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19)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19)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마태복음 18:1~7>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그리고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부릅니다. 바라기는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평화가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정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그러면 그 가정이 바로 천국입니다. 가정만이 아니죠. 내가 주를 향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더불어 내가 주의 사랑을 받고, 또한 그 사랑을 전하면서 살아갈 때에, 내 걸음이 닿는 모든 곳에 주의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오늘 본문은 어린아이를 통한 교훈의 말씀입니다. 어린아이를 위한 말씀이 아니라, 당시에 연약한 자, 힘이 없는 자, 낮은 자리에 있는 자를 대표하는 어린아이를 세워놓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백성들을 향해 “정말 큰 자가 어떤 자인가?” 교훈의 말씀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 하나를 세워놓고는 교훈의 말씀을 주십니다. 3절입니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들이 서로 더 큰 자라고 우기는 그 마음을 돌이켜, 어린 아이처럼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것은 고사하고, 아예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할 것이다.”


여러분! 천국에서 큰 자가 누구인가요?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이미 큰 자입니다. 내 삶에 천국을 이루어가는 자가 이미 큰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천국에 들어갈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너희들의 걸음이 닿는 곳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게 큰 자의 모습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예수 십자가를 향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는데, 구원의 확신 가지고, 천국의 소망 가지고 살아가는데, 어떤 모습으로 사는 것이 천국 백성으로서의 합당한 모습, 내 삶에 하나님나라를 이루어가는 자의 삶인가요?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낮추는 자입니다.


본문 4절에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어떤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요?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겸손에 대한 말씀이죠.


예수님 당시, 안타깝게도 어린 아이와 여인들은 그 집 가장의 재산 목록에 들어갔을 뿐, 사람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그 시대에는 그게 당연한 것이었습니다.어린 아이들이 받는 대우는, 지금 우리 성도님들이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자녀들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야말로 낮은 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 자신의 권리나 생각을 주장할 수도 없는 입장입니다.


지금하고는 어린 아이를 대하는 인식 자체가 달랐습니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자신은 아주 낮은 자리에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이런 현실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거예요. “지금 어린 아이들이 얼마나 낮은 자리에 있느냐? 저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하지만 천국은 그런 자들의 것, 즉 자신의 낮음을 인정하는 자의 것이다.천국에서 큰 자는 자신을 낮추는 자입니다. 원래는 아닌데, 낮은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 겸손함으로 자신을 낮추는 자입니다.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자신을 낮추는 자를 하나님께서 높여줍니다.


내 힘으로 사는 길을 택한다고 살 길이 열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힘과 권세를 의지하면서, 내 위치를 자랑하면서 높아지려한다고 높아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주를 위해서 죽고자 하면 하나님께서 살리십니다. 주의 말씀 따라 겸손함으로 자신을 낮추는 자, 하나님께서 높여주십니다.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야 합니다. 자신을 낮추실 때에, 하나님의 높여주심을 몸소 보여주신 예수님을 따라서, 겸손함으로,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나를 낮추는 자가 될 때에, 하나님께서 탁월하게 높여주시는, 천국백성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영접하는 자입니다. 


5절 말씀입니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예수님을 영접함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그럼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예수님께서 지금 말씀하시는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자”에 담긴 뜻이 이런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귀하게 여기는 어린 아이가 아니라, 예수님 당시에 숫자에도 들어가지 못하던 아이, 우리 나라 100여년 전에 어른들이 “욕하고 때리고 부리는 대상”이었던 그런 아이입니다. 다시 말해 누가 보더라도 연약하고, 보잘 것 없고, 힘 없는 자를 영접하는 자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과 같은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서로간에 “네가 높다, 내가 높다.” 싸우고 있었습니다. 앞서 예수님께서 변화산 기적도 보이시고, 수많은 병자들도 고치시고, 이제 곧 예루살렘 입성을 앞둔 시점에서 “내가 예수님 오른팔이 되겠다. 2인자가 되겠다. 최소한 3인자는 되겠다.” 그러고 있었습니다.그런 제자들을 향해서 “어린 아이와 같은 자를 영접하는 자가 큰 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영접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을 주의 사랑으로 대하고, 품어 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부지중에 천사를 영접하여 조카 롯을 멸망에서 구원해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을 받아 누립니다. 이삭은 자신의 우물을 빼앗는 이들을 향해서도 잔치를 베풀고 저들을 영접해주었더니, 하나님께서 엄청난 복을 허락하십니다.예수님께서도 그 모든 생애 가운데, 바리새인들로부터, 율법학자로부터 그렇게 비난을 받으시면서도, 항상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질병의 연약함 가운데 있는 이들을 고쳐주시고, 영적으로 버림받은 자들까지 찾아가시사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연약한 자를 영접하시는 본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예수님께서 영접하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 교회의 성도님들, 세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이들, 다 내게 맡기신 영혼입니다. 저들 모두 주의 사랑으로 영접하여 이 땅에서 천국의 기쁨을 누릴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저 천국에서 주님 보좌로 영접함을 받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붙잡아주는 자입니다. 


본문 6절과 7절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무엇일까요? “실족”입니다.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안된다. 실족하게 하는 일들 때문에 세상에 화가 있다.그러면서 형벌의 도구로 등장하는 것이 “연자맷돌”입니다.


그런데 누가 실족하기 쉽습니까? 오늘 본문에도 말씀하는 것처럼, “이 작은 자 중에 하나” 즉 어린 아이처럼 연약한 자, 아직 미성숙한 자, 신앙적으로도 굳건히 서 있지 못한 자가 실족하기 쉽습니다. 그런 자들 앞에서는 더 주의를 해야 합니다.그럼 반대로, 연약한 믿음을 가진 이들을 붙잡아 주는 자는 어떤가요? 실족하게 하는 자에게 큰 화가 임하는 것과는 반대로, 연약한 자를 붙잡아주는 자에게는 더 큰 축복이 임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실족하게 하는 자, 절대 되지 마시고, 붙잡아 주는 자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그럼에도 세상에는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그렇게 많이 일어납니다. 왜 그럴까요? 내 자아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만 주장하기 때문입니다.내 주장만 앞세우고 싶을 때, 내 감정이 불쑥 올라올 때, 하나만 먼저 생각하십시오. “연자맷돌” 

  

어떻게 보면 아무 것도 아니예요. 때로는 내가 뭘 잘 했는지, 또는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데, 그 말이나 행동, 표정 하나로 누군가에게 큰 힘과 위로를 주기도 하고, 또는 실족하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가능하면 말과 행동을 아름답고 선하게 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이게 영적 훈련입니다.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다른 사람을 붙잡아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 너무 가깝기에 서로간에 상처를 줄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너무 가깝기에 서로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내기가 참 어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시작합니다.   내 곁에 늘 함께 하는 내 남편, 내 아내, 내 부모님, 내 자녀와 형제 자매를 사랑의 말로 붙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나와 함께 동역하는 성도님들을 사랑의 표정과 행동으로 붙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를 붙잡아주는 그 사랑으로 내 삶에, 내 가정에, 내가 속한 공동체에, 내가 거하는 지금 이곳에 하나님나라를 이루어가고, 그 삶을 저 천국까지 이어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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