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아모르파티 23 ; 4 x 7 = 27 ?
뉴질랜드의 싱그러운 계절이 사이클론 태풍 영향권에서 롤로코스트를 탄다. 한 여름 2월이 무색하다. 해변이나 야외에서 모임 갖는 건 모두 철수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이천리 길을 막 다녀온 지인 집에, 몇 부부가 저녁을 함께 했다. 비가 오는 바람에 아웃 도어 데크에서 거실로 들어와 상을 차렸다. 온갖 양념과 미나리 넣고 버무린 오징어무침이 일품이었다. 특별 에피타이저에 젓가락이 자주 갔다.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그 맛을 더했다. 단연 화제는 주인장의 기운 넘치는 여행 이야기였다. 육십 중반을 넘긴 나이가 무색해 보였다. 지난해, 자영업을 하면서 한 해를 안식년으로 비워두었단다. 그리고 평소 원하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거였다. 쿨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진 안식년! 떼어둔 시간이었다. 모처럼 자신에게 선물을 안겨준 시간 같아서 가슴이 떨렸다고 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 기행 이야기가 수육보쌈 맛처럼 풍성했다. 입으로 먹는 음식 풍미와 귀로 듣는 이야기 맛이 콜라보를 이뤘다. 레드 와인 잔이 쉴 새 없이 비워지는 속에, 숙성된 맛이 온 몸을 뜨겁게 데워 주었다. 마치 산티아고 순례길 고원지대, 포도밭 위에 자리한 이라체 수도원 에서 마시는 와인 맛이었다. 함께하며 먹는 따뜻한 밥맛도 좋았고, 나누는 얘기도 풍성했다. 옳다고 믿는 일에 소신껏 전력투구하는 모습이 순례자의 기상이었다. 주변에 즐거움과 유익함을 안겨주며 나눔 속에 사는 이, 따뜻한 가슴이 넉넉해 보였다. 가슴이 떨릴 때 여행도 떠나야 한다고 가슴에 강조를 했다. 다리가 떨릴 때는 그 맛이 안 난다고… . 듣는 이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 중, 인상 깊었던 대목이 귀에 뱅뱅거렸다. 메시지 같았다.
‘순례길이다 보니 일부 성직자도 있었고, 대부분은 일반 여행자였다. 외국에서 온 한 수도자가 사제복을 입고 순례길을 걷고 있는데 아무도 이야기를 붙이지 않았다. 웬, 순례길에 사제복장까지 하고 걷나? 하는 시선들이었다. 그는 혼자서 묵묵히 계속 걸었다. 숙소 옆 식당에서도 혼자 음식을 먹었다. 순례자들은 그냥 그 사제를 지나쳤다. 여정 중에 우연히 한국 젊은 청년을 만나 이야기하다 보니 그도 사제였다. 일반 등산복 차림이라 몰랐는데 수도회 소속 사제였다. 열린 마음의 사제여서 인지 얘기를 몇 번 나눴고, 외국 순례자들도 모여들어 이야기꽃을 피웠다. 부족한 언어는 문제되지 않았다. 나, 이런 사람이오, 라고 자신을 보여주는 듯한 사람에 무반응하고 마는 순례객 들 이었다. 나, 그저 보통 사람이오, 라고 다른 이들 눈에 보여지는듯한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서는 발길들 이었다.'고.
여행을 마친 주인장이, 자신도 평소 나, 이런 사람이오. 라고 어딘지 모르게 남에게 자신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었나 싶어서, 다음부터 그저 평범하게 보여 지는 사람이 되자고 가슴 깊이 느꼈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뉴질랜드 이야기로 바뀌었다. 올해 자영업 환경, 장성한 자녀 이야기, 건강 문제, 교민사회 이야기… .
그러다 요즘 탈도 많고 마음 무겁게 느껴지는 세계 강국의 헤게모니 전쟁이야기도 나왔다. 누가 패권을 지느냐. 미국이냐 러시아냐. 둘이서 싸우는 걸 들어보면 끝이 안보였다. 이 화제가 영어 단어로도 연결되었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FINISHED 와 COMPLETED 의 차이만큼 애매했다. 끝장이냐, 완결이냐. 세계는 지금, 경제 대란으로 치닫고 있다는 뉴스속에서도 자기 나라 이익과 통치권에 매몰된 나라들이 많다. 힘들게 사는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통치권자의 만행이 여실하다. 중국까지 가세하니 죽어나는 것은 민초 국민들이다. 뉴질랜드나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정치라는 것이 무엇인지. 백만 명이 죽어가는 것은 통계로 치부하고 만다. 한명의 억울한 죽음이 비극인 세상을 지나치고 만다. 인권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단어가 돼 버렸나?
FINISHED 와 COMPLETED 가 서로 잘 났다고 싸우는 형국이다. 끝장이나 완결은 평행선을 달리며 결과만을 추구한다. 자기 원하는 방향으로. 결국 함께하는 과정은 매몰되고 만다.
처음부터 묵묵히 듣고만 있던 가장 연장자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야기를 하나 꺼냈다.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옛날에 말야, 무대포 고집쟁이와 자칭 똑똑이가 있었어. 어느 날, 말싸움이 일어난 거야. 고집쟁이는 4 X 7 = 27이라 부득부득 우기고, 똑똑이는 4 X 7 = 28이라 맞받아 친 거야. 서로 옳다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니 끝이 없잖아. 원님께 찾아가 시비 가려줄 것을 요청했어. 고을 원님은 아주 간단히 판결을 내려 버렸지. "27이라 답한 놈은 풀어주고, 28이라 답한 놈은 곤장을 열대 쳐라!" 곤장을 맞은 똑똑이가 원님께 억울함을 하소연했지. 원님이 혀를 끌끌 차며 말을 했어. " 4 x 7 = 27이라고 하는 아둔한 놈과 맞서 싸우며 시간을 낭비한 죄! 알만한 놈이 곤장을 맞아야지"
보여주는 자와 보여 지는 자, FINISHED 와 COMPLETED. 4 x 7 = 27 과 4 X 7 = 28... .
자기 몸 디딘 처소에서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며 함께 공존하는 환경이 필요하다. 뉴질랜드는 이번 태풍 피해로 도로에 홍수가 개러지나 집으로 밀려들어와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2차 사이클론 피해를 줄이려고 모래주머니와 모래를 준비해 필요한 저지대 집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손길이 고마웠다. 노스쇼어만 해도 윈저파크에 모래를 쌓아놓고 필요한 만큼 모래주머니에 담아가게 했다. 정치 이념에 앞서 생생한 구조 행동 하나 하나가 시급한 세상이다. 네가 맞니 내가 맞니 따지는 것이 우선이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에너지는 함께 나누며 사는 공존하는 때임을 실감케 하는 시간이다. 부디 이번 태풍에 피해가 없이 지나가면 좋겠다.*
작가 백동흠
수필 등단: 2015년 에세이문학. 소설등단: 2015년 문학의 봄
수필집: 아내의 뜰(2021년). Heavens 지금여기(2022년).
수상: 2017년 제 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 대상 (깬니프!).
2022년 제 40회 현대수필문학상 (Heavens 지금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