) 엄마 생각
‘바위섬과 바닷새의 항진’ 무리와이 가넷 서식지.
어머니는 시집와서 아들 다섯을 낳았다. 난 둘째다. 다섯 아들 중 내가 엄마를 제일 많이 닮았다 했다. 외모도 성격도 – 동안(童顔)에 차분한 성격.
1997년에 아버지와 함께 처음 뉴질랜드를 방문하여 일주일 동안 북섬의 여러 명소를 둘러 보셨다. 사진을 찍으려고 작은 전자동 니콘 카메라를 샀다. ‘눌러만 주세요’의 똑딱이 필름 카메라였다. 그때 찍은 ‘바위섬과 바닷새의 항진’이란 위의 사진이 운 좋게 대한항공 여행 사진 공모전에 입상되었다. 신문지만 하게 크게 만들어 벽에 걸어 두었다. 볼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
2004년 초에 서울의 형과 바로 밑의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머니가 둘째 아들을 보고 싶어 하신다’고. 얼마 동안이라도 모시면 좋겠다고 생각되어 둘째 딸이 할머니를 모시고 오기로 했다. 76세인 어머니가 오클랜드에 도착하는 날 설레는 마음으로 공항에 나갔다.
공항 입국 게이트를 통해 휠체어를 타고 나오는 모습은 주무시는 듯했다. 많이 야위었고 힘이 전혀 없어 보였다. 어떻게 이곳까지 오셨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쉬시면 회복되시겠지.’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도 별로 나아지지 않고 방과 부엌 그리고 화장실을 간신히 움직이시는 정도였다. 주말에는 휠체어를 타고 공원에서 맑은 공기와 새소리 그리고 꽃과 나무들을 보며 즐거워하셨다.
깜짝할 사이에 두 달이 지나갔다. 방문 비자를 연장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던 참인데 기침까지 하신다. 가정의에게 처방받으러 간 길에 어머니 증세를 얘기하니 ‘지금이라도 한국으로 가실 수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모셔 가는 게 좋겠다’는 권유다. 재빨리 출국 준비를 해서 며칠 후 공항으로 갔다. 부활절 금요일 밤이었다.
딸이 휠체어로 어머니를 모시고 출국장으로 들어간 후 혹시 하는 마음에 30분 정도 공항에서 기다렸다. 별 연락이 없기에 집으로 돌아오는데 중간에 딸이 전화했다. ‘비행기 자리에 앉았는데 승무원이 서류를 가져와서 사인하라고 한다.’며 해도 되는지를 묻는다. 내 생각에 ‘비행 중 불의의 일이 발생하더라도 항공사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정도겠지 싶어서 사인하라고 했다. 하버브릿지를 넘어 북쪽으로 오는데 다시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승무원들이 모두 모시고 가자 했는데 외국인 기장이 ‘비행 중에 유고가 생기면 가까운 국제공항 괌에 내려야 하는데 탑승하고 있는 300명의 승객이 공항에 갇히게 되니 미안하지만, 할머니와 함께 갈 수가 없다’해서 결국 내렸노라고 말한다. 기장이 무척 야속하게 느껴졌다.
급히 차를 돌려 다시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늦은 밤 11시가 넘어 자리에 뉘어드리고 2시 되도록 옆에 있다가 잠시 내 방에 가서 눈을 붙이고 새벽 4시반쯤 어머니 계신 방으로 갔다. 불을 켜니 얼핏 보기에 매우 창백해 보였다. 가까이 가서 손을 대보니 얼굴이 차가웠다. 불러도 깨워도 반응이 없었다. 그 새 돌아가셨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식구들을 깨우고 떨리는 마음으로 장의사에 전화를 걸었다. 묻는 말에 대답을 해주고 권하는 대로 경찰에도 전화를 걸었다. 5분 남짓 지나 구급차와 경찰이 도착했다. 경찰은 집 안팎을 휘둘러 보고, 구급대는 잠시 후 구급차에 고인을 태워갔다.
나중에 경찰에서 연락이 오기를 ‘어머니의 진료 기록이 없으니 부검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셋째와 미국의 넷째가 와서 어머니의 장례식을 같이 치르고 화장한 유골은 셋째가 한국으로 모시고 갔다. 정신없이 엄청난 일을 마치고 생각하니 야속하기만 했던 유럽인 기장이 고맙기만 하다. 딸이 서명하려 했던 서류에는 끄트머리에 ‘~이로 인해 생기는 모든 금전적인 비용을 책임진다.’라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될 수도 있었겠다 싶다.
세월이 흐르면서 문득 드라마처럼 떠나가신 어머니가 생각난다. 특히 슬프거나 외로울 때는 더욱 생각난다. 나이가 들었는데도 어머니가 그립다. 위로를 받고 싶은가 보다.
운전 중에도 생각나면 조용히 노래를 불러본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타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셨네….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왼손으로 눈물을 닦는다. ‘엄마는 하늘나라에 잘 계시겠지. 엄마, 보고 싶다.’
글_김인식
‘글쓰는 사람들’은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두 번 모여 좋은 글을 나누며 글쓰기도 하고 있습니다.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